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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갑골문<천부경> 문자, 은 갑골문, 홍산문화, 흑피옥문화에도 나타나

monocrop 2011. 9. 11. 11:15

고조선 갑골문<천부경> 문자,

은 갑골문, 홍산문화, 흑피옥문화에도 나타나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 '혹피옥 문화와 고조선 문자'<3>
2011년 08월 19일 (금) 16:37:18 국학뉴스 hsp3h@kook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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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암각화-옥기:인물(너무 닮은 꼴)

울주군 암각화 인면상-두만강 유역 골제 인물상-흑피옥 문화

①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인면상(人面像)왼쪽과 모사도(오른쪽)얼굴크기14.5cm

② 두만강 유역 돌널무덤 출토 골제 인물상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주)29

<흑피옥문화>

③ 흑피옥 문화 남자 인물상, 얼굴(일부)(약30cm)

* 인물상 : 여인

      <홍산문화>                                   <흑피옥문화>

          

[2] 문자 사회

신석기시대 유물 가운데 석기, 토기 등은 주로 생활 도구로 쓰였지만, 옥기는 신물(神物)과 제기로서 당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귀중한 인류의 역사적 보물이다. 여기에 확인 가능한 문자까지 새겨져 있다면 그 역사적 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 사회의 각 씨족이나 부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다양한 주변 대상(동물) 가운데 새족(鸟族), 돼지족(猪族), 소족(牛族), 곰족(熊族), 양족(羊族) 등 종족 간의 구분(族徽)을 다양한 동물 형태 옥 조각으로 나타내었다. 이들은 옥을 매개로 도화나 상형을 통하여 가시화, 형상화되기 시작했고, 부호문자나 도화문자의 문자로서의 체계를 구축해서, 최종적으로는 성숙한 문자 체계를 갖춘 은 갑골문, 금문(金文)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족휘의 문자적 성격에 대해 "곽말약郭沫若 선생은 대개 조수충어(鳥獸蟲魚)형태를 만든 도형문자는 반드시 고대 민족 토템이나 후손과 관련되고, 조수충어가 아닌 것은 토템이 변화한 것으로 이미 상당히 진보한 문화로서 원시영역을 탈피한 자들의 족휘이다."라고 주장했다.(주)30

또 중국 북경대학 고명(高明)교수는[고문자류편 古文字類編]휘호(徽號)문자에서, 상주시대 금문 599개 족휘(族徽)를 갑골문자와 서로 맞는 문자 150개를 대응시켰으며, 이런 입장 자체가 족휘를 문자로 본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었다.(주)31

그러나 우리는 흔히 갑골문자가 중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갑골하면 으레 은나라의 것으로 연상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태하 교수(명지대)는 "수(隨)[切韻](601) 가운데 당시 契(글의 고음(古音))의 음가를 

欺 訖 切

기 흘

기 = ㄱ + 이 --> ㄱ

                 +  = 글

흘 = ㅎ + 을 --> 

(反切法 :위진남북조 이후 두 글자로 한음가 표기 방법)

(反切上字 : 성모(자음) +反切下字 : 운모(모음))

즉 " 글 "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문자를 " 글 "이라고 발음 하는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까지는 글과 같은 어 원의 '칼로 긋다'라고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동이족은 갑골문을 새기던 도구인 칼 이름(鍥:글), 끌이란 명칭마저 갖고 있어서, 동이족이 갑골문을 창제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따라서 갑골문은 동이족이 창조해낸 문자로써, 한민족 상고사, 고대사의 보고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주)32 

<1>홍산문화 암각화 부호문자-갑골문-흑피옥문화․홍산옥도명문

 

 

 

①내몽고 옹우특기(翁牛特旗) 고일소(高日蘇) 대흑산(大黑山) 문자부호 암각화

단일 유물 문자부호 30여개.

오갑재吳甲才 翁牛特旗人文歷史研究員

홍산문화 후기. 홍산문자 화하문명華夏文明 동일 기원.

