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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임금 일행이 서천(西遷), 즉 서쪽으로 이동한 까닭은?

monocrop 2007. 2. 2. 19:35
우리는 임진왜란사에서 지나쳐버리는 가장 중요한 낱말의 하나는 일본군이 한성을 점령하기 직전에 선조일행이 한성을 빠져 나가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는 서천(西遷) 문제다.
한반도가 조선이라면 선조일행이 무엇때문에 서족으로 이동해갔을까? 그 서쪽에는 무엇이 있길래? 아무리 눈을 딲고 보아도 서쪽에는 강화도와 황해바다뿐이다.
고려때처럼 강화도로 갔다는 섬을 말하는가?
뒷날의 일이지만 병자호란때에 강화도로 갔다는 말인가?
이 둘도 모두 한반도 강화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섬서성 장안 동남쪽 십언시(十堰市) 지역이다.
그렇다면 1592년 선조 일행이 서쪽으로 갔다는 말은 강화도로 가지 않았다. 서쪽으로 가서 평양으로 갔다. 그 평양이 어디이겠는가?
나는 단연코 섬서성 장안 서쪽의 호경(鎬京)이라고 말한다. 왜?
선조 일행의 첫 출발 위치가 어디라고 언급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지봉류설>에도, <증보문헌비고>에도 나와 있다.
우선 <증보문헌비고>(권11, p.15)의 동요(童謠)에 보면, "壬辰倭亂 聞賊勢甚急 以四月三十日 去彬大雨" 원문엔 "彬"과 같은 소리, 같은 뜻의 "分+邑"이다.
즉 "빈현(彬縣)"을 떠났다는 말이다. 그 빈현은 섬서성 장안 북쪽에 있다. 주나라 문왕(文王)의 할아버지 태왕(太王)이 오랑캐에 쫓겨서 빈현을 버리고 기산(岐山)으로 피난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전엔 그런 식으로 풀었다.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빈현을 떠났다는 고사는 있었을지라도, 그 고사가 선조에게 직접 행해진 지명이다. 설사 태왕의 기산이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592년의 한반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인연도 없다. 또 그렇게 대비할 필요가 없다.
선조 일행이 그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조선의 수도 한성이 섬서성 장안이 아니라면 정말로 이런 비유도 필요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
<조선왕조실록>(권27), <난중잡록>(권1)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아마 많이들 들어본듯한 글일 것이다.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國事蒼黃日)
리광필.곽자의같은 충성할 이 그 누구인가.(誰能李郭忠)
서울 빈현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 있음이요,(去彬存大計)
회복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달려있노라.(恢復仗諸公)
국경이라 달아래 슬프게 울고,(慟哭關山月)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傷心鴨水風)
신하들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朝臣今日後)
그래도 동인.서인 싸우려느냐!(尙可更西東)

이처럼 선조는 분명 그 땅에서 충신이 나설 것을 말했다. 그러니 섬서성 한성에서 빈현을 비우고 그곳을 지나갔던 것이다. 바로 그 중국대륙 섬서성 장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 빈현을 지나 서쪽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전에는 좀처럼 몰랐던 해석의 문제다. 해설가로서 역사를 풀지 말고, 과학으로 풀어야 하는 이유가 실증론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법으로 실증주의자들의 계략과 왜곡의 진실을 진정한 과학의 방법으로 거짓을 낱낱이 밝힐 수 있다.
 
글쓴이 : 최두환 / 2004.04.30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