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History/01 동이문명관련·동북공정

[스크랩] [커버스토리]좌담회 “우리 민족 정체성 찾을 단초 마련”

monocrop 2007. 10. 12. 21:28

[커버스토리]좌담회 “우리 민족 정체성 찾을 단초 마련”






윤명철


정석배


주채혁


양민종


시미즈 키요시


이형구


정재승


이기환
24일간의 대장정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의 성과와 의미를 짚어본 좌담회

일시 | 2007년 9월 17일

장소 | 경향신문 출판본부 회의실

참석자 |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문화유적학

양민종 부산대 교수·노문학

주채혁 세종대 교수·역사학(북방사)

이형구 선문대 교수·역사학(고고학)

시미즈 키요시 순천향대 초빙교수·비교언어학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장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회) 윤명철 동국대 교수·한국사


윤명철(사회):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지난 7월 9일부터 24일까지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긴 했는데요,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내몽골 깊숙한 지역뿐 아니라 그동안 한국에서 거의 접근하지 못했던 대흥안령 지역, 그리고 이번 답사의 출발지이자 종착점인 요하문명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고생도 많았지만, 그동안 사료로만 접했던 다양한 종족을 직접 만나 삶·기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여러 팀이 부분적으로 답사했지만, 이번처럼 하나의 목적으로 총괄적으로 답사한 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연해주, 바이칼, 대흥안령, 요하문명의 순서로 되짚어보죠.

정재승: 잠깐,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답사구역의 명칭 문제부터 논의해야 할 듯합니다. 요하문명이라는 이름은 아직 광범위하게 합의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은 그런 이름을 쓰지만, 우리가 섣부르게 쓰는 건 곤란합니다. 발해연안 문명권이나 만주라는 이름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요하문명권이라는 이름은 피했으면 합니다.

사회: 용어 사용과 관련해서는 논쟁점이 남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짚어두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정석배: 일단 연해주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발해입니다. 발해는 연해주뿐 아니라 아무르강, 즉 흑룡강 유역까지 영향권에 두고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지역의 발해는 아직까지 조사할 수 없고, 연해주만 조사할 수 있습니다. 발해 성터의 경우 크라스키노 성과 같은 성은 고구려 성과 닮아 있습니다. 절터는 아브리코스 등 모두 5개가 알려져 있는데, 발해 절터에서 불교가 널리 통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고분이나 토기도 기본적으로 고구려 계통이라는 것이 확인되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그 관련성이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발해 이전 우리 역사로는 옥저가 있습니다. 단적인 것이 구들, 다시 말해 온돌문화죠. 종전에는 온돌의 기원을 고구려로 봤는데, 지금은 크로우노브카, 즉 옥저 지역에서 온돌이 기원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옥저 다음은 서기 2~3세기에 형성된 ‘뽈제’ 문화인데, 역시 온돌이 발달했습니다. 숙신이나 읍루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온돌로 보면 우리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형구: 온돌의 기원이 옥저라고 하는데, 계속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일부에서 시베리아 쪽과 연결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정석배: 토기에서도 공통적인 것이 발견됩니다. 우선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로 연해주에 자이사노브카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번개무늬토기가 특징적입니다. 번개무늬 토기는 두만강과 압록강 유적에 신석기시대 후기에 집중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러시아에선 이 지역들을 자이사노브카 문화와 같은 맥락으로 봅니다. 또 한반도 동해안·남해안 지역과 제주도에 신석기시대 전기의 평저 융기문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런 토기는 아무르 강 중류지역에서도 보입니다. 사실 이 평저 융기문토기의 분포권에는 일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반도의 선사와 역사시대 문화들이 연해주와 아무르강 유역은 물론, 멀리 바이칼 지역까지 깊은 관련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기환: 체르냐치노 유적의 고분을 보면 여러 형식이 나오는데, 발해와 고구려·말갈족의 신분관계라든가 더불어 살았던 증거가 되는 것인지요.

정석배: 하나의 고분군 내에서 고분들이 일정한 구역을 이루고 있고, 각 구역에서 고분들의 종류가 다르다면, 그것은 당연히 피장자들의 위계를 반영하고, 또 여러 계통의 사람들이 함께 살았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기환: 언어가 다를 때 과연 한 종족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텐데요.

