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 다듬음 -
20~30%는 남방계, 그리고 일부 유럽인 그룹으로 구성된 한국인 유전자 풀
고백하자면 필자는 당뇨병 연구를 하다가 우리 민족의 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문 1형 당뇨병에 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그 상관 관계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의학자들의 발표 자료를 보니 지역별로 유전자들의 빈도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또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들은 아주 비슷하며, 중국 북부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야 어떤 유전자가 병을 일으키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국제회의에서도 건강인들의 자료를 따로 모아서 지역별로 그 분포를 분석하는 논문, 즉 인류학 연구 부분의 보고가 특별히 마련돼 있었다.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붙인 셈이었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써서 '한민족 학회지'에 발표하는 ‘외도’를 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결국 당뇨병의사로서 한민족의 뿌리를 밝히는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중 어느 것이 인간과 가장 가까울까. 지금 우리는 분자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은 침팬지와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후 지금은 멸종된 많은 중간 단계의 유인원들과도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리키 등의 연구로 알게 되었다.
학자들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바원인, 북경원인, 아슐리안토기를 만든 프랑스원인 등 호모 에렉투스가 세계 각 지역에서 살았으며, 이른바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을 거쳐 현대 인류가 각 지역에서 진화하였을 것이라는 ‘샹델리아 모델’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령 우리 한반도의 선조는 수십만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고, 유럽에 살던 사람들과는 조상이 아주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윌슨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얻은 결과와 부합된다.
1995년 독일의 느봔테 파아보가 1856년부터 보존되어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뼈를 조금 떼내 유전자를 분석해본 이후 여러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연구를 한 바 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들 사이에는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네안데르탈인과 현 인류와는 그 차이가 상당히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염기서열에 어떤 생명체의 청사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평균 1300염기서열에 하나의 비율로 차이가 난다. 생명체 사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염기서열의 차이도 크다.
즉 ‘염기서열이 다른 정도’가 크면 클수록 생물간의 차이도 커진다는 것이다. 생명체들이 원시적인 것에서 점차 진화해왔기 때문인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화하려면 유전자들의 복잡성도 커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인류 사이에는 염기서열에서 차이가 크므로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1963년 주커칸들과 폴링에 의해 처음 제시된 분자시계 개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뒤집어보면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체가 많을수록, 즉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그러한 진화가 진행된 시간이 길고 아마도 환경의 변화도 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돌연변이에 의하여 나타나는 단백질의 변이(나아가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령하는 DNA의 변이)를 조사하여 진화가 일어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분자시계’의 개념은 이후 직접 DNA 분석자료와 지질학적으로 얻어진 자료들을 대비함으로써 확립되었다.
이러한 분자생물학적 방법들은 지금은 모든 생물학 연구의 핵심 기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수억년 전에 외부에 존재하던 어떤 미생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와 공생을 하게 되면서 생긴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이유는 미토콘드리아에는 자체적으로 유전정보를 가진 DNA가 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세포질에만 있어서, 세포의 핵 DNA와 달리 어머니의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된다(정자에 있는 mt DNA는 수정될 때 들어가지 않는다).
더구나 mtDNA는 잘 보호되고 있지 않아서 나이가 들면서 돌연변이가 축적되고, 결국 이것이 산소호흡을 하는 생명체가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을 하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활발해져 산화 스트레스를 같이 막아줄 경우 장수하는 것이다.
이 결과는 약 20만년 전 인류는 한 어머니에서 모두 갈라져 나온 것으로 해석될 밖에 없어서, 모든 인류는 한 어머니를 가졌다(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설명이 뒤따랐던 것이다.
가령 일본 오사카에 이주하여 사는 우리 동포나 연변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의 유전적 변이는 그 중심지인 서울의 유전적 다양성에 훨씬 못미칠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한민족의 특성’을 기준으로 한 비유적인 의미에서다.
