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문화경제

[한국에 살아보니]일본 속 백제마을-매튜 클레멘트 장안대 영어과 교수

monocrop 2008. 5. 3. 05:40

[한국에 살아보니]일본 속 백제마을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7.12.28 18:05 | 최종수정 2007.12.28 18:10


일본 미야자키에서 4시간쯤 떨어진 규슈 지방에는 특이한 시골 풍경이 있다. 아침 안개를 뚫고 북쪽으로 가다보면 '백제마을'이라는 한글 이정표가 보인다. 재일교포 마을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민이 모두 일본 사람인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 마을 초등학교에 가보면 놀라운 일이 있다. 아이들이 누구나 조금씩 한국말을 하고 학교 입구에는 한국어가 적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학교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능숙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일본 산골마을에 어떻게 한국말과 한국문화가 퍼졌을까? 이 마을 촌장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어봤다.

"하라다 수미오 백제마을 촌장은 '난고손'(남향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백제 역사의 전설을 세상에 알리고 그로 인해서 한국과 국제 교류를 하면 그 영향으로 이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엔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 백제의 왕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왔다. 또 '백제왕'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20년 전, 촌장은 백제의 전설을 바탕으로 마을을 발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백제 왕국의 수도였던 부여시와 교류하면서 학생들을 서로 방문하게 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이 조금씩 한국말을 배워가면서 동네 안내판에도 모두 한글을 넣고 명함에도 한글을 넣었다.

산 중턱에는 정자를 짓고 한국 사찰인 백화암의 이름을 따서 '백화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1990년에는 한국에서 목수들과 단청 기술자들을 불러와 '백제관'이라는 자료관을 지었다. 백제관 안에는 백제 문화와 일본 문화가 얼마나 관련이 많은가에 대한 내용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백제 불상의 모습이 일본의 불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백제관의 한쪽에는 한국 물건을 파는 매점이 있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한국산 장신구,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라면, 돌솥, 불고기판까지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마을에서 직접 만든 김치를 팔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마을은 미야자키현에서 가장 가난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1만명 이상, 1년에 14만~15만명이 오고 있고 특산물인 김치를 한달에 3000만엔어치 이상 팔고 있다고 한다. 일부러 관광지로 꾸며진 마을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마을은 이곳을 찾는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고 있었다.

내가 가본 규슈 지방의 모든 일본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문화적인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인들은 이러한 문화적인 우월성을 일본인보다 더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가장 흔하게 보는 사례로 음식을 들 수 있다. 연인이나 아는 사람 간에 격식을 차리면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경우,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은 좀체로 그 메뉴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우아한 분위기와 한국음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식, 혹은 일본식 식사 정도는 해야 폼이 난다고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멋지게 보이고 싶은 상대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웬만한 요리는 가장 프랑스식으로 조리해야 '상류층의 음식'으로 여긴다. 그래서 통째로 굽거나 찌는 요리가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가장 한국적인 음식에 대해 특히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매튜 클레멘트 장안대 영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