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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漢이 당시 최강국 扶餘에 최첨단 玉衣를 항상 조공하다.(Jade coffins were timely provided for Buyeo emperorial funeral by Han)

monocrop 2015. 3. 13. 00:09

아래 보고서는 김종서 박사의 저술내용과 우연히 일치하는것으로 그책이 발간되기 이전에 이미 운영자가 연구 공개 강의한 최강국 부여의 위상입니다. 

 

한나라는 오랫동안 고조선의 후에국이자 당시 최강국 부여의 침공방지와 신흥강국 고구려의 힘을 견제해달라는 의미로 부여왕이 붕어하기 이전에 옥갑을 준비하였다가 한 속국 현토군에서 진상하게 하였다.

 

*麻余死,其子依慮年六歲,立以為王。
漢時,夫余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菟郡,王死則迎取以葬 
公孫淵伏誅,玄菟庫猶有玉匣一具。
今夫余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傳世以為寶,
耆老言先代之所賜也.
其印文言濊王之印,國有故城名濊城,
蓋本水歲貊之地,而夫余王其中,自謂亡人,
抑有似也。
 
*마여가 죽었는데, 그 아들 의려가 여섯살로 왕위에 올랐다.
漢시기에 부여왕은 옥갑으로 장사를 지내는데, 항상 현토군에 놓아 두었다가, 부여왕이 죽으면 곧 가져다가 장사하였다.

 

魏가 燕의 공손연을 주살했을 때 현토의 창고에 옥갑 하나가 있었다.
이제 부여의 곳간에는 옥벽과 규와 제기들이 있으니, 세세토록 전하는 보물로, 집사가 말하길 선대에 하사 받은 것이라 한다.
<<魏略: 그 나라(부여)는 몹시 부유하니 선대부터 왔다. 아직 망하지 않았다.>>

 

그 도장의 글자에 <예왕의인> 이라하니 나라의 옛성에 예성이 있다.
대개 근본은 예맥의 땅이다.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 노릇을 하고, 스스로 망명인이라 하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위 내용은 지나사료 진수의 삼국지 <魏書> 동이전 및 당나라 두우의 <通典> 변방전에

정식적으로 기록된 내용입니다.

고구려가 한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한을 지원한 부여에게 패하는

희안한 일들이 자주 벌어집니다.    

한나라는 이족 고구려와 부여에게 조공을 받고 이간질을 시켜 싸움을 시켰다고

말하고 있으나 결과는 정반대.

 

당시 최고기술(이미 고조선에게서 기술을 습득한듯)인 옥갑을

최고실력자 부여왕의 붕어시 한이 준비하여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 

기존 관념을 깨야 바른 역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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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씀.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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