"만약 이들 부호가 진정한 원시 문자로 증명될 경우, 그것은 갑골문자와 같은 문화계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 문자 기원의 역사를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개산림盖山林 중국 내몽고 암화보존 연구학회회장:

중화민족 고문자. 문자사 2000년 앞당긴 증거.

②갑골문 양동숙[갑골문자해독] 서예문인화. 2005년. 238쪽.

③[중부매일]고조선갑골문<천부경>

④흑피옥문화 옥도 명문 ⑤-⑧홍산문화 옥도 명문

홍산문화 옥구 30x25cm 홍산옥문화 원시상형문자의 기원

2008년, 필자는 고조선갑골문<천부경>(위 그림3)일부 문자 "一終無終一"의 '終'자와 갑골문 '冬(=終)'이란 글자와 동일한 문자가 새겨진 홍산 문화 명문 옥도(玉刀) 3자루(그림5-8)와 흑피옥 문화 명문 옥도(그림4)한 자루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총14개 글자를 발견했으며 특별강연회를 통해 한국과 국제사회에 알렸다.(주)36   

더욱 놀라운 것은 석월(그림9), 흑피옥 문화 옥도(그림1), 홍산 문화 옥도(그림3-5)가 동일한 제작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 문자들을 새겨놓은 옥도가 홍산 문화이거나 흑피옥 문화를 막론하고 통일된 제작양식을 띠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가 일정한 규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엿 볼 수 있고, 옥도와 새겨진 문자가 의미하는 상징적 권위가 통치하던 문명사회의 존재를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림4<흑피옥도> "" "冬"

이 옥도 칼 날 부분 양쪽에 육안으로 한 글자는 식별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글자는 식별이 불가능 하다. 또 이 옥도는<홍산명문옥도>(위 그림2, 3, 4, 5)와 공통적으로 새(봉황)토템, 옥도(예기)등 전통적 문화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특징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흑피옥 문화 명문 옥도와 1997년 중국 하북성에서 수집된 월(鉞)은 용의 형태와 중앙 구멍 등으로 보아 제작기법상 동일 문화주체에 의한 유물로 판단하는 데에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림5<홍산명문옥도> "" "冬"

칼자루 부분에 소(코뿔소)한 마리를 조각한 것으로 보아 소를 관장하는 씨족집단이나 부족의 상징물(족휘)로서 일종의 소(동물)토템사상을 엿볼 수 있다.특히 네 발로 버티고 있는 조각으로부터는 아주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흑피옥도>(그림1)<홍산명문옥도>(그림3)는 제작기법이 거의 동일하다고 보인다. 이와 같은 정도의 옥으로 만든 칼의 소유자가 누렸던 실질적 권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림4, 5, 6, 7, 8<흑피옥도> <홍산명문옥도>

위 옥도들은 형태상 동일한 문화 양식에 의한 제작으로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옥도의 기본적 구성이 칼자루 부분에는 동물 조각과 아래 쪽에는 또 다른 새끼동물 조각이나 무늬, 칼자루와 칼날을 연결하는 부분의 띠 형식과 구멍, 칼날을 두 개로 만들어 긴 쪽 칼날에는 구멍과 문자, 다른 한쪽에는 동물 새끼 얼굴부분을 옆으로 붙여 놓은 것은 결국 형태상 크기만 다를 뿐, 조각의 내면에 흐르는 동물숭배 사상, 새 생명의 탄생과 권력의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점은 거의 공통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근거로부터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사이에 흐르고 있는 동일 문화의 전통적 관계와 동일 문화주체에 의한 역사적 유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이 갑골문자 "終"이란 글자가 신화와 전설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민족의 영원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에서 설명한 자와 함께 '丌'(기) 자도 발견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丌部 丌:下基也。薦物之丌。象形。讀若箕同。(주)37

丌부 丌 : 아래 기초. 물건을 바치는 기. 상형. 기(기)와 같이 발음한다.

그리고, 이밖에도 위 그림4-9에서 발견한 문자는 다음과 같다.

