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력사 속에 우리는 조선의 태조 리성계(李成]桂)의 활동에 대하여 많은 의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풀 못하는 것이 그의 출신(出身) 문제이다.
그의 조상이 전주(全州) 사람이라고도 하고,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난 함흥(咸興)이라고도 하며, 영흥(永興)이라고도 하며, 녀진(女眞)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리성계는 수수께끼의 사람인가?
(1) 1383년 8월에 우리 태조(리성계)가 변방을 안정시킬 계책을 올렸는데, "북계는 녀진·달단·료양·심양의 지경과 서로 붙어있으며, 실로 우리나라의 요충지가 되지, 비록 사건이 없는 때에도 반드시 식량을 저축하고, 군사를 양성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 했다.[『동국통감』권52 고려기 신우3]
[癸亥(辛禑九年 大明洪武十六年) 八月…我太祖獻安邊之策曰 北界與女直達達遼瀋之境相接 實爲我國要害之地 雖於無事之時 必當儲粮養兵 以備不虞.][『東國通鑑』卷52 高麗紀 辛禑三]
이 사료는 조선의 태조는 건국하기 9년 전인 1383년에 고려의 변방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그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고려의 북쪽 지역[北界]에 녀진(女眞)·달단( : 達達)·료양(遼陽)·심양(瀋陽)의 땅과 붙어있다고 하였다. 바로 그곳이 또한 고려의 요충지라고 했다.
녀진은 달단의 동쪽에 있으니, 달단만 알게 되면 아마도 줄줄이 다 풀어질 것 같은 조선의 지리 문제인 것 같다.
그러면 달단과 고려는 어떤 관계를 가졌겠는가?
(2) 1370년 3월에 달단왕 합라팔독과 야선불화가 사신을 보내어 와서 빙문하였다.[위의 책, 권49 고려기 공민왕4]
[庚戌(恭愍王十九年 大明洪武三年)… 三月 王哈剌八禿及也先不花遣使來聘.][위의 책, 卷49 高麗紀 恭愍王4]
달단( )이란 나라에서 사신을 고려에 보내는 것으로 보아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 임금은 여럿이 있었는지, 합라팔독(哈剌八禿)과 야선불화(也先不花)가 사신을 보냈다고 했다. 어쨌든 서로 왕래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달단은 통상 타타르(Tatar)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 타타르는 대개 세렝가(Serenga: 色楞格) 강의 상류 무륜(木倫)이 있는 북위 50도-동경 100도를 중심으로 ±10도의 범위이다. 이 타타르는 시대에 따라 그 지역이 약간씩 차이가 있고, 학자들마다 약간씩 달리하는데, 심하게는 동경 125도까지 동쪽으로 당겨놓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다음의 글로써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야선불화(也先不花)로써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함길도 감사(咸吉道監司)와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온 관압관(管押官) 당몽현(唐夢賢)의 사목(事目)에 황제(皇帝)가 요동(遼東)에 내린 칙서(勅書)에 이르기를, '선부 참장(宣府參將) 양준(楊俊)이 본년(本年: 1450) 2월 15일에 관군(官軍)을 거느리고 순행하여 야호령(野狐嶺) 관문(關門) 밖에 이르러, 적신(賊臣) 희령(喜寧)이 거느린 야선(也先)의 초마(哨馬) 2000여 명이 앞으로 와서 침구(侵寇)함을 만나서 희령(喜寧)과 적당(賊黨)까지 사로잡아 호송(護送)하여 북경(北京)에 도착하였다. 또 오랑캐 중에서 따라 돌아온 총기(摠旗) 고빈전(高斌全)이 상세히 말하기를,「지금 와라(瓦剌)의 인마(人馬)가 네 길[四路]로 나누어져 야선(也先)은 자신이 와서 대동(大同)과 선부(宣府)를 공격하고, 아라지원(阿剌知院)은 영평(永平) 등지를 공격하고, 달달( )의 불화왕(不花王)은 요동(遼東)을 와서 공격하며, 또 한 지대(支隊)의 인마(人馬)는 감숙성(甘肅省)을 와서 공격하기로 기한을 정하여 약속을 정했다.」