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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왕릉 1600년만에 '햇볕' 본 처녀분

monocrop 2008. 4. 12. 10:47
대가야 왕릉 1600년만에 '햇볕'
[한국경제신문] 2008년 04월 09일(수) 오후 07:16   가| 이메일| 프린트
고령 지산동 고분서 철제관식 등 1300여점 출토
도굴 안된 처녀분­… 대가야 시기 반세기 앞당길듯

20개 이상의 조직이 구획을 분담해 축조한 1600년 전 대가야의 왕릉이 속살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부터 대가야의 도읍이었던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 73.74.75호분을 발굴 중인 대동문화재연구원은 9일 "5세기 전반의 왕릉급에 해당하는 대형분 2기(73.75호)에서 여러 개 조직이 구역을 나눠 봉분을 축조한 구획축조 방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토기,철기,마구,장신구 등 1300여점의 다양한 유물을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원이 발굴 중인 고분들은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조사 결과 73호분은 여러 차례 도굴을 시도한 흔적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은 처녀분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이 연구원의 최재현 조사팀장은 "일제 강점기 이래 발굴 조사된 지산동의 중대형 봉토분은 모두 도굴된 상태여서 73호분도 도굴됐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면서 "처녀분 발굴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밝혔다.

또 73호분은 지산동 고분군이 대부분 수혈식 석곽묘인 것과 달리 대형 목곽봉토분으로 밝혀졌다.

수혈식 석곽묘의 전 단계인 목곽묘가 확인된 것은 처음으로 대가야의 편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73호분에서는 22개의 돌띠가 확인돼 직경 23m,높이 7m의 원형 봉분을 축조하는 데 22개의 조직이 분담했음이 밝혀졌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73호분의 경우 깊고 넓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주곽과 부장곽을 T자형으로 배치하는 한편 목곽과 무덤구덩이 사이의 공간에는 깬 돌을 채운 구조로 확인됐다.

대가야 고분에서 이 같은 구조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75호분 또한 대형 수혈식 석실과 부장품곽을 T자형으로 배치했으며 석실을 중심으로 무덤구덩이의 벽면을 따라 등 간격으로 돌아가며 8명의 순장자를 안치한 순장곽이 확인됐다.

특히 봉토 내 순장곽에서는 순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초기 형태의 철제관식(冠飾) 1점이 최초로 출토됐다.

유물도 다량으로 확인됐다.

그릇받침과 목단지 등 대가야 양식의 토기류 200여점을 비롯해 환두대도.관모장식.화살촉.창 등의 철기류와 등자.재갈 등의 마구류,경옥제 곡옥과 유리옥 1000여점이 결합된 목걸이.금반지.금귀고리 등의 장신구,금동화살통장식.금동팔찌장식.은제귀면장식 등이 출토됐다.

특히 73호분에서 발견된 주름병과 톱니모양점열문(點列文)이 새겨진 작은바리(소완)는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돼 기존 학설과 편년을 재고하는 획기적 자료로 평가된다는 설명이다.

주름병 등은 지금까지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대표적 기종의 하나로 알려져왔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구획축조 방식의 구체적인 내용과 다양한 패턴의 순장곽,다량의 부장 유물 등은 향후 대가야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1600년전 대가야왕릉 발굴
[뉴시스] 2008년 04월 09일(수) 오후 05:16   가| 이메일| 프린트
【대구=뉴시스】대가야의 도읍이었던 경북 고령의 지산동고분군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군과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대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형 봉토분 2기(제73ㆍ75호분)와 중소형 봉토분(제74호분) 및 그 주변부의 소형분들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현재 발굴조사는 지난 1977년 발굴조사된 제44∙45호분(5세기 후엽)이래 30여 년 만에 재개되는 대가야 역사와 문화 복원을 위한 가장 대규모 학술조사이다.

현재 발굴중인 제73호분은 대가야의 대형 목곽봉토분으로,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22개의 돌띠인 구획석렬(區劃石列)을 통해 직경 23m, 추정높이 7m의 원형 봉분을 축조하는데 무려 22개의 조직이 분담하였음이 밝혀졌다.

고분의 축조는 깊고 넓은 무덤구덩이인 묘광(墓壙)을 파고 그 안에 주곽(主槨)과 부장곽(副葬槨)을 T자형으로 배치했다.

나무로 된 곽(槨)과 무덤구덩이 사이의 공간에는 할석(割石:깬 돌)을 채운 구조로, 이러한 공간구조는 대가야 고분 등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래 발굴조사 된 지산동의 중대형 봉토분들이 모두 도굴되어 일부 유물만 남아 있었으나, 이 고분은 여러 차례의 도굴이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부는 도굴의 피해가 미치지 않은 처녀분으로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제75호분은 직경 28m× 26m 규모의 타원형 봉분을 축조하였는데, 20개 조직이 각각의 범위를 나누어 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내부는 73호분처럼 깊고 넓은 무덤구덩이(墓壙)를 판 다음 그 안에는 대형 수혈식석실과 부장품곽을 T자형으로 배치했다.

이 고분에서는 수혈식석실의 일반적인 구조와 달리 얇고 평평한 고분의 개석(蓋石:뚜껑돌)을 떠받을 사각기둥 모양의 대들보를 일정한 간격으로 걸친 다음 개석을 덮은 특이한 구조이다.

또 석실을 중심으로 무덤구덩이(墓壙)의 벽면을 따라 등간격으로 돌아가며 여덟 명의 순장자를 안치한 순장곽이 확인됐고 봉토 중에는 순장곽 1기와 소나 말 등 동물을 순장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순장부 2곳이 확인됐다.

특히 봉토내 순장곽에서는 순장자 머리 부분에서 철제관식(冠飾) 1점이 출토되었는데, 철제의 관식은 초기형태로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일한 예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재 석실과 부장품곽에 대한 내부조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각종 철기류와 다량의 토기류가 계속 출토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그릇받침과 목단지 등 대가야 양식 토기류 200여 점을 비롯해 환두대도∙관모장식∙화살촉∙창 등의 철기류와 등자∙재갈 등의 마구류, 경옥제 곡옥과 유리옥 1000여 점이 결합된 목걸이, 금반지, 금귀고리 등의 장신구와 금동화살통장식∙금동팔찌장식∙은제귀면장식 등도 출토됐다.

특히 제73호의 목곽뚜껑 위에 금분(金粉)으로 장식한 나무함 속에 넣어 올려두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가운데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의 하나로 알려져 온 주름병과 거치상점열문(鋸齒狀點列文)이 시문된 작은 바리(小盌)는 중국 등 외국으로부터의 이입품(移入品)으로 추정돼 기존 학설을 재고하는 획기적인 학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대동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이번에 조사 중인 5세기 왕릉급에 해당하는 대형분 2기는 고대 토목기법과 다양한 패턴의 순장곽, 고분의 안팎에서 계속 확인되고 있는 다량의 부장유물 등 대가야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문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학술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6월 중순까지 계속되며 고령군은 11일부터 14일까지 ‘무덤의 전설’이란 주제로 제4회 대가야체험축제를 개최해 그동안이 발굴과정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우성문기자 wsm@newsis.com
 
 
대가야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