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향가·만엽가·일본서기 해석

일본인 학자 고야쓰 부쿠니의 고백

monocrop 2007. 10.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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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본인 학자의 자기성찰

 

역사는 강자의 역사이다. 모계시대의 역사는 부계시대로 오면서 흔적만 남기고 깡그리 사라졌다. 부계시대의 역사도 그렇다. 강한 자가 나타나면 약한 자의 역사는 강한 자에게 먹혀 사라지고 만다. 단군조선이 진시황 8년에 진에게 멸망하면서 철저한 역사말살로 거의 다 사라지고 겨우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단군조선의 역사는 화하족의 역사로 둔갑하였다.

한반도의 역사도 중원의 역사처럼 망각되었고 흔적만을 남긴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이런 역사나마 거의 다 잊어버렸다. 잊혀 진 역사를 찾아가는 일이 시급하다. 사라진 역사를 회복시킴으로써 우리의 정체성과 사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KBS TV는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인 학자 오사카대학 명예교수 고야쓰 부쿠니(子安宣邦)의 강연을 녹화하여 방영하였다. (5월 17일 (수) 성균관대학에서 행한 강연 <한일관계의 역사적 현재>) 의미심장한 방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일본에 고마로 불리던 시대, 카라로 불리던 시대가 있었으나, 일본사람은 이들 시대를 모두 잊어버려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고마는 고구려를 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초기한성백제의 국도의 이름 한성漢城이 고마固麻(곰이라는 뜻)였다는 사실을 일본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를 고마로 부르지 않았고 고려라고 불렀다. 백제의 국도 고마에서 간 사람들의 시대를 다 잊어버리고 견강부회하여 고구려라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카라(韓)는 가라加羅의 변음으로 볼 수 있다. 가라는 오가五加의 나라那羅라는 뜻이다. 오가의 나라는 단군조선을 의미한다. 단군조선이 진시황 8년에 진秦에게 멸망하여 삼한三韓이 되면서 韓이라는 문자를 쓰고 카라라고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은 원래 삼한시대에 임금이라는 뜻으로 섰던 말이다. 그 연원은 동이족으로서 임금이 된 순舜임금에 둔다. 그러므로 순과 한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땅에는 이렇게 백제와 단군조선의 흔적만 남아 있다.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720년경에 나·당연합군과 백제·왜연합군이 백촌강에서 싸우다가 백제·왜 연합군이 패전하면서, 왜가 백제를 버리고 카라의 역사를 버렸다고 하였다. 이후에 왜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일본이 되었다.

왜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정체성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스사노 미코토로 불리는 남신을 내세운다. 스사노 미코토의 다른 이름이 부루신ぶる神이다. 부루는 단군왕검의 장자인 부루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스사노 미코토를 부루단군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의 정체성이 부루단군에게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부루단군의 후예가 부루를 조상신으로 모셔 오다가 그 이름을 일본이라는 국호를 내세우면서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낸 신화가 스사노 미코토가 천상계(주, 단군조선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에서 지상계(신흥 일본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로 내려오는데, 카라(주, 일본에서는 신라로 보고 있다)를 거쳐 온다고 한다. 이 부분의 역사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역사 단절을 선언하고, <일본고유존재설>을 만들어내는데, 그 뿌리가 신라를 거쳐 왔다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신흥 일본은 카라(단군조선-삼한)를 버렸지만, 스사노 미코토가 불의 신(태양신)이라는 점만은 버리지 않았다. 부루는 불이고 불은 태양을 의미하므로 태양신에 일본의 정체성을 두기 위하여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흥 일본은 스사노 미코토에게 누님을 만들어 주어 당분간 오누이신이 서로 주도권 다툼으로 갈등을 겪게 하다가 누님에게 최고신의 자리가 돌아가게 하였다. 카라계열의 스사노 미코토를 왕따시켜 버리고 신흥 일본에 필요한 시조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스사노 미코토를 일본의 토착신들과 합의하여 왕따시켜버린 누님이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이다.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를 일본에서는 천조대신天照大臣이라고 한다. 이는 태양신을 다르게 말한 것이다. 우리 문자로 바꾸어 쓰면 한桓· 단檀이 된다. 따라서 천조대신도 한인· 한웅· 또는 단군에서 온 말임을 알 수 있다.

