Ancient Culture & .../몽골

[스크랩] 동북 여행기 8(할라르1)

monocrop 2014. 3. 26. 17:22

8. 할라르(海拉尔)

 원래 보통어로 읽으면 하이라얼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할라르라고 읽는다.

 무릇 지명이란 현지인의 발음대로 읽어줘야 하는 법

 

 “爾”과 “尔”은 같은 글자다.

 앞은 번체(繁體)고, 뒤는 간체(簡體)이다.

 한자란 평생을 익혀도 다 익힐 수 없는 문자이다 보니, 교육의 차이로 일생이 좌우되는 수가 많았다.

 특히, 당나라 이후부터는 말하는 것과 쓰는 글에 차이가 많이 발생했다.

 말하자면 구어체와 문어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특히 원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지배민족인 기마민족의 언어인 알타이 계열의 언어가 유행하면서, 구어체는 더욱 문어체와 거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에, 청나라 말기에 지식인들 사이에 구어체로 적는 백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동시에 한자를 보다 간략하게 쓰는 운동이 일어나서, 현재 중국에서는 간체가 공용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용어에는 여전히 번체가 쓰여서 간체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발음을 적는데도, 자국어를 쓰지 못하고 병음이라고 하는 알파벳을 쓰고 있다.

 훈민정음의 덕을 톡톡히 보는 우리로서는 딱하기 그지없다.

 빨리 한글을 보급하여, 중국의 많은 분들이 문자의 혜택을 입기를 기대해 본다.

 

 할라르는 후룬뻘에서 가장 큰 도시로, 초원과 삼림이 맞닿은 곳이다.

 일찍부터 유력한 부족들의 겨울 숙영지였고, 초원 문화와 삼림 문화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더욱이 할라르 강이 흘러서, 수원이 풍부하여 농경도 적지 않다.

 할라르는 후룬(呼倫)이라고도 부른다.

 청대(淸代) 옹정(雍正) 연간에 성립된 도시다.

 

 1940년까지 후룬[呼倫]이라고 부르다가 할라르강의 이름을 따라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빈저우철도(하얼빈~만저우리)에 접해 있다.

 1700년 무렵부터 개발되기 시작하여 부근의 목축지역에서 생산되는 양모·모피·가축의 집산지가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정부의 목축산업 장려책으로 목축산업이 부활하고 있다.

 

 도착하는 날은 비가 몹시 내렸다.

 숙박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이 도시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 교포(조선족) 분께 부탁드렸다.

 지금처럼 관광 성수기엔 방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노숙(?)을 면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이런 분께 부탁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라르 있는 동안에는 이 분의 도움을 받았다.

 이 분을 신상 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어느 공직에 있는지는 적지 않는다.

 혹,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시고자 하는 분이나 꼭 필요한 분이 계시면 필자에게 직접 문의해 주시기 바란다.

 이하 박선생님으로 부른다.

 

 박선생님은 고맙게도 열차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우리 교포들의 저력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곳은 대부분 정치적인 헤게모니가 한족과 몽고족에게 있는 지역이다.

 우리 교포래야 눈을 씻고 찾아도 거의 찾을 곳이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직에는 늘 우리 교포들이 즐비하다.

 

 할라르에도 사회안전부(우리로 따지면 국정원), 경찰 등 권력 기관엔 우리 교포들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찍이 중국 교포의 경우 한국의 엘리트들이 많았다.

 미주 지역은 주로 노동이민이 많았던 반면에, 만주 쪽은 독립 투사의 후예들이 많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노동자의 후예들이 미주 사회에서 크게 떨치는 마당에, 엘리트들의 자손들이 중국에서 출세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현재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로부터 “조선족”이란 이름으로 무시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

 바쁜 공직 생활에 불구하고 필자를 안내하여 할라르 일대를 둘러보게 해 준 이런 분을 만나게 되면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할라르에서 서쪽으로 약 20분 정도 달려나가면 어원커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있다.

민족 총수가 3만 정도인 극소수민족인데, 대부분은 외몽고(몽골공화국)에 살고, 이 곳에는 수천 명이 산다고 한다.

 오늘은 이들의 경마 경기이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면서 질주하는 기수들은 대개 10세 전후의 소년들이다.

 몽고 말들은 작고 통통하지만 억세고 지구력이 강하다.

 천 년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그들이 초원을 질주한다.

 우리 민족 역시 기마민족이 아닌가?

 말 달리는 모습을 보니, 뜨거운 피가 용솟음친다.

 

 몽고 말은 트롯을 하지 갤럽은 하지 않는다.

