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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 왕릉 같은 독일의 고분...호흐도르프(Hochdorf)의 켈트족장 무덤(Keltengrab)

monocrop 2014. 1. 3. 17:03

 경주 왕릉 같은 독일의 고분...호흐도르프(Hochdorf)의 켈트족장 무덤(Keltengrab)

(한국 인터넷공간 최초의 상세 소개)

 

1997년 4월 독일 슈트트가르트 출장길에 오른 나는 추가로 해야할 일이 생겨서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토요일 오전 상대 회사의 임원들을 호텔에 불러놓고 ,

그리고 오후 3시 경까지 협의를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주말을 넘기고 화요일까지 출장을 연장하게 되었다.

원래 예정에 없었지만 토요일 오후4시 경 몇 년 동안 나의 상사로 같이 일했던 독일인 B씨를 만났다.

미안하게도 그는 원래 부인과 함께 갈 예정이었던 슈트트가르트 발레를

나와 같이 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고 그 덕분에 동양인 최초로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강수진의 발레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레 시간이 저녁 때라 그 사이의 시간에 그가 나에게 안내할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경주에도 여러 번 가본 그와  평소에 세계사, 한국역사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가 아주 좋아할 곳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슈트트가르트에서 북서쪽으로 30~40분 자동차로 간 곳이

호흐도르프(홐도르프, Hochdorf)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런데 '어, 저게 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조그만 동산이 보였다.

당시에 필카로 찍은 사진, 바로 켈트족의 족장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무덤의 외부 사진. 1997년 4월

 

그런데 그 순간 경주의 신라왕릉이 머리에 떠르는 것이었다.

그 날에 있었던 일은 2002년에 써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이 글의 제일 마지막에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무덤은 직경 60미터에 높이가 6미터이니

신라의 왕릉을 조금 눌러놓은 듯한 모양이지만 크기는 경주왕릉 비슷하다.

주위에 호석 비슷한 것들이 놓여 있는 것도 같다.

단지 꼭대기에 선돌(Menhir) 모양의 돌이 얹혀 있는 것이 다르다.

 

천마총은 실제의 왕릉 내부에 고분의 구조와 출토품을 전시해 놓았지만

이곳은 근처에 박물관(Keltenmuseum)을 하나 지어 놓고 무덤의 구조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나는 그 이후 2005년도에 혼자, 2008년도와 2010년에 같이 출장간 동료들과 다시 가 보았다.

네 번의 방문을 통해서 나는 감히 한국내에서는 이 고분의 사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고 이 글을 올린다..

 

 

2005. 2

아래 2008년의 1월 사진과 뒤바뀐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겨울같은 2월과 봄같은 1월...

눈이 한창 내리는 데서 사진은 찍으니 꼭 흑백사진 같지만 엄연한 칼라 사진이다.

 

 

 

2008. 1.  봄같은 1월이다.

 

 

무덤위에서 본 풍경...

 

뒤에 보이는 것이 호흐도르프 마을이다.

 

 

2010. 7

 

 

 

박물관의 내부 사진을 보기 전에 한 가지...

나는 호흐도르프의 이 무덤을 보기 전까지는 켈트족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만 사는 줄 알았다.

고교 때 배운 알량한 세계사의 기억과, 그리고 나중에 조금 본 세계사 책으로 인해서

내 기억에는 줄리우스 시저가 서유럽을 거의 점령했을 무렵(BC 1C),

갈리아(현 프랑스)에서의 상대는 골족이요, 브리타니아(현 잉글랜드)를 공략할 당시의 상대가 켈트족이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당시(AD 4C 후반 이후) 게르만의 일족인 앵글족과 색슨족(앵글로색슨)이

잉글랜드를 침공해서 켈트족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밀어 올린 사실만 남아 있었을 뿐

켈트족이 중부유럽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니

이곳이 켈트족의 선주지였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박물관...

호흐도르프 켈트 박물관에는 이 무덤의 모형관이 있고 전시품들도 모두 켈트족과 관련된 것들이다.

 

1997년  필카 사진...

내가 깜짝 놀란 것은 무덤의 외부만이 아니라 모형관의 내부를 보고서였다.

신라왕릉과 같은 컨셉의 틀림없는 적석목곽분이었기 때문이다.

신라는 목곽 안에 목관을 두어 시신은 각종의 부장품과 함께 그 속에 안치하지만  

이곳은 3중의 목곽 안에 시신을 관이 아니라  바퀴가 달린 청동 소파에 뉘어 놓은 것이 다르다.

 

신라나 여기나 목곽 위에는 돌을 쌓고 그 위에 점토를 얹고 그리고 흙을 덮는다는 점에서

그 구조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다.  

아래는 호흐도르프의 무덤 축조 과정을 상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 무덤의 중요한 유물들을 보면 시신을 눕혀 놓은 바퀴가 달린 청동 소파,

시신을 장식하고 있는 황금을 입힌 단검 등 황금 장신구들,

각종의 청동 그릇들과 여러가지 금속 붙이들을 쌓아놓은  정교한 수레,

그리고 벌꿀을 가득 담았던 큰 청동 항아리,

벽에 줄지어 걸어놓은 쇠뿔 장식 등 수많은 유물들이다.

