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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다라[百濟]의 어원

monocrop 2006. 12. 16. 00:15
● 구다라는 대국

구다라와 오다라

열도어로 백제를 '구다라[百濟]'라고 한다. '구'라는 말은 '큰'으로 해석한다. 서기에 구다라에 상대되는 '오다라[意多郞]'라는 말도 나온다. 구다라는 반도의 백제를 가리키고 오다라는 열도의 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오다라의 '오[意]'는 한자 소(小)>오[小]에 해당하는 말이다. 열도 또는 열도의 후왕을 가리키는 말로 의다랑(意多郞)이라 쓰고 '오다라'라고 읽은 것이다.
서기 무열기 3년(서기 501년)조에 오다라[意多郞]가 죽었다고 나온다. 이것은 굉장한 은유인데 그 이전의 백제·왜 분립상태에서 열도출신 동성대왕이 서기 479년에 영토통합을 이룩했고 동성대왕이 서기 501년에 암살되고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오다라'가 죽었다고 했다. 동성대왕이 즉위한 이후로 대왕의 아들들을 열도에 차례로 후왕으로 파견한 기록이 서기에 나온다. 동성대왕을 등재한 흠명기 4년 12월조에 동성도천(東城道天)이란 인물이 나오고 8년 4월조에 동성자언(東城子言)이 나오며 15년 2월조에 동성자언과 교대되는 동성자막고(東城子莫古)가 등장한다. 동성대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식이칭을 통해서 바로 알려주고 있다. 東城은 동성대왕 집안인물이란 뜻이고 東城子가 '동성대왕 아들'인 것이다.
또 동성대왕을 등재한 무열기 7년 2월조에 무령왕의 아들 사아(斯我)가 파견되는 것이 분명히 나온다. 무령왕의 휘인 斯摩를 이용하여 '사(마의) 아(들)'>斯我로 만든 이칭이다. 법사군(法師君)이란 아들을 두었는데 왜군(倭君)의 조가 되었다고 한다. 성씨록에
和朝臣; 出自百濟國都慕王十八世孫 武寧王也(左京諸蕃)로 나온다. 야마또[倭]를 야마또[和]로 한자를 바꾸어 알아보기 어렵게 실었지만 같은 성씨다. 고대에 君은 王이므로 곧 열도의 왜왕을 말하는 것이다.
서기 무열기 3년조(서기 501년) 기록은 동성대왕의 아들이 후왕으로 열도에 있다가 무령왕의 아들로 교체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동성대왕의 아들도 부왕처럼 암살됐을 가능성도 있다.
'다라'는 나라[國], 땅[土]의 이두표기로 본다. '다라'는 일어에서 토지, 들, 평야를 뜻한다. 사국시대에 제주를 탐미다례(耽彌多禮) 또는 침미다례( 彌多禮)라고 했고 또 다라(多羅)라는 소국이름이 나온다. 국명 또는 땅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말하자면 땅을 뜻하는 말들 달(達), 벌(伐), 원(原), 시(市), 발(火+本), 국(國), 라(羅), 본(本), 양(壤), 홀(忽), 나(那), 성(城), 주(州) 등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다라'는 달(達)에서 나온 듯하다. 달은 우리말 땅[地/土]의 이두표기로 보는데 달에 명사형어미를 붙여 받침 없이 흘려서 발음하면 '다라', '다루', '다리' 등으로 소리나는데 이 중의 하나인 것이다. 즉 땅의 이두표기 달에서 2차적으로 파생된 단어로 본다. 다례(多禮)는 다라(多羅)의 다른 발음이라고 해야겠다. 다례(多禮)의 '례'는 경상도사투리에서 '어', '여', '에', '예'를 '이'로 발음하는 경향을 적용하면 '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즉 '다례'는 지금과는 달리 '다리'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사기에 신라 유리왕을 유례왕이라고도 표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다. 또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를 붙일 때 열도어 모음 중에서 '에'를 붙인 것이라고 봐도 된다. '나루(터) 진(津)'을 '나라', '나리'로도 표기하는데 이것은 열도어 모음 중에서 각각 '아', '이'를 붙인 것이다. 예를 들면 다다라[盾津/韜津]의 경우는 다다[盾]+나라[津]=다다라[盾津]가 된 것이다. '나'는 복합어가 되면서 탈락한 것이다.