일본신화는 "스사노 미코토가 천상계에 있다가 지상계로 추방당한 곳을 카라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조선의 신이였음을 말한 것이다. 스사노미는 우리 말로 '스스로 사는 놈'이라는 뜻이다. 신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최고신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조선朝鮮의 조朝는 해와 달이 뜨는 곳이므로 천상계가 된다. 선鮮은 조선의 백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여기가 우리 황해도무가와 한양무가에 나오는 ‘희나백성(熙氏那羅百姓)이 사는 거므나 땅(儉之地)’이다. 스사노 미코토가 추방당한 곳은 희씨나라 백성이 사는 거므나 땅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정체성이 단군조선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에도시대에 와서, 후지와라 토테칸으로 불리는 고증학자가 나와서, 일본 고대사에 남아 있는 카라의 흔적을 <충구발衝口發>이라는 책에 기록하여 놓았다. 15항목에 걸쳐서 일본의 고대문화가 중국의 문화와 카라의 문화임을 밝혀 놓은 것이다. 모토오리 모리나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충구발>을 비판함으로써 <충구발>이 유명해졌다. 그는 토테칸을 견광인이라고 하였다. 견광인이란 ‘미친 사람의 머리에 칼을 씌운다’는 뜻이라고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말했다.

그는 "모토호리 모리나가는 <고서기古書記>의 해석을 통하여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세운 사람이다. 그가 일본어를 확립했다. 일본문화, 야마토문화를 고서기의 해석을 통하여 발견했다. 그는 근대 일본의 혼과 정신을 만들어 낸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전전일본· 전중일본· 전후일본을 통하여 동일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일본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모토호리 모리나가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모리나가는 토테칸과 <충구발>을 비판하여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았다. 강연을 한 고야쓰 부쿠니는 노리나가를 평생 연구의 주제로 삼았으나 <충구발>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가 토테칸을 엉터리 고증학자라고 모리나가가 비판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그의 저술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들 대다수가 범하는 오류를 일본인 학자인 그도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살인을 할 수 있듯이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에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온 어느 유학생이 고야쓰 부쿠니 교수에게 ‘토테칸이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정작 그가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할 토테칸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엄청난 사실을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인 학자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강연에서, "나는 토테칸 넘어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처럼 모든 역사연구가들이 토테칸 너머의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자아비판하면서, 비로소 "토테칸 너머의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고 실토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아직도 일본인이 만들어준 집에 살며 그들이 준 침구 속에서 잠든 채 단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토테칸은 일본의 고대가 카라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하였다. 모리나가는 토테칸의 말을 미친 사람의 발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토테칸의 발언은 <일본고유기원설>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일본고유기원설>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광기狂氣의 지식에 의하여 <일본고유기원설>이 발생하였다. 광기와 정기精氣가 대결하여 광기가 정기를 압도함으로써 <일본고유기원설>이 정설이 되었다. 모리나가가 한 일이 이 일을 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순수조선이나 순수일본으로 보게 된다. 자기의 모국이 갑자기 홀로 생겨난 나라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절대로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한 순수조선이나 순수일본은 근대에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일본이 역사적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순수조선과 순수일본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야쓰 부쿠니 교수는 대체로 이러한 요지의 강연을 하였다. 그가 한 강연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점은 일본이 고마와 카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마와 카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고유기원설>을 주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가 일본에 대하여 지적한 것은 우리에 대한 지적과도 통한다.

일본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에서 카라를 지워온 역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카라의 정체성을 순수일본의 정체성으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정통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독선적이고 위험한 정체성이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며 단일민족이라고 내세우는 정체성처럼 모호하고 폐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