 

무덤의 내부 그림.

 

참나무로 된 3중의 목곽을 볼 수 있는데 제일 안의 목곽에는 시신을 안치한 청동소파와

수레, 그리고 각종의 부장품들을 두었고 그 위의 두 목곽 사이에는 큰 돌들을 쌓아 놓았다.

 

1997년의 사진...

 

2005년의 사진...

청동 소파와 항아리...

청동소파

 

이 켈트족 족장은 신장 187Cm의 거구로 사망당시 나이가 40~45세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목과 허리에는 황금장식과 팔찌, 황금손잡이의 단검과 황금 칼집, 낚시바늘 등이 가슴에 놓여져 있다.

신발도 금으로 장식하고 있다. 

 

 

 

청동 소파에 점으로 새긴 마차, 그리고 마차를 탄 전사...

 

소파에 새겨진 싸우는 전사들의 모습...

 

 소파의 바퀴- 바퀴는 소파의 다리인 인형의 양 정강이 사이에 끼워져 있다.

 

 

시신의 발치에 놓인 것이 청동 항아리이다.

 세 마리의 사자의 조각이 보인다.

청동 항아리에는 벌꿀술을 담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매장 당시 약 370리터를 담아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97년 사진.

 

2005년 사진.

 

항아리에는 세 마리의 사자조각이 앉아 있다.

 

그리고 술잔...

 

 

항아리 손잡이.

 

2500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정교한 바퀴를 가진 수레.

청동 소파에 새겨진 그림에서 보면 말이 끄는 수레로서 이 위에 전사가 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수레 위에는 청동 그릇들이 놓여져 있고  칼, 창날, 마구, 도끼, 긴 막대기 등이 놓여 있다.

 

수레의 바퀴 연결부분---현대의 제품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다.

 

 

 

 

 

그릇과 도끼.

 

목곽의 벽에는 금으로 장식된 쇠뿔잔이 아홉 개 걸려 있다.

그 중 가장 오른 쪽은 철로 만든 잔으로 길이가 1.2 미터에 달한다.

 

 1997년 사진

 

 

 

철로 만든 뿔잔...

 

켈트박물관의 고분 모형관의 구석구석을 보여드렸고 박물관 전시물에서 몇 가지만 추가해본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1997년 최초 방문시의 기록을 올려놓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아래의 2300~2400년 전은 2500~2600년 전으로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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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97년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회의를 급히 마치고 전에 회사에서 상사로 모시던 독일인
B씨와 만났습니다.

평소에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음을 잘 아는 B씨는 저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Stuttgart에서 차로 약 2~30분 거리에 있는

그 곳으로 가는 동안 그는 간단히 그곳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Hochdorf’


지도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마을인데 그곳에 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비록 좀 납작하긴 하지만, 그리고 꼭대기에 선돌(menhir)같은 것이 하나 서 있긴
했지만,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음직한 옛 무덤이 거기 있는 것이었습니다.
약 2300~2400년 전에 그 곳에 거주하던 켈트 족의 족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라는
것입니다.

직경 약 60미터, 높이 6미터의 거대한 무덤이었습니다
잠시 후 기념박물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제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다섯시였고 바로 폐관 시간이었습니다.
퇴근을 하려고 준비하던 직원에게 B씨가 잠깐동안 이야기하더니 구경을 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경주의 천마총에 만들어 놓은 것 처럼

실물 크기의 무덤 내부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놀란 것은 그 무덤 구조의 경주 왕릉과의 유사성이었습니다.
신라 왕릉의 특징을 수혈식 적석목곽분이라고 합니다만

그곳의 무덤도 분명히 수혈식 적석목곽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진흙과 강돌을 교대로 쌓은 것이 경주의 왕릉이라면

흙과 모난 돌들 쌓아 놓은 것이 그곳의 무덤이었습니다.

목곽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것도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금 세공 부장품도- 물론 양식은 아주 다르지만- 있고

시신을 바퀴가 달린 청동 소파에 눕혀 놓은 것이 차이였습니다.

물론 많은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기본 개념의 유사성에 놀랐습니다.
그 여직원에게, 아마 연구원인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혹시 대한민국의 경주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잘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마 Siberia와 중앙아시아를 이었던(연결했던) Scytho-Siberian 문화가

양 대륙으로 뻗어나가서 그 끝이 바로 여기와 경주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녀의 말은 신라에서 행해지던 순장제도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꼭 같이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좌우간 저로서는 모형관 내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서 정말 기분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그녀도 30분 이상의 퇴근 시간 지체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온 손님으로 유쾌했었다고 활짝 웃어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한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전해주는 것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만

그날 저녁의 Stuttgart 극장에서의 강수진 양의

발레구경과 함께 실로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Hochdorf, 바로 그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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