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의 기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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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문화를 ‘전파’라는 관점에서 보았던 차일드는 다윈의 진화론, 혹은 그에 근거한 ‘사회진화론’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문명 전파론’은 도전을 받는다. 예컨대 동남아나 중국의 농경은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 됐다. 문명(문화)의 상징물인 토기도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오리엔트보다 빠른 1만 여 년 이상 된 것도 있다.
물론‘문명(문화)전파론’을 모조리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다만 비슷한 유물이 상이한 지역에서 나왔을 때 선진 지역에서 ‘전파’됐다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온돌도 마찬가지다. 온돌은 이제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등에도 ‘ondol-한국의 대표적인 난방 방식’이라고 소개될 정도로 우리 문화의 상징이 됐다. 온돌은 2500여 년 전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살던 북옥저인들에게서 기원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곳 외에도 북흉노지역(바이칼호 동쪽인 자바이칼)이나 로마에서도 온돌이 발견됐지만, 북옥저인들 것보다는 조금 늦다. 북옥저인들의 활동 지역을 고구려와 발해가 계승했으며, 온돌 역시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온돌의 기원을 우리 민족과 연결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민족 온돌 기원설’에 중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미국 알래스카주 알류산열도에서 북옥저인들 것보다 500년 빠른 온돌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릭 크넥(Rick Knecht)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 교수(고고학)는 미국 고고학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고고학(Archaeology)’ 2007년 5~6월호, 그리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3년 알래스카주 어날래스카(Unalaska)시 아막낙(Amaknak)섬 발굴 중 온돌을 갖춘 집터가 나왔다”며 “방사성탄소연대법으로 측정한 결과 3000년 전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크넥 교수는 “모두 4개의 온돌 구조가 발굴됐다”고 했다. 온돌은 집 바닥에 길이 2~4m 정도의 얕은 도랑을 파고 평편한 돌을 ‘V’자 형태로 여러 장 도랑 벽면에 세운 뒤, 그 위도 역시 평편한 돌로 덮어 방고래를 만들었다. 집 바깥으로는 연기가 나가는 굴뚝 시설도 있다. 발굴 자료를 살핀 송기호 서울대교수는 “온돌로 볼 수밖에 없다”며 “고대의 온돌은 모두 방 한쪽에만 구들을 마련한 쪽구들 온돌인데, 아막낙섬 역시 쪽구들 온돌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온돌은 알래스카에서 기원해서 서쪽으로 전파된 것일까? 크넥 교수나 송기호 교수 모두 이에 반대하며 ‘(만주-연해주와 알래스카지역에서의) 독자 발생설’을 이야기했다. 송 교수는 “두 지역 사이의 ‘온돌 전파’를 이야기하기에는 그 중간 지역에서 온돌이 발굴된 예가 없어서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신형준 기자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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