지금 각 지역 사람들의 특성을 ‘하플로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자세한 것은 미국 에모리대의 더글러스 월레스가 운영하는 Mitomap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른바 Y염색체가 있으면 (XY) 남자가 되고, 그것이 없으면(XX) 여자가 된다. Y염색체에 있는 어떤 특성, 즉 어떤 유전 요소는 민족에 따라 크게 다르게 존재한다. 어떤 형질을 나타내는 것, 즉 표현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토씨처럼 그냥 따라다니는 DNA 염기서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실제 인체 게놈에는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유전자에 기생하는 이기적 유전자(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mtDNA 분석 결과와 시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으나, 분자시계법으로 얻은 수치의 오차는 상당히 커서 수만년의 차이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단국대 김욱 교수의 업적을 위시하여 일본 학자들에 의해 많이 이루어졌다. 단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화살 그림은 필자의 이론에 근거해 수정한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유전학적으로 너무나 비슷해 ‘문화적인 차이’는 인정되지만, 유전학적 차이로는 사람들을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인과 동양인의 Y염색체의 기본은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민족을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해석한다면, 한민족은 우리말과 글을 공통의 문화요소로 사용하며 한반도에 집중되어 사는 사람들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의학적으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악성빈혈이나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골수이식을 할 때 이 정보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 인류학에서 ‘버마 경로’라고 부르던 것으로 인도양과 아시아의 해안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현 인류와 같이 두뇌가 발달한 집단이라면 쉽게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으로 이동해 정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 즉 칠레의 팔리아이케 동굴에 도달하기까지 약 1000년이 걸렸으니까 비슷한 정도로 팽창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예를 보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보면 또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 부근이 당시에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과 한반도를 분리할 이유가 없고, 사람 살 만한 곳에 사람이 없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그룹이 빙하기에 얼음으로 연결된 베링해를 지나 아메리카로 건너갔을 것이다.
지금 사람이 다니는 길을 6만∼7만년 전이라고 못 다녔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필자는 당시에는 못 다녔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빙하기가 끝난 1만3000여 년 전부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유전자 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혈액형(A, B, AB, O)에 따른 사람들의 분포는 각각 A형이란 유전자와 B형이란 유전자가 얼마나 그 집단에 있냐에 따라, 즉 A와 B 혈액형 유전자 풀에 의하여 결정된다.
실제로는 혈액형을 따지는 것이나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 즉 DNA의 변이를 따지는 것이 훨씬 자세하게 그 실상을 알게 해준다.
서론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중국 북부인과 남부인 사이에는 이러한 혈액형의 차이가 크다. 그는 각 지역의 농경문화가 이동하는 것과 유전자 풀의 변화를 연계시켜 사람들의 이동이 농사기법의 전파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1988년에는 미국 과학원회보에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차이가 유전자 풀의 차이와 가까움을 통합해 전세계인을 분류하였다.
또 중국 남부인들은 캄보디아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들과 함께 묶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남부 중국인과 북부 중국인·한국인은 다른 갈래에서 왔다는 것이다.
1986년 호라이와 마쓰나가가 보고한 일본인의 mtDNA 유전형 분포 패턴을 보면 일본인 중에 두개의 커다란 mtDNA 클러스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약 20%와 80%를 차지하는 이 두 그룹은 분자시계로 보아 약 12만년 전에 분지(分枝)된 것으로 보고된다.
김욱 교수의 Y염색체를 이용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30%는 남부 아시아인의 유전형을 보인다고 하니까, 아마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인구집단 중 20∼30%는 남부 아시아인이 조상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류는 인구 숫자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 아시아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간 많은 고고학적 연구나 문화인류학적 연구 결과와 합치한다. 인디언들의 중심 그룹이 동북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한 때를 1만4000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현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조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이므로, 빙하가 녹으면서 동북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했다는 것도 상식처럼 되어 있다.
실제로 중국 북부에서 7000∼8000년 전으로 측정되는 최초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고, 일본 아이누인들의 정착도 8000∼1만년 전의 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략 빙하가 녹은 이후 인구의 이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사진들과 마지막 빙하기에 있었던 아시아 지역의 빙하 위치와 주요 산맥들, 그리고 빙하가 녹으면서 만든 퇴적층의 분포를 보면,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지질학적으로 상당히 최근의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인도네시아 아이크만연구소의 헤라위티수도요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인들 대부분은 7000년 전 대만에 도착한 후 남으로 내려가 정착한 신석기시대인들이며, 구석기시대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같은 그룹의 사람들은 거의 멸종했다고 한다. 즉 미얀마 통로가 아니라 지금의 실크로드를 따르는 경로라는 것이다.