시미즈: 고고학자들이 과거 유적을 발굴하고 감정하듯, 우리 언어학자들도 고문서를 감정합니다. 만일 오래된 언어 형태가 발견되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유래했는지 생각합니다. 연해주로 가기 전에 저는 거기에서 새로운 것이 발견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을 보고 돌아오자 ‘토끼’에 대해 고대 문서에 수록된 알타이어 단어 목록이 달라 보였고, 저는 그것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구려어에서 ‘토끼’는 오사함(烏斯含)이라고 하는데, 일본어에서는 다시 우사기( うさぎ)라고 합니다. 한국어는 ‘토끼<톳기’의 형태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와 일본어의 형태가 거의 똑같다는 겁니다. 대흥안령 지역의 다구르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형태의 단어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토끼라는 언어의 형태를 놓고 본다면 만주와 일본열도 전체가 한때 고구려어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 두 번째 지역, 바이칼로 넘어가겠습니다. 양민종 교수께서 정리해주시죠.

양민종: 한민족의 원류에 해당하는 문화가 바이칼에서 시베리아 루트를 타고 한반도 북부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 상식적인 주장인데, 실제 증거는 없습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국가나 민족이나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것이 최근 몇백 년 사이라는 거죠. 민족의 이동경로나 한민족이 바이칼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좀더 겸허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단군신화와 유사한 이야기가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공유되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두 번째로 이야기의 세계관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의 개념은 서구학자가 내놓은 거예요. 이것을 시베리아 지역에 적용하기는 곤란해요. 이야기의 모티브가 바이칼·시베리아부터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샤머니즘의 영향이 ‘어디에서 어디로’ 미쳤다고 정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단군신화와 시베리아 신화의 연관성을 보죠. 시베리아의 게세르 이야기의 얼개는 단군신화와 비슷합니다. 게세르 이야기는 1716년에 채록되었죠. 반면 우리 단군신화는 13세기 일연선사(‘삼국유사’)가 정리했죠. 13세기 이전에도 단군신화가 존재했겠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죠. 그러나 건국신화라는 부분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로 주어진 것은 13세기로 고정된 것입니다. 하늘신의 세계에서 지상의 세계로 수많은 신무기, 우사·풍백을 거느리고 내려온다는 것이거든요. 사실 곰족이니 호족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죠. 결론적으로 단군신화는 탈민족화되어야 합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세계 시민을 지향하는 형태예요. 역설적으로 우리는 거기에서 민족주의를 찾았지만, 단군신화의 민족적 지향성은 민족 외부로 향하는 외부 지향형입니다.

정재승: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획 단계부터 여러 견해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이칼포럼에서 답사나 학술 미팅을 하면서 출발을 바이칼에서 원류를 찾는다는 가정과 목표 아래 작업했습니다. 다년간 답사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멤버도 열려 있고, 일관된 이념을 바탕으로 연구해온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원론적 민족의 뿌리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으로 유연해지는 것을 학술적 탐사 끝에 발견했습니다.

바이칼 기원론은 제가 알고 있기론 강단 고고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최몽룡 서울대 교수의 저서 ‘한국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1993)에서 1만3000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에 바이칼 호수 지역에 살던 몽골리안의 일부가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서술하면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거죠. 지금으로서는 학술적으로 바이칼이다 뭐다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유전학이나 신화학 등 다방면으로 상이한 증거들이 따져보면 몇 가마니씩 나오잖아요. 섣불리 결론을 내놓기보다 계속 미완의 상태로 당분간 더 연구를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기환: 결국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닫힌 세계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됩니다. 흔히 홍익인간이나 백의민족 또는 단일민족이라고 하는데, 지금 양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런 단일민족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인가요.

양민종: 정확한 지적입니다. 단군은 단군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죠. 단군과 유사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한반도에서 채록한 것이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민족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에 씌인 꺼풀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다시 드러내자는 거죠. 단군을 원래의 이야기 세계로 돌려주고, 보편적 인간주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재조명하자는 거죠.

사회: 부리야트 공화국으로 넘어가보죠. 거기서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흉노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목만이 아니라 농경문화를 띠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시죠.

이형구: 일단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흉노와 우리는 관계 없다고 봐요. 흉노 이전에 석관묘가 있었고, 낙랑도 있었고, 우리가 훨씬 빠릅니다.

사회: 부리야트와 우리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재승: 그게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러시아 쪽 자료는 아직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유전학적으론….