 갤럽은 깡총거리면서 뛰는 것을 말하는데, 과천 경마장에 가면 그런 뜀박질로 경주마들이 갈린다.

 트롯은 정확한 몽고말로는 ‘조리모리’라고 부른다.

 조랑말이란 뜻은 이 ‘조리모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같은 쪽 오른쪽 앞뒷발과 왼쪽 앞뒷발이 번갈아 내닫는다.

 전력질주로 기록은 떨어질 지 모르나, 몽고말들은 종일토록 이런 달리기를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조리모리를 하면, 말을 탄 사람이 덜 흔들려서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또, 자세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말 위에서 활을 맘대로 쏠 수가 있다.

 또, 몽고 말은 체구는 작으나, 점프력이 뛰어나고 언덕 위로도 잘 달리며 자갈길도 문제가 없다.

 편자 없이도 잘 달리기 때문에 굳이 편자를 쓸 필요가 없다.

 

 

 

 

 

 천 년 전 몽고 군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몽고에는 치중(輜重)이 따르지 않는다.

 말하자면 보급대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군량도 모두 자력 해결한다.

 

 몽고군 병사 1명이 싸움터에 나가면 말 5필이 함께 나간다.

 이 말들은 이 군사가 어릴 때부터 키워온 말들로 굳이 길들이기 할 필요가 없다.

 전장에 나가면, 이 군사는 이 5필의 말을 갈아타면서 싸운다.

 말들은 교대로 주인을 태우기 때문에 전혀 피로하지 않다.

 또, 고삐나 다른 줄로 묶어 놓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말 주인이기 때문에 휘파람 하나 만으로도 제어가 된다.

 또, 주인이 적과 마주치게 되면 5마리의 말이 동시에 상대방 말을 물어 뜯는다.

 몽고 말은 재갈이 없고 사납기 때문에 상대방 말은 당장에 꼬리를 뒤로 하고 달아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군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말은 양식이 필요 없다.

 초원이 있다면 말먹이는 어디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먹거리는?

 몽고에는 쇠고기를 말려서 육포를 만드는데, 바람에 말렸다고 해서 풍간(風乾)이라 한다.

 잘게 찢어서 말리는데, 소 한 마리를 육포로 만들면 소 방광으로 만든 자루 하나에 다 들어간다.

 이것은 몽고 군인의 1년치 식량이다.

 

 말 5마리와 1년치 식량인 소방광에 가득한 육포는 군사의 자부담이다.

 몽고 군대는 소집만 하면 수십만이 즉시 모인다.

 모든 무기와 군량 그리고 마필까지 스스로 갖고 오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할 일이 하나도 없다.

 다만, 유능한 지휘관이 지휘하면 된다.

 멀리 유럽까지 정복하게 된 데에는 이런 효율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원에 겨울이 오면 추위가 혹독하다.

 모든 강이 얼어붙고, 풀은 다 두터운 눈얼음 속에 묻힌다.

 이럴 때 대부분 부족들은 겨울 숙영지에서 겨울을 난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하는 만큼 이 숙영지를 두고 부족간의 갈등도 많았다.

 후룬뻘은 타타르 부족들이 살던 터전이다.

 그들의 숙영지는 홍화얼치(紅花爾基)였다.

 홍화얼치는 몽고어로 “웅덩이”란 뜻이라 한다.

 

 홍와얼치는 거대한 삼림과 초원이 만나는 곳이다.

 할라르를 떠나 2시간 쯤 달렸을까?

 우리네 시골 면소재지 정도의 작은 부락이 나왔다.

 한 식당에 들어가니, 박선생님이 미리 연락을 했는지 현지 산림청 간부가 나와 있다.

 허르헉(중국식 이름 “쇼바로우”)이 곧장 나온 것으로 보아, 미리와서 요리를 시킨 것 같았다.

고향이 산동이라고 했다.

 한족이다.

 

 허르헉이란 몽고 전통요리인데 뜨거운 돌과 양고기를 켜켜이 쌓아서 익혀 내는 것인데, 정말 맛있다.

 푹 익었으면서도 육수가 전혀 빠져 나가지 않아서 고기 맛이 일품이다.

 아주 날카로운 손칼 하나씩을 잡고, 고기를 직접 뜯어서 먹는다.

 (이 때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한국에 돌아오니 몸무게가 무려 5Kg이나 늘어 있었다.

 이 글은 쓰는 순간에도 체중 조절로 고생을 하고 있다.)

 

 

 

 

 

 

 

 

 

 

 

출처 : 맹해야생보이차연구소
글쓴이 : 아이굄(호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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