구다라[百濟]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일백 百'은 그 자체로 완성된 수로서 '크다[百]' 또는 '많다[百]'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고 '건널 濟'는 열도어로 '와다루[濟]'이다. 여기서 '크다'의 어간 '크[百]'는 열도어에 '크/그'가 없으므로 원순모음화현상이 작용하여 '쿠/구[百]'가 되고 '와다루[濟]'는 복합어가 되면서 '와'가 탈락하여 '다루[濟]'가 될 수 있는데 '나루 津'이 열도어 구마나리[熊津]에서 보다시피 '나리[津]'로 읽히기도 하고 다다라[盾津]처럼 '나라'로도 읽히고, 내/나이[川]가 열도어 구마나레[熊川]에서 보다시피 '나레[川]'로 읽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다라[濟]'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크[百]다+와다[濟]루>구[百]+다라[濟]=구다라[百濟]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백(百)이 많다[多], 크다[大]는 뜻을 가지는 용례가 다름 아닌 칠지도 명문 속에도 들어있다. 백련철(百練鐵)의 백은 다회(多回)라는 뜻이고 백병(百兵)의 백은 수많은 군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통상 규모가 크다는 의미에서 대병(大兵), 대군(大軍)이라 할 수 있으므로 크다[大]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각도를 달리하여 백제는 대왕(大王)이 다스리는 대국(大國)이고 열도는 대왕이 임명한 후왕(侯王)이 다스리는 소국(小國)이므로 백제=대국으로 놓고 크/그[大]>구[大]가 되고 국(國)은 한편으로 땅의 이두 달[達]>다라(多羅)와 같으므로 구[大]+다라[國]=구다라[大國]=구다라[百濟]로 된 것이기도 하다.
구다라나이
일어에 '구다라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전에 보면 시시하다, 하찮다, 가치 없다 등으로 나오는데 원래는 의미없다, 소용없다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가치없다는 말이 가장 가까운 의미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은 백제가 망했을 때 당시 열도는 백제의 후국이었고 백제를 상국이자 본국으로 섬겼고 항상 크게 기대는 언덕 같은 존재였지만 망한 후에는 "이미 망한 본국을 생각하고 아무리 애통하게 울부짖고 몸부림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그 때 당시 열도인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생겨난 말이다.
'구다라나이'란 말은 이런 상황이 지난 후에 다시는 반도로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는 마음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게 된 말인 것이다. 지금은 뜻이 와전되어있다. 원래의 뜻은 "백제는 이제 없다"라는 뜻인데 의미없다, 가치없다로 바뀐 것이다. 한자도 구다[下]루로 바뀌었다.
일본서기의 오국도 '구다라'
일본서기에는 구다라라는 뜻으로 오국(吳國)을 쓰기도 했다. 이 '오'의 발음은 역시 우리말 이두표기이고 일어발음 '구루'에서 어간 '구'와 등치시켜 쓴 것이다. 백제를 오국으로 표기한 것은 백제라는 국명을 가리기 위해서였고 [반도어 (오)다 > 반도어이두 (吳)다 = 열도어 (구)루] > [(오)다=(吳)다=(구)루]에서 (吳=구)로 놓고 구다라[百濟]>구다라[吳國]로 바꾸어 쓴 것이다.
일본에 이 이두표기 지명이 지금도 살아 있다. 히로시마 근방의 구레[吳]가 그곳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오국을 중국의 오나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연대도 틀리고 말도 안 된다. '구다라[百濟]' 대신에 쓰인 말로서 백제를 뜻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는 4세기 중반 이후의 백제와 가야의 실사를 바탕으로 개작한 사서이기 때문이다.


출처 : 韓民族! 옛 제국을 찾아서...
글쓴이 : 진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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