고 하는데, 더구나 지금 선부(宣府: 선부 參將)가 또 희령(喜寧)을 사로잡아 북경(北京)에 호송(護送)하였으므로, 이 적(賊: Oirat)이 반드시 분노(奮怒)하여 그들의 오는 것이 필시 빠를 것이니,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대들은 마땅히 방비와 방어에 근신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으니, 경(卿) 등은 상세히 알아서 한결같이 방어(防禦)하는 여러 가지의 일에 날로 더욱 계엄(戒嚴)하고, 혹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하지 말아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對備)하여야 한다. 또 본도(本道: 함경도)는 지경이 저들의 땅에 연해 있고, 또 친신(親信)한 야인(野人)이 있어서 위의 달달적( 賊)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죽 잇달아 오니, 비밀히 듣고 보아서 만약 확실한 정보를 얻는다면 한편으로 빨리 평안도(平安道)에 보고하고, 한편으론 빨리 나에게 아뢰어 올리게 하라."[『문종실록』권1 즉위년 3월 정사]
[諭咸吉道監司都節制使曰: “今來管押官唐夢賢事目, 皇帝勅遼東云: ‘宣府參將楊俊, 於本年二月十五日, 率領官軍, 巡至野狐嶺關外, 遇見賊臣喜寧率領也先哨馬二千餘人, 前來爲寇, 生擒喜寧幷賊黨, 解送到京。 又虜中隨回摠旗高斌全備說, 卽今瓦剌人馬, 分爲四路, 也先自來攻大同與宣府, 阿剌知院攻永平等處, 達達不花王來攻遼東, 又有一支人馬, 來攻甘肅, 刻期約定。 況今宣府, 又行禽獲喜寧解京, 此賊必奮怒, 其來必速, 不可不慮。 爾等當謹愼備禦。’ 卿等知悉, 一應防禦諸事, 日加戒嚴, 毋或少弛, 以備不虞。 且本道, 境連彼土, 且有親信野人, 右達賊聲息連續, 秘密聞見, 如得的實, 一則飛報平安道, 一則疾速啓達。][『文宗實錄』卷1 卽位年 3月13日(丁巳)]
이 사료는 조선이 건국되고 5대째가 되는 문종 즉위년(1450)이며, 이 때에 달단군이 쳐들어왔는데, 이 적들이 와라(瓦剌), 즉 오이라트(Oirat)라고 했으며, 야선(也先)이란 이름이 나온다.
야선(也先)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몽고 와라부(瓦剌部: Oilat)의 추장(酋長) 야선불화(也先不花: Esenbuka)이며, 원(元)이 멸망한 뒤 와라부(瓦剌部)와 달달부( 部:Tartar)의 세력을 규합하여 명(明)의 서북변(西北邊)을 자주 침범하였다.
이 오이라트는 비시발리크(Bishbalik)가 있는 북위 54도-동경 80도를 중심으로 ±8도 정도의 범위가 되는 지역이며, 오브강(Ob R.: 鄂畢河) 상류의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에 대하여 리성계와는 력사적으로 또 어떤 관련이 있는가?
(4) 1362년 7월에 나하추가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탁도경·조소생 등과 함께 홍원의 달단동에 둔전을 치고는 합라 만호 나연티무르, 동첨 백안보하를 보내어 지휘케 하여, 군사 1000여 명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는데, 태조(리성계)가 덕산동 원평에서 만나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함관령·차유령 두 고개를 넘어 거의 섬멸시켰다.[『동국병감』권47 고려기 공민왕2]
[壬寅(恭愍王十一年至正二十二年) 秋七月 納哈出領兵數萬與卓度卿趙小生等屯丁洪原之 洞 遣哈剌萬戶那延帖木兒 同僉伯顔甫下 指揮率一千兵爲先鋒 太祖遇於德山洞院平擊走之踰咸關車踰二嶺 幾殲][『東國兵鑑』卷47 高麗紀 恭愍王二]
여기에 홍원(洪原)·달단동( 洞)·함관령(咸關嶺)·차유령(車踰嶺)이란 지명이 나온다. 리성계와 직접 관련이 있는 달단동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먼저 함관령·차유령을 보자. 아무래도『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야 하겠다.
