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정광산인(김문배씨가 마토노신사 비앞에서 서서) 이다
마토노진쟈의 석등롱에 새겨진 수수께끼의
고문자
일본 규슈의 미야자키겐 기타모로가타군 야마노구치조에는 마토노진자(的野신사)가
있다.
마토노진쟈에 모신제사신은 신공황후와 응신천황및 제일대 신무천황의
모친인 다마요리히메노미코도이다. 하여간 그 신사에 오르는 돌계단이 끝나는 경내 입구의 양쪽에 같은 모양의 아주 오래 된 몇기의 석등롱(석등)이
있다.
그 등롱의 간석 4명에 각각 수수께끼의 문자가 빙 둘러가며 조각해
놓은 것이 3기나 있다.문자가 있다는 점에서는 석비로보기도 한다.
이것들은 에도시대(1600년~1867)에 건립된 축물로 알려져있다.마토노진쟈의
게시판에도 석비는 享保10년1725년 乙巳을사년의 조각인듯 싶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것은 새겨진 문자가 형태상 우리나라의 한글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다.각 비석마다 한면에는 [祠官內藤利映]이라고 새겨,신사의 관리자였던 나이토(사관)씨의 이름이 보이고 나머지 3면에 빙 둘러
각기
다른 내용을 새긴 듯한 수수께끼의 문자들이 보인다.
제 1면
:[머,ㅇㅜ,디,니,시,ㅇㅗ,이,디,너,ㅁㅜ]
제 2면:[시 uㅏ ^ㅜ 기 디 니 디]
제 3면:[다 더 마 cㅓ
>ㅜ]
형태론적 시각에서 보면 한글 구조와 특별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우선 받침글자가
전혀 없다는 점,초성자와 중성자의 2개 형태소만으로 이루어졌고,그것 또한 가로로 병렬시켜 기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글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이 글자들을 대충 읽을 수 는
있다. 가령. 제 일면을 현대 한글로 바꾸어 읽으면 [머 우 디니 시오이디너무]라는 10개의 글자임을 알 수 있다.
한글이라고 전제하더라도 끝내 읽을 수 없는 글자가 2개있으니
[uㅏ]와
[>ㅜ]라는 문자이다. 우선 영어 u자 비슷하게 생긴부호와 한글 자음의
[ㄷ]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자는 애초에 훈민정음의 창제시(1443)에도 없던 글자다.
현재 규슈 가고시마겐에 거주하면서 가고시마 신궁조사관이 정식 직함인 밋츠이시
도모사부로씨는 가고시마 현립 농업대학 외래교수로 출강하는 한편 [가고시마신궁]을 연구,[신궁사]를 출간한 학자이다.
그는 이 마토노신쟈의 석비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 오면서도
막상 수수께끼의 문자해독이 이루어지지않아 고심해왔다고 했다.
마토노진쟈의 야고로등 마쓰리는 철기사용집단과 수신과의
연관성,방생회,그리고 신사 경내 입구에 한글과 유사한 고문자를 새긴 석비등과 연관지어보면,아무래도 이것은 한국으로부터 도래유입된 문화가 이곳에서
스타일을 변화시킨 것 같다는 것이 밋츠이시 도모사부로 씨의 최종결론이이었다.
에도시대에는 이미 오늘날의 일본어가 통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나문자의 제정 연대도 대략 서기 900년~1000년에 해당하므로 이미 일본열도에서 가나의 사용이 보편화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구태여 가나 문자도 한문도 아닌,한글 비슷한
글자를 조각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해주는 것일까? 이것은 지극히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이 문자의 내용을
판독해내는 것이 급선무 였다.
u자처럼 생긴 글자는 한글 ㅂ 의 원형으로 파악, 그 음가는
[R]이나[L]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적용한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제 1면:
머(메)ㅇㅜ(우)디(찌)니(니)^ㅣ(시)0ㅗ(오)이(이)디(찌)너(네)ㅁㅜ(무)
1면: 해석(目內(메우찌)西追(니시오이),遲寢무(찌네무)
=눈 속 서쪽(서방정토)따라 느지막이 잠들어
누군가의 영면에 대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내용이란 점이다.
서방정토로 가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제2면의 경우 [시바스기치니치]로 읽혀진다. 이것은
[柴(시바)杉(스기)地(찌)]
잡목 삼나무 땅에 두다.라는 의미로서 망자의 넋을 기리는 기념물,예컨대
마토노진쟈 경내의 그 문자 석비를 잡목의 삼나무땅에 안치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제 3면:다더마두루(다데마쓰루(奉루:바치다,받들어모시다)의 의미로 발음된다.
분명히 일본어라고 단정할 수 있다.
하지만 소리글자형태는 한글모태인 가림토문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일본으로 흘러간
옛 선조들이 신의 문자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면면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대문자였다.
이상과 같이 각각 그 의미가 다른 3개의 석비 내용을
종합하면,누군가 [서방정토를 향해 이제 영면했으므로,감은 눈속에서 지향하던 그 극락 세계에 왕생하기를 축원하도다, 망자의 넋을 기리는 애도비를
잡목의 삼나무땅에 안치하노니,
그 분의 영혼도 이곳에 봉안하여 모시노라]와 같은
정도의 대의로 파악된다.-최초로 일본땅에 남아있던 비문을 해독한 기쁨이었다.1994년11월 글돋선생.(윗글 밋츠이시 교수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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