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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라8대왕 아달라(전기신라의 마지막 박씨왕)

monocrop 2006. 12. 15. 22:51

나의 견해

4대왕인 탈해를 제외하고는 신라의 1대부터 8대왕까지 모두 박씨였다. 후세사람들이 탈해를 박씨왕조에 끼어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달라 집단(이들 스스로 신라라고 부른적은 없다)은 석씨 집단에게 정복당한것 같다. 아달라 집단의 유민들이 일본에 이주해서 도시국가를 세운것 같다. 그래서 중국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왜"에 관한 기사인 (현대 일본사가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왜국여왕 비미호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달라 왕때의 삼국사기 기록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특히 아달라의 마지막 10년은 전혀 기록이 없다.

 

삼국유사에 아달라 때의 이야기인 연오랑과 세오녀(왜에서 왕과 왕비가 된다)의 이야기가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삼국유사는 기본적으로 전문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기록들은 아주 짧게 나오는 반면, 대부분의 내용은 불교에 관한 것이다. 특히 초기 신라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기록은 아주 특이하다. 그리고 바위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위는 왜인들이 신성시하는 사물이다.

 

삼국사기의 기록

제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 尼師今 154~184  재위기간 30년)

아달라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일성의 맏아들이다. 그는 키가 일곱 자였으며 풍채가 훌륭하고 얼굴 모양이 기이하였다. 어머니는 박씨인데 그녀는 지소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이다. 그녀는 지마왕의 딸이다. 

원년 3월, 계원을 이찬으로 임명하여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2년 봄 정월, 왕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흥선을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3년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에 길이 개통되었다.

4년 봄 2월, 감물현과 마산현 두 현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3월, 왕이 장령진에 행차하여 주둔하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각각의 군사들에게 군복을 하사하였다.

5년 봄 3월, 죽령이 개통되었다. 왜인이 예방해왔다.

7년 여름 4월, 폭우로 알천이 넘쳐서 집이 떠내려 가고, 금성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8년 가을 7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치고, 바다 고기가 육지로 올라와 죽었다.

9년, 왕이 사도성에 행차하여 주둔하는 병사를 위로하였다.

11년 봄 2월, 서울에 용이 나타났다.

12년 겨울 10월,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자 처형을 두려워하여 백제로 도망갔다. 왕이 글을 보내 그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으나 백제가 응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는 성을 닫고 수비하며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는 식량이 떨어져 돌아왔다.

13년 봄 정월 초하루 신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14년 가을 7월, 백제가 서쪽의 두 성을 격파하고, 주민 1천 명을 잡아 갔다.
8월, 일길찬 흥선으로 하여금 군사 2만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게 하고, 또한 왕은 기병 8천을 거느리고 한수로부터 그 곳에 도착하였다. 백제는 크게 두려워 하여 잡아갔던 남녀를 돌려주고 화친을 요구하였다.

15년 여름 4월, 이찬 계원이 사망하자 흥선을 이찬에 임명하였다.

17년 봄 2월, 시조묘를 중수하였다.
가을 7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고,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 백제가 변경을 약탈하였다.

18년 봄,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19년 봄 정월, 구도를 파진찬에 임명하고 구수혜를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2월,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0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

21년 봄 정월, 흙비가 내렸다.
2월, 가뭄이 들어 우물과 샘물이 말랐다.

31년 봄 3월, 왕이 붕어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즉위한 4년 정유(丁酉; 157)에 동해(東海) 바닷가에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해조(海藻)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물고기 한 마리라고도 한다)가 나타나더니 연오랑을 등에 업고 일본(日本)으로 가 버렸다.  이것을 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하고 세워서 왕을 삼았다(<일본제기日本帝紀>를 상고해 보면 전후前後에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는 변읍邊邑의 조그만 왕王이고 참말 王은 아닐 것이다). 세오녀(細烏女)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바닷가에 나가서 찾아 보니 남편이 벗어 놓은 신이 있었다.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그 바위는 또한 세오녀를 업고 마치 연오랑 때와 같이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이리하여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로 귀비(貴妃)를 삼았다.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에 광채(光彩)가 없었다. 일자(日者)가 왕께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 나라에 내려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기는 것입니다"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서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말한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비단을 주니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을 보고하고 그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그런 뒤에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았다. 이에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國寶)로 삼으니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한다. 또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한다.

출처 : 한국고대사의 비밀을 밝혀라
글쓴이 :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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