위의 책, 권47 홍원현(洪原縣)에 보면, "차유령은 본현(홍원현) 서쪽 50리 함흥부와의 경계에 있다. 함관령은 본현 서쪽 함흥부와의 경계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위의 책, 권40 함흥부(咸興府)에는 "함관령은 본부(함흥부) 동W고 70리 지점에 있다. 차유령은 본부 동북쪽 73리에 있는데, 그 고개의 남쪽의 것은 함간령이라 하고, 북쪽의 것은 차유령이라 하니, 이 두 고개의 거리는 20여 리이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함관령과 차유령은 가까이 있으며, 아예 하나의 산맥으로 이루어진 큰 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함흥부에는 "본디 고구려 옛땅이며, 오랫동안 동녀진(東女眞)에게 점거된 바가 있으며, 덕산동은 본부(함흥부) 동쪽 40리 지점인 함관령·차유령 두 고개의 남쪽에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한꺼번에 지명들을 다 풀어내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지도에서 이들을 찾아보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함관령의 위치는 북위 40도 05분, 동경 127도 40분[함흥시와 홍원군의 경계]
차유령의 위치는 두 개가 있는데, 그 하나는 북위 39도32분 동경 126도 38분[함경남도 맹산군과 신양군과 요덕군의 어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북위 42도 10분 동경 129도 30분[함경북도 무산군과 부녕군 경계]에 있다. 이것은 그 거리 100km, 240km가 된다.
그러니 이 정도의 거리를 둔 함관령·차유령은『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말하자면 북한에는 함관령·차유령이 없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함관령·차유령은 어디이겠는가? 이들은 분명 오이라트가 있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 이 력사에서 말해주고 있다.
자! 함관령은 함주(咸州)니, 함산(咸山)에서 비롯된다. 咸山은 그 발음이 [함산/감산]으로도 된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汗山: 一名不兒罕山 又或 山"[한산은 불아한산이라고 하며 또 감산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이 한산(汗山)은 북위 51도 동경 85도에 있으며, 오브강(Ob R.: 鄂畢河) 상류요, 알타이산(阿爾泰山) 북쪽에 있다. 즉 발음으로 보면 [咸]=[ ]=[罕]=[汗]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그 별명이 "不兒罕山", 즉 [불함산]이라는 것인데, 이것은『산해경』에 나오는 조선의 명산 [不咸山]이며, 그것은 곧 조선의 령산이라는 "백두산(白頭山)"인 것이다.
차유령도 바로 이 지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름이다. 달단동도 바로 이곳에서 찾아야 될 문제다. 그 까닭은 홍원현(洪原縣)에 "豆無山"(두무산)이 본현(홍원현) 북쪽 85리에 있다고 했는데, 그 거리와 방향이야 어찌 되었건, 그 산의 이름이 발음으로 보면 "두무산(豆無山)"이라는 것인데, "알타이산(阿爾泰山=阿勒坦山)"이 곧 투구와 닮은 산이라는 "兜 山"[두무산]이라고 했던 데서 그 발음이 같다는 말이다. 하필이면 이 오이라트 지역에, 알타이산이 있고, 그것이 산 이름의 소리가 "두무산"이라고 했는데,『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조선의 함경도 땅 홍원현에 "두무산(豆無山)"이 있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같다.
그렇다면 바로 이곳 동경 75도 선상의 중앙아시아의 북쪽 지방이 곧 오이라트(瓦剌)지역이며, 바로 이곳의 동쪽이 녀진족 부락이며, 리성계가 활약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정말로 한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런 사실로 보면,『신증 동국여지승람』도 본디 중국대륙의 조선을 한반도에 끼워 맞춘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살펴서 글을 읽어야 된다는 말이 된다.
이런 글이 또 나에게 편리한 생각대로 유리하게만 이용되었을까 반성하면서 글을 쓴다. 어쨌거나 '자거기화(自居奇貨)'하는 존재가 아니 되고자 하는 마음만을 갖고 싶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최두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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