현재의 바이칼호를 지금 흘러들어가고 있는 물로 가득 채우려면 약 400년이 걸린다니까 말이다.
그 둘레는 2200km이며, 최대심도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호수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곳이 마지막 빙하기에는 어떠했을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즉 이들 생물은 바이칼호에서 진화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이 작업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그런 복잡한 문화가 발달했는지는 수수께끼이며, 그 문화는 세계 어느 곳의 문화와도 다르다는 말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적응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낮은 코, 두꺼운 눈꺼풀, 가는 실눈 등이 그렇다.
왜냐하면 마지막 빙하기에 시베리아의 다른 지역이 모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는데 반해 이 부근에서는 북방 아시아인의 유전자 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또 이곳만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트인들과 에스키모를 유럽인과 대비하면 서로 비슷함과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차이가 5만∼7만년 전 사이에 생긴 것이다.
1990년 6월 미·소(러시아) 합동조사단은 초음파를 이용해 바이칼호를 광범위하게 탐사한 바 있는데, 그 결과는 꽤 흥미롭다.
가령 호저(湖底) 420m의 깊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했는데, 과거 이 부근이 마른땅이었다면 사람들이 극히 선호하는 지역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이곳의 저지대가 물에 잠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이러한 가설 아래 흑해에서는 미국과 불가리아의 합동 탐사팀이 흥미로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니까 빙하기 말에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바닷물이 넘치기 시작해 지중해의 엄청난 물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흘러들었고, 이로 인해 원래 담수호였던 흑해와 주변의 문명들이 바다가 된 흑해 속에 잠겼다는 것이다(2001년 9월8일자 소피아발 AP통신). 중국의 고대 신화를 보면 뽕밭(상전)이 바다(벽해)가 되었다든가, 하늘까지 차오르는 홍수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죽고 오누이 사이인 복희와 여와만 살아남아 중국인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오고 있다.
나는 북부아시아인의 선조들이 거대한 홍수를 만나 바이칼호를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빙하가 녹으면서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남쪽으로 생기는 새로운 통로들을 발견하고 먼저 이동했을 가능성도 크다.
한국인 중 70∼80%는 북방계이고 20∼30%는 남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타 일부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유전자 구도가 구한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의 유전적 근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아프리카에서 갈라져나온 인류가 중동을 경유해 인도 또는 동남아시아에 정착한 경우와,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경유한 집단이 동남아시아 또는 한반도·일본에 정착했을 경우 두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대의 리 교수 등은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약 6만년 전에 동남아시아에 먼저 정착한 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무렵 동북아시아 및 시베리아로 이주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 쿤밍(昆明)대의 야오 교수 또한 mtDNA 분석에서 이와 비슷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유전자 풀이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집단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일부의 경우 최근의 집단 팽창을 통해 중국 남부 또는 동남아시아의 유전자 풀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기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집단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 이상의 다양한 민족집단이 혼합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되었으며, 유전적으로 하나의 민족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유전적 뿌리를 미국 학자들이 밝히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NHK방송은 현재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르포를 시리즈로 방영, 일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일을 우리 손이 아닌 남의 손에 맡겨둔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를 파악해내는 작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이것이 한민족의 진화(Evolution)와 역학(Epidemiology)을 함께 조사하려는 이브계획(국립보건원 주관)의 기본 시각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중시하는 뜻도 있다.
필자와 몇몇 사람들은 2002년 7월 바이칼호변의 도시 이르쿠츠크의 아카뎀고로도크 과학도시에서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조그마한 학술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이 모임이 발전하여 제대로 된 해저고고학적 탐사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한국인의 유전적 뿌리를 찾는 일에 여러분들의 지원을 부탁드린다.
(이 글을 위한 자료 수집과 내용에 도움을 주신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 단국대 김욱 교수, 서울대 최몽룡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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