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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기원 6c이전 고조선시대에 이미<선철>제련되다.(Cast iron was refined by Korean at bc 6c )

monocrop 2011. 9. 25. 00:57

 

정말 중요한 내용입니다.


고조선 이전의 청동기 일관제조시설이 현재 < 通化 >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선 처음입니다.서토왕조의 청동기는 아연 함유량이 무척 적습니다. 당시 아연을 섞어서 용융점을 낮추는 대단한
기술을 우리의 조상 이외엔 몰랐다는 이야기. 


청동기 합금기술이 제철기술보다 더 어려운것으로 알고 있고 철기가 <히타이트>에서 시작되었다는
서양 사관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정말 획기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유기 방짜기술은 (놋쇠) 아무나 못하는 기술로 이종금속간 배합비율 22%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대 기술로 서토인도 , 왜인들도 왕의 식탁에 놓이는 수라에 독을 검출하는 방짜鍮器를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조선만이 사용했다는것은 금속,비금속 할것없이 제련,합금기술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기술로 만든 유기를 일명 新羅銅(후에 高麗銅)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식민사관의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사실입니다.(운영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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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쇠반달칼(길이 1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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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 구석> 유적과 철기문화  

스틸월드투어-고조선 철기문화 기행
< 범의 구석> 유적과 철기문화  청동기 토양에 자라난 철기의 싹

제5문화층-완전 용융상태 선철 주물품 '획기적'  제6문화층-생산도구 '봇물'..철제 보편화 입증.고조선의 철기 문화는 청동기 문화가 광범위하게 번성하던 토양 위에서 자라났고 새로운 철기 문화가
 출현해 전파되면서 튼튼하게 발전해 나갔다. 고조선의 철기 문화는 주로 한반도 북쪽에서 형성됐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그 유적을 직접 찾아 보기가 무척 힘들다.  

 

1988년 평양의 「조선유적유물편찬위원회」에서는 1만여 점의 유물을 전20권에 걸쳐서 <조선유적유물도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 가운데 고조선 시대의 유물에 대한 도감은 1995년 <한민족의 문화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신문 방송인클럽이 서울에서 출간했다. 이 자료에 나타난 고조선의 초기 철기 문화를 살펴본다.


<범의 구석> 유적은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서쪽의 두만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유적층 가운데 제5문화 층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에 해당하는 문화층이다.  범의 구석 유적(5문화층)에서 쇠도끼, 쇠창, 쇠대패날, 쇠끌 등 적지 않은 철기가 나왔다. 쇠창은 청동기시대의 버들잎 모양의 훅요석 창끝과 비슷하며 구두칼 모양의 쇠칼도 이전 시기의 점판암 으로 만든 칼과 비슷하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를 그대로 모방한 이와 같은 철기의 형태는 이곳의 유물이 철기시대에 들어 선 초기의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북한 학자들은 여기서 출토된 쇠도끼는 완전 용융상태에서 얻어진 선철 주물품 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질 좋은 선철제 도끼를 생산했다는 것은 세계 제철 기술사에서도 그야말로 보기 드문 예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 선철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으며, 유럽에서는 14세기가 되어서야 액체상의 선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남한의 학자들은 대개 한반도에서 철기시대가 빨라야 기원전 4세기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에 해당하는 범의 구석 유적 제6문화층에서는 이전에 사용되던 석기가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쇠도끼, 쇠낫, 쇠반달칼, 쇠자귀, 쇠낚시 등 여러가지 종류의 철제 생산도구가  수없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이 시기에 이르면 이 지역에서 철기 사용이 보편화됐음을 말해준다. 



임경순(포항공대 교수)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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