우선 무슨 글자이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문자의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원형의 머리 부분, 중간의 선(문자구성;곡선.직선)부분, 두 다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아래쪽 부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윗부분의 "ㅇ"은 무슨 뜻일까? 단순하게 사람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로 보더라도 사람 머리 부분을 나타냈다면 이 글자는 사람 人(인)에 가장 비슷한 상형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서 사람 인(人)은 대부분 머리에 해당하는 "ㅇ"부분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선사시대부터 중국에서는 하늘(天)은 가장 높은 것으로 만물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믿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을 띠고 있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의 우주관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황제는 천명(天命)을 받은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었던 것이고, 또 하늘(天)은 양을 이루고, 땅(地)는 음을 이룬다고 하는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의식세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대만 고산족(高山族)의 상형문자의 경우, 글자의 윗부분 "○"은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그들은 사람을 “○”, 귀신을 “○”, 무속을 “○”으로 나타내고, 사람과 귀신을 소통시켜주는 것을 호목(胡木)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天)이란 글자를 갑골문과 고문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說文解字] , 하늘은 정수리이고 지고무상이다. 一과 大로 되어있다. 나진옥, 왕국유 이래 모두 [설문]에 근거하여 복사의  ' 를 하늘로 설명한다. : 사람 형상이고, 二는 윗 글자이다. ㅁ은 사람의 정수리의 상형이고, 사람의 위는 바로 하늘을 받들고 있다거나 혹은 ㅁ으로 돌출한 사람의 머리 꼭대기를 하늘로 표시했다”

<홍산명문 옥도>의 문자의 “○” 부분이 갑골문에서는 “ㅁ” 으로 바뀐 것은 당시 글자를 붓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끌과 같은 도구로 사용했던 관계로 “○” 보다는 “ㅁ” 으로 새기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39

그러나 이 글자는 ‘천天’으로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는 관계로 확실한 것은 앞으로 연구결과를 기대하고 싶다.

* 적봉시 삼좌점(三座店) 하가점하층문화 석성

부호문자<도편문자(陶片文字)> (4000-3400년 전)

   

 

내몽고 문물고고연구소 곽치중(郭治中) 문자부호(상형부호)

좌: 아래 “기안” 상형부호, 윗 부분 “과鍋” 상형부호.

우: 아래 “기안” 상형부호, 윗 부분 “자柴” 상형부호.

하가점 하층문화 시기 성숙한 문자부호 존재. (주)40

* 소하연문화 서요하 석붕산(石朋山)출토 도화(圖畵)문자

[모사도와 탁본] (연대 4000여 년 전)

   

 

 

 

 

유빙劉冰 적봉시박물관장

석붕산 원시도문石棚山 原始陶文은 제문祭文으로 최초에는 하가점 하층문화를 거쳤고, 나중에는 상商 선조와 함께 남천했으며, 약 천년의 진화를 거치고 난 후, 결국에는 상대 계통의 갑골문과 금문金文을 형성했다.

석붕산 적봉시 이북 30km.

“織,豆,田;窯,窯,窯,豆”. (주)41

유봉군刘凤君교수(산동대학)는 골각문骨刻文은 중국 초기의 도화 상형문자로, 즉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는 것이다.(주)42

* 고조선 문자토기 고배(苦杯)

두 자 연결 문자 : 고조선 시대 관직명, 인명.

이형구 교수는 저서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 문화의 비밀]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고대사회에서는 일찍이 문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요동반도 여대시 윤가촌(尹家村) 유적(12호묘)에서 출토된 굽접시[고배(苦杯)]에서는 두 자를 연결한 문자가 발견되었다. 이 굽접시는 부드러운 바탕 흙을 쓴 회색 질그릇으로서 원통형의 굽 부분에 돌림판(물레)을 쓴 흔적이 보인다. 그릇을 구워낸 다음에 접시부분의 바깥 면에 새긴 글자가 있다. 글자는 혹 고조선시대의 관직명이나 인명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하였다.

