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공산성 갑옷 아래서 옷칠 말갑옷 출토

monocrop 2011. 11. 2. 00:28

 

 

공산성 갑옷 아래서 옷칠 말갑옷 출토(종합)
 
연합뉴스| 김태식|입력 2011.11.01 17:39 / 출처 및 원문보기
"옻칠 마갑도 처음"..장식용 칼과 大刀도 수습

"칼은 한반도産"..갑옷 중국산 논란 불식될 듯

공주 공산성 성안마을 집수시설에서 갑옷 1습(세트)이 출토된 데 이어 그 아래 층위에서 이 갑옷과 같은 방식으로 가죽에다가 옻칠해서 만든 말 갑옷인 마갑(馬甲)이 발굴됐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글자가 있는 사람 갑옷 비늘을 수습한 뒤 그 하층 조사를 계속한 결과 마갑을 비롯해 큰 쇠칼인 대도(大刀)와 장식용 중간 크기 칼인 장식도(裝飾刀), 그리고 쇠로 만든 다른 갑옷 비늘 조각 등을 수습했다고 1일 밝혔다.

 

이남석 관장은 "마갑 자체는 물론이고 마갑 중에서 옻칠한 가죽제 갑옷은 백제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됐다"면서 "이 마갑 비늘 조각은 각각 길이 12~18㎝ 안팎이며 2m 안팎의 범위 안에서 두 줄로 나란히, 그리고 상하 네 겹을 이룬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출토 상태로 보아 이 갑옷은 말 등을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갑 상단부는 흙으로 퇴적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비교적 정연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이 관장은 "이번 마갑은 먼저 발굴해 공개한 주칠 명문(銘文)이 있는 가죽 찰갑보다 규모가 크지만 옻칠은 훨씬 얇다"면서 "마갑 외에 재갈이라든가 등자(등걸이 받침), 그리고 행엽(마구의 일종) 등의 마구류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이 마갑 또한 먼저 발견된 갑옷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이곳에 폐기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발굴된 대도와 장식도는 갑옷과 마갑 중간층에서 발견됐다.

이 중 대도는 장식이 없지만 길이 55㎝ 안팎인 장식도에서는 은 장식과 함께 특히 손잡이 부분에 금장이 발견됐다.

사진을 통해 이들 칼을 감정한 대전대 이한상 교수는 "중국에는 없는 칼이며, 백제 아니면 신라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종류"라면서 "신라에서는 금관총에서, 백제에서는 공주 송산리 고분에서 이와 비슷한 칼이 출토된 적이 있으며, 이번 공산성 칼은 이들보다 늦은 시대에 속하는 유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갑옷과 함께 출토된 칼이 한반도산이 확실시됨에 따라 이와 같이 나온 글자가 있는 갑옷이 중국 당나라 유물일 것이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외에 철제 찰갑(갑옷 비늘)도 덩어리로 발견됐으며 투구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이 관장은 "기존 갑옷과 이번 마갑은 위ㆍ아래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견되고 칼을 비롯해 투구로 추정되는 철 제품이 중간층에 남아 있어 일정한 목적에서 이들이 폐기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갑옷과 마갑 등의 유물이 발굴된 저수시설은 현재의 지표면보다 10m 아래 불안정한 지반에 위치하는 까닭에 붕괴 위험이 있어 곧 복토(覆土)할 예정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

발굴 초기 근거가 박약함에도 중국 것이라 어설프게 서둘렀던 한국의 역사학자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던 불과 얼마전의 관련 기사(아래)... 왜 알아서 갖다 바치는 것일까.

중국에서 보면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왜 상식에도 벗어난 해석을 우리 강단학계에서는 알아서 스스로 왜곡하는 것일까

참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는 외부에서 이유를 찾을 일이

아닌 것 같아보인다.

...................................................................................................................................... Mimesis 

 

공산성 출토 황칠갑옷은 당나라 장수 것 확인
서울신문| 입력 2011.10.26 03:16 / 출처 및 원문보기
백제 갑옷이냐, 중국 갑옷이냐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충남 공주 공산성 출토 갑옷과 관련, 백제 정벌에 나선 당나라 장수 갑옷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발표됐다.

●갑옷 주인은 중국인 '이조은'

중국 갑옷 가능성을 처음 제기<서울신문 10월 18일자 21면·캡처화면>했던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는 학술지 '충북문화재연구' 11월호에 발표한 논문 '공산성 출토 칠갑의 착용자와 매납 경위'를 통해 "빛나는 갑옷이란 뜻의 명광개(明光鎧)는 백제만의 특산품이 아니라 고구려도 사용했으며, 갑옷에 붉은 글씨로 쓰인 '李○銀'이란 글자가 李?銀(이조은)이란 중국 이름으로 확인됐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공주대박물관이 공산성 안쪽 성안마을에서 발굴한 갑옷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수거 중이다. 김용한 센터장은 25일 "가죽 위에 칠을 입힌 갑옷은 처음 접해보는 유물인 데다 소재였던 가죽은 모두 사라지고 피막과 같은 칠만 남은 상태"라며 "갑옷 비늘을 온전하게 보존했던 토양과 함께 수거 중이며 보존 처리에는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사람이 입었던 것과 같은 형태로의 복원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공산성에서 나온 갑옷은 선명한 붉은 글씨가 온전하게 남아있고, 고대 시대 갑옷으로는 처음 발굴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발굴팀은 당초 백제 장수나 의자왕이 입었던 갑옷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갑옷에 새겨진 645년 4월로 미루어 당군이 고구려 개모성을 점령하고서 획득한 고구려 명광개가 이번에 공산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았다. 또는 당태종이 사신을 백제에 파견해 명광개가 빛나도록 칠하는 황칠 재료를 얻었거나 백제가 제공한 명광개를 착용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5년 뒤 백제 수도였던 공산성에 명광개를 떨어뜨렸다는 것.

공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피신했던 장소이기도 했지만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백제를 멸망시킨 뒤 백제의 옛 땅을 다스리기 위해 둔 당나라 행정관청)가 설치된 곳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당군의 발길이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당연히 당나라 명광개가 출토될 수 있는 공간에서 그 모습을 처음 세상에 드러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당이 백제의 황칠재료 얻었을 수도

명광개는 햇빛을 받으면 번쩍거리는 갑옷으로 적의 눈을 부시게 할 목적으로 착용했다. 당나라의 명광개는 가슴에 호심경(護心鏡)이란 둥근 거울 모양 장식을 달았지만, 백제의 명광개는 갑옷 가죽 표면에 칠을 해서 빛을 낸 것으로 보인다. 갑옷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름도 확인됐다. 출토 당시에는 가운데 글자를 알아내지 못해 '李○銀'으로만 발표됐으나 면밀 분석한 결과 '李?銀'으로 드러났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당나라의 국성인 이씨는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확인되지만 백제에서는 등장한 바 없다. 공산성에서 칠갑과 더불어 출토된 당나라제 그릇은 당나라 군대가 취식하며 장기간 주둔했던 근거가 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윤창수기자ge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