이기환: 브리야트와 유전적 친연성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것은 비슷한 것이고, 기원을 이야기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채혁: 바르쿠진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바르’는 호랑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에 호랑이와 관계된 지명이 많다는 것, 그리고 1905년에 마지막 호랑이가 거기서 죽었다는 것을 이번에 가서 확인했습니다. 코리족의 ‘코리’는 순록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주로 있었던 곳이 북극해 쪽입니다. 이들이 예니세이강이나 레나강-옛날에는 바이칼과 연결돼 있었죠-을 따라 바이칼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북쪽에는 호랑이가 못 사니까 이들은 곰 토템이고, 곰족인 코리족 부족들의 연합장이 바르쿠진족, 즉 호랑이족과 결혼해서 (아니면 정복했을 수도 있죠) 낳은 것이 몽골족의 시조의 어머니인 알랑 고아입니다. 물론, 다 알다시피 이게 바로 단군신화죠.

이기환: 몽골리안이라는 말은 마르코 폴로가 쓴 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13~14세기의 일입니다. 그래서 몽골에서 우리 뿌리를 찾는 것은 잘 모르겠고, 오히려 몽골은 발해가 망한 뒤 거란에게 쫓겨 올라간 유민들이 세웠을 가능성이 있고, 몽골의 여시조인 알랑 고아가 코리족의 후손이고, 칭기즈칸은 친아버지가 메르키트족, 즉 발해 계통의 말갈족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네요. 오히려 몽골이 발해의 후예라는 설도 가능하다는 거죠?

정석배: 지금 몽골에서 거란 유적을 발굴하는데 그곳이 성터입니다. 몽골과 러시아 학자들 모두 발해 유민들이 만든 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채혁: 신화와 종교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어요. 솔롱고스라고 불리는 부족이 제일 먼저 산 곳은 바이칼 동남쪽입니다. 바이칼에서는 그곳이 해가 뜨는 쪽이거든요. 아주 재미있는 게, 나중에 칭기즈칸이 부인을 빼앗기고 되찾기 위해 이곳, 즉 서북쪽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기록에는 해 뜨는 쪽의 솔롱고스를 공격해 공주를 취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서북쪽을 공격하면서 ‘해 뜨는 쪽‘이라고 한 것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지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저는 흥안령 지역의 근하(根河)를 고리국의 주몽이 도망 나온 곳으로 나름대로 비정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가보니까 그런 생각이 더 들었어요. 목초지가 굉장하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뿔이나 깃털인데, 유목민들의 고유한 습성이지요. 머리에 깃털을 장식하고 심지어 뿔이 없는 말에도 뿔을 그려넣지 않습니까. 중국에는 뿔이나 깃털이 없어요. 그런 것은 숲이 아니면 나올 수 없죠.

사회: 뿔이나 깃털 문제는 우리와 ‘관계가 있다’ 정도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채혁: 제가 보기엔 관계가 아니라 기원입니다.

이형구: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발해 연안에서도 각배 같은 게 많이 나오잖아요.

사회: 쉽게 결론 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흥안령 지역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보죠. 소수 민족들의 기원은 어떻게 된 걸까요.

주채혁: 에벤키족의 ‘에벤’은 목초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룬춘족의 ‘오룬’은 순록이라는 말이고요. 오랑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구르족은 현지에서는 부정했지만, 본토 발음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골리라고 봅니다. 제가 보기엔 러시아 원정대로 나갔다가 눌러앉은 고구려 후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미즈: 순록에 관한 매우 중요한 단어들인 ‘이끼><니끼’와 노루, 수사인 ‘일곱’, 그리고 ‘부처’와 ‘절’ 같은 일부 중요한 불교 용어들은 고조선어나 고구려어로부터 대륙의 만주-퉁그스어, 그리고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로 차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고구려가 고대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종족을 그 영향권 아래에 둔 대륙의 제국이었으며, 또한 로마가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지역을 차지했듯, 고구려는 동해를 건너 일본열도까지 그 영역에 두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기환: 근대의 산물인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 자료를 보니까 양견자와 양록자라고 해서, 1만5000년 전 개를 기르는 사람과 사슴을 기르는 사람들이 결혼해서 하나는 숙신이 됐고, 하나는 조선이 되었다고 해놓았습니다. 맞는 얘기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만주벌판에서 피를 나눈 형제일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이웃사촌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민족’만 강조하지 말고 열린 시선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사회: 간단히 말씀드리면 흥안령 지역에서 연해주 남부까지 이어지는 문화에 다양한 종족이 남아 있습니다. 다구르족은 17세기에 처음으로 이름이 나오는데, 언어도 거란이나 우리와 비슷합니다. 에벤키나 오룬춘, 다구르 외에도 많습니다. 실위도 있는데, ‘남실위’의 경우 우리와 마철 교역을 했습니다. 북만주 지역은 자연이든 교역·종족관계든 어떤 식이든 관계가 깊습니다. 과거 고구려 영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채혁: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베리아와 만주와 한반도를 구별 없이 서술하는데, 시베리아는 물이 북극해로 흐르는 지역에는 추워서 호랑이나 양도 못 살고, 거북이도 못 삽니다. 훌룬부이르 초원도 물이 북극해로 흐르는 데서는 부족 단계 이상은 못 갑니다. 족조 전설만 있지 칸 전설이 없습니다. 그런데 물이 태평양으로 흐르는 곳으로 오면 칸이 나옵니다. 유목 제국이 성립하는 거죠. 장백산 지역은 이끼나 양초(羊草)가 없으니까 초원 지대와는 아주 다른 지역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줬으면 합니다. 이번에 놀란 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데, 풀이 손을 벨 정도로 뻣뻣하다는 거였습니다. 반대쪽은 부드럽죠. 유목지역과 비유목지역이 구분되는 겁니다.

