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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왜는 백제의 속국

monocrop 2007. 10. 2. 03:42

http://blog.naver.com/casahoo

 

왜는 백제의 속국이었습니다.

 

 일본 나라현을 중심으로 일본땅 대부분이 거의 백제에 의해 지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라백제.)

 신라가 당과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나,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당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한 것 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르지요.

 

 백제가 망했을 때에도 왜에서는 구원병을 보냅니다.

 천 여척의 배와 십만 대군을 보내지요.

 

 백제와 동맹을 해서 그리 많은 군대를 보냈을까요?

 왜의 그 당시 실정으로 볼 때 백제에 보낸 원병은 국력의 모두를 보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동맹국에 전 국력을 쏟아 붓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왜는 또 다른 백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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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백제에는 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사람도 있다]

 

<조선불교통사>

[백제의 중이 중인도로 들어가 불경을 얻어 귀국했다]

 

<일본서기>

[백제가 부남(扶南)의 재물과 노비 2구를 왜에 주었다]

*부남- 캄보디아지역

 

[백제 사인(使人)들이 백제를 거치지 않고 왜와 독자교섭을 시도한 곤륜(崑崙)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곤륜- 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미얀마의 동남아시아지역

 

위의 기록들은 백제가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구축한 교역의 범위를 시사하는 대목으로 554년 백제가 일본열도의 가야(왜)에 보낸 물품 가운데는 탑등이 있는데 이것은 양모가 재료로 페르시아직물인데 북인도에서 산출되는 물품이다.

 

또 일본열도의 나라시에 있는 백제계 후지노키고분의 부장품 가운데는 남방 동물인 코끼리가 부조된 마안구(馬鞍具)가 있는데 이 마안구는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및 동남아시아지역과 연결되는 6세기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압축해주는 물증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 백제의 선박은 국제적으로 이름나 있어서 650년에 일본열도의 가야(왜)가 제작한 선박 2척의 이름을 구다라선(百濟船)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백제선박을 가리키는 구다라선은 크고 튼튼한 선박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던 것으로 당시 백제의 광범위한 국제해상활동을 알려주는 기록입니다.

 

이렇게 4세기 백제의 대륙영토와 한반도지역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백제에는 두사람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둘째 아들인 온조가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다고 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제 시조는 온조의 형인 비류로 그는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인 구태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서>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사람이 있어 처음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 (중략) ... 해마다 4번 그 시조인 구태의 사당에 제사를 지낸다]

 

<수서>

[동명(東明)의 후손으로 구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질고 신망이 돈독했다]

 

<한원>

[구태의 제사를 받드는데 부여의 후예임을 계승하였다]

 

즉, 한(韓)민족의 사서는 백제 건국세력이 부여계 또는 고구려계라는 서로 다른 전승을 기록하고 있고 반면에 화하족의 사서들은 백제 건국자가 부여계 구태의 후손이라고 못박듯이 말한다.

 

그러므로 백제를 건국한 온조와 비류는 고구려와는 무관한 부여계라는 점이고 구태라는 인물도 부여계로 보아야 한다.

 

[백제 담로도/ 백제향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