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7일 (화) 03:15 조선일보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맞섰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 김부식(金富軾·1075~1151)도 중국의 고구려사 은폐·왜곡에 맞섰다.”
최근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직을 물러나고 논문 집필에 몰두해 온 김정배(金貞培·사진) 고려대 명예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곧 발간될 ‘한국사학보’(고려사학회 刊)에 기고한 논문 ‘삼국사기 보장왕기 사론(史論)에 보이는 유공권 소설 문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중국의 공식 사서들이 쓰지 않은 고구려·당(唐) 전쟁의 이면을, 김부식이 중국측 ‘비공식 기록’을 찾아내 기록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0여 년 전부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기의 한 대목에 의문을 가졌다. 보장왕 4년(645년)의 기록이었다. “아군(고구려군)은 말갈과 군대를 합쳐 진을 쳤는데 그 길이가 40리였다. 당 태종(唐太宗)이 이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빛이 있었다.” 고구려를 침략한 당 태종이 주필산(駐?山)에서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이기 직전의 묘사였다. 고구려군은 이 전투에서 일단 패하지만 곧이어 벌어지는 안시성(安市城)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당나라 군대를 퇴각시킬 수 있었다.
‘당 태종이 두려워했다’는 내용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같은 중국의 공식 역사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부식은 보장왕 8년의 사론(역사서 중 특정 사안에 대해 편찬자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에서 이 부분을 다시 기록하며 ‘유공권 소설’에서 인용했다고 밝히고 “고구려의 승리가 되어 황제의 육군(六軍)은 거의 떨치지 못했고, 염탐하는 자가 보고하기를 이세적(李世勣·당나라 장수)이 거느리는 부대가 포위됐다고 하자 태종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유공권 소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책이었다. 당나라의 서예가 유공권(柳公權)이 남긴 ‘소설구문기’라는 책으로 보이지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부분을 정밀하게 추적한 결과 ‘삼국사기’의 해당 내용은 당나라 현종(재위 712~756) 때의 역사학자 유속(劉 )이 쓴 ‘수당가화(隋唐嘉話)’에 수록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소설구문기’는 누군가 유공권의 이름을 빌어 쓴 위서지만 이 내용만큼은 ‘수당가화’에서 뽑아 썼다는 것이다. 이 당시의 ‘소설’은 지금의 개념처럼 허구를 다룬 문학 장르가 아니라, 정사(正史)의 기록을 보충해서 당대의 역사 사실을 기록한 책이었다. ‘수당가화’에는 이 밖에도 당 태종이 평양성을 기습하자고 한 강하왕 이도종(李道宗)의 건의를 거절했다가 후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역시 ‘구당서’ ‘신당서’엔 없지만 ‘삼국사기’에 있는 내용들이다.
김 교수는 “김부식은 중국 정사들이 자기 나라에 흠이 될까봐 은폐한 내용을 찾아내 보완했던 것”이라며 “이것 말고도 고구려·당 전쟁에서 숨겨진 사실들을 앞으로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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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측의 대규모(?) 왜곡에 맞서는 준비로는 .... ??!!.............mim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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