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史, 하북성 대통하는 白河,楡河,渾河의 합수: 현 혼하는 조선의 압록강으로 글 : 솟대 / http://www.coo2.net/네티즌 자유게시판 15589 / 2009-02-17 12:36:42
조선전기도 선조때의 강역은 태자하쪽으로 더 축소되었지만 명나라가 존속하였던 대부분의 시기는 혼하를 국계로 하였다고 보여집니다. 단, 혼하라인에서 축소된 것이 조선 성종때부터인지 명종-선조때부터인지는 사서들-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의 기록이 혼선되는 부분이 있어 확정적인 시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빠르면 성종대왕때부터 늦으면 이여송의 아비인 이성량이 활약하던 선조때부터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개략적으로 보신다면 혼하를 따라 그으시면 대략 맞다고 보여집니다. 혼하상류이동으로는 조선의 동북계로 야인여진정벌이 활발하였던 성종때까지는 거의 길림성과 요녕성 교계를 따라 북으로 올라갔지만 중종이후 명종,선조때에는 점차 조선의 동북계가 남으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략, 이성량 등장전까지는 조선에 려진이 복속되었으므로 조선강역으로 단순히 보셔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물론, 이는 청나라때가 아닌 명나라때 조선과 명의 국계임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나라때는 이보다 후퇴합니다. 청나라때는 조선의 강역변화가 가장 변화가 극심했던 시기인지라.... 별첨 1. 명대의 조선국계라인추정 : 혼하 라인 ~ 길림.요녕 교계 별첨 2. 휘발하의 지류인 아길선하, 도문하(=토문하),삼둔하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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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님 조선(朝鮮) 시대의 압록강(鴨綠江)이 <혼하(渾河)-요하(遼河)>를 연결하는 선(線)으로 추정하는 것은 ‘정계비(定界碑)의 수수께끼’를 풀수 있는 ‘또 하나의 실마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향고도 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청(淸)과 ‘동(東)은 토문강(土門江) 서(西)는 압록강(鴨綠江)’으로 정계비(定界碑)를 설치하였다.”는 사실이 몹시 좌계에게는 혼란(昏亂)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청조(淸朝)는 자신들의 조상(祖上)의 성지(聖地)이기 때문에, 국경(國境)을 조선(朝鮮)과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새롭게 정립하여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는데, 오늘날 두만강(豆滿江)이라고 칭하는 곳이 토문강(土們江)으로 표시된 지도도 현셜적으로 발견이 되고, 또 정계비(定界碑)가 있던 위치 역시 두만강(豆滿江) 상류 쪽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좌계가 “이 정계비(定界碑)는 미스테리이다.”라고 생각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두만강(豆滿江)으로써 경계를 삼는다면, 굳이 ‘청조(淸朝)의 조상들의 성지(聖地)’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재조정해야한다“는 것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향고도님’ 께서는 자신의 홈페이지 (http://blog.daum.net/sabul358)의 ‘만주 고지도 카테고리’에서 ‘토문하(土們河)가 표기된 동북지도-로국동방경영부전면’이란 글에서 새로운 토문하(土們河)를 발견하였읍니다. 좌계는 ‘향고도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 ‘토문강(土門江)은 원래 정계비(定界碑)를 세울때 2개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쪽의 ‘토문강’ 사이는 조선(朝鮮)의 강역이긴 하나, ‘청조(淸朝)의 성지(聖地)’가 있는 곳은 예외라 한다.“는 것이 그 실질적인 내용이라고 좌계는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좌계가 볼때에는 “조선(朝鮮)의 압록강(鴨綠江)도 2개가 되는 것을 원래 정계비(定界碑)를 세울 때의 실제 상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즉 오늘날 압록강(鴨綠江)이 조선(朝鮮)과 청(淸) 혹은 그 이전의 명(明)과의 국경선(國境線)이기도 하고, 또 솟대님이 말씀하신 요하(遼河)-혼하(渾河)라는 압록강(鴨綠江)도 국경선(國境線)으로 하기도 하는등 혼선(混線)이 계속 있었으나, “정계비(定界碑)를 세울 때에, 2개의 토문강(土門江) 사이의 ‘청조(淸朝) 성지(聖地)’를 인정하는 대신 그간 혼선(混線)을 빚던 조선(朝鮮)의 국경 문제를 ‘솟대님’께서 말씀하신 압록강(鴨綠江)으로 확정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내용이 아니라면, 사실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는 협상을 무엇때문에 했으며, 또 조선(朝鮮) 측에서 그런 귀한 협상을 하였으면서도, 굳이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려 갈때에는 올라가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좌계가 추측하는 대로 협상이 타결되었다면, 사실 굳이 올라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솟대님’께서 말씀하신 요하(遼河)-혼하(渾河) 지역으로 조선(朝鮮)의 관리가 가서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청(淸)은 ‘청조(淸朝)에게 중요한 정계비(定界碑) 쪽인 두만강(豆滿江) 상류(上流)로!“ “조선(朝鮮)은 조선(朝鮮)에게 중요한 혼하(渾河) 상류로!” 각기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이런 면에서 ‘솟대님’의 압록강(鴨綠江)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좌계는 보고 있습니다. 한가지 청(請)이 있다면, 지금 비정하는 요하(遼河)-혼하(渾河)의 국경선을 ‘댓글’로 지도(地圖)에 그려서 올려주실수는 없겠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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