사회: 훌룬부이르 초원은 고구려 이전에 부여, 부여 이전에 고리국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구려 전신과 선비족 후대의 거란족이 좀 더 가까운 혈통과 거의 유사한 언어와 유사한 정치체를 이뤘다는 것이 가설입니다. AD 1세기에서 3~4세기에 동아시아 종족을 이뤘다는 가설을 이번 탐사를 통해 제기해봅니다. 다음은 ‘발해문명권’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이형구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중국의 요녕성과 내몽골 지역을 주로 갔는데, 이 지역을 발해연안으로 봤습니다. 넓게 봤을 때 한반도에서 산동반도, 한반도 중부를 감싸 안는 지역입니다. 시미즈 선생은 아까 동해를 지중해라고 했는데, 저는 동해는 대서양이고 발해만이야말로 동양의 지중해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는 황하문명이라고 명명됐지만, 황하는 서해가 아니라 발해만으로 들어갑니다. 유럽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동방문명이 이른바 발해문명입니다. 신석기시대에는 우리 고대인들이 연해지구나 강하류 지구에 많이 살았습니다. 신석기·청동기 유적발굴로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과거 황하문명을 중국문명이라고 했습니다. 중원지방의 문명을 황하문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발해문명이라고 봅니다. 발해문명을 창조한 주인공은 중국 사람만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동이(東夷) 문명이 고대문화를 형성한 걸로 보는데 왜냐하면 동질성의 문화, 일종의 비슷한 문화가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통적인 문화는 민족의 동질성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빗살무늬토기인데, 과거에는 노르웨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유럽과 시베리아를 거쳐, 한 갈래는 흑룡강과 두만강, 또 하나는 바이칼을 거쳐 몽골, 만주, 압록강으로 해서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설이 있는데 제가 연구한 결과는 다릅니다.

정재승 북한의 빗살무늬토기는 암사동 것과 똑같더군요.

이형구: 암사동과 북한 평양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는 시베리아의 것과 상당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토기는 발해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농경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석기도 다릅니다. 대표적인 것인 반월형석도인데, 산동반도나 황하 하류 등에서 다 나오지만 시베리아에는 없습니다. ‘옥결’과 같은 옥으로 만든 귀고리는 운암리에서 나온 것은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르쿠츠크나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에서도 똑같은 게 나오지만 우리보다 2000년이 늦습니다. 그렇다면 시베리아에서 온 문화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엔 일제시대 때 교과서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비판 없이 받아들여온 거예요. 토기의 경우 신석기와 청동기를 거쳐 빗금무늬에서 무문토기까지 계속 발전해왔다고 봅니다. 거기에 단군이라는 건국신화가 추가된 것이죠. 제가 보기엔 한반도와 요동반도·발해연안이 동일문화권입니다. 제가 아는 민족개념으로 동일민족이라는 것은 이런 공통된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결론 내리겠습니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24일간의 대장정을 했습니다. 고고학자, 신화학자, 유목사학자, 유전학자, 역사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가 나왔는데, 중요한 것은 토론과 답사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을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탈민족주의, 국사해체론, 근대 이후 민족주의 개념 등이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들은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는 사실만으로, 일부는 서구식 민족 개념으로 끼워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서 이런 것을 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4일간의 대장정은 바로 이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석자 여러분의 건강과 건학을 기대하면서 오늘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ayang.com>
<정리|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출처 : 황소걸음
글쓴이 : 牛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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