 

   
   

 

조선 문자토기[고배(苦杯)]와 문자(오른쪽 위) 문자탁본(오른쪽 아래) ” (주)43

위와 같은 굽접시의 문자와 비슷한 형태의 문자가 홍산문화의 중심지인 적봉시 오한기敖漢旗 사가자향四家子鄕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산봉우리에 있는 피라미드 고분(아래부분 길이 30m 이상. 폭 15m 이상. 3층 석조건물) 자리에서도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중국 요령성의 고고학 연구센터의 유명한 고고학자 곽대순(郭大順)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 고분은 지금부터 5000년~6000년 전 홍산문명 시대의 것이라고 말한다. 일곱 개의 무덤과 제단의 유적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발견되었고 제사단이 있던 자리에서는 한문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은 고대인들이 천문(天文)을 익히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주)44

그렇다면 과연 상당기간 동안 은(상)과 공존했던 고조선에는 문자가 존재했을까?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조차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기존 일부학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이형구 교수(선문대)를 비롯한 학자들은 고조선에도 고유한 글자가 있었다거나 고조선 시대의 관직명이나 인명으로 짐작되는 글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선각자적인 학자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교수는 저서[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 문화의 비밀]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고대사회에서는 일찍이 문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요동반도 여대시 윤가촌(尹家村) 유적(12호묘)에서 출토된 굽접시[고배(苦杯)]에서는 두 자를 연결한 문자가 발견되었다. 이 굽접시는 부드러운 바탕 흙을 쓴 회색 질그릇으로서 원통형의 굽 부분에 돌림판(물레)을 쓴 흔적이 보인다. 그릇을 구워낸 다음에 접시부분의 바깥 면에 새긴 글자가 있다. 글자는 혹 고조선시대의 관직명이나 인명이 아닌가 짐작된다." (주)45고 하였다.

그렇다면, 홍산문화와 흑피옥문화 옥도의 두 자 문자 명문과 고조선 문자 토기의 두 자의 문자 표시는 무슨 관계일까? 당시 고대 문자에 대한 일정한사회적 질서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C자용, 옥결 등 다양한 형태의 옥 조각에도 불구하고, 옥기 제작에 통일된 설계와 제작에 의한 결과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옥기 제작과 관련해 볼 경우, 옥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신분차별과 계급발생 등 일정한 사회적 가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던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신석기 시대 중국대륙 북방문화(흑피옥문화, 홍산문화)에 등장하는 고대문자와 비슷한 시기의 중원문화에서도 국가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산서山西 양분襄汾 도사陶寺 유적지 朱書扁壺의 도편陶片 문자(아래 왼쪽 그림)출토는 당시 동방사회가 서서히 문명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山西고고대장 하노何駑는 "문명시대 형성기점을 지금으로부터 3700년 전에서 4200년 전 무렵으로 약 500년 앞당겨야 한다. 4200년 전 도사陶寺 사회조직이 이미 국가단계에 진입했다. "(주)46고 하였다.

   

 

 

 

 

 

위와 비슷한 연대의 문자의 등장에 대해 중국의 문자학의 권위 이학근李學勤 청화대淸華大교수는 "산동 대문구大汶口 문화와 절강의 양저良渚문화는 4500년전 당시 상당히 장시간 공존했었다. 당시 두 지역의 생산력 발달로 인한 언어의 기록에 대한 요구가 이미 출현했고, 이런 부호는 일종의 문자였을 것이고, 혹은 원시문자인 하나의 이유로, 그것은 단지 한 문화가 한 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남경 북음영北陰營, 안휘安徽 몽성蒙城 위지사尉遲寺에도 출현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큰 가능성은 일종의 정보를 교류하는 작용으로 그것은 문자에 근접한다는 것이다"(주)47고 하였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송요량 교수가 주장하는 환태평양 연안 인면 암각화의 문화적 기원이 바로 산동 대문구大汶口 문화인 사실과, 나아가 이 대문구 문화가 북으로는 홍산문화 중심지 적봉과 남으로는 대표적 옥기문화 로 유명한 양저良渚 문화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송 교수는 환태평양 연안 인면 암각화는 하나의 동원同源 문화가 전파된 것이고, 그 기원은 산동 대문구大汶口 문화로 보고 있으며, 그가 주장하는 연대적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북미주 서해안 암각화, 중국대륙 하란산 암각화에서 한쪽 눈은 뜨고, 다른 한쪽 눈은 감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위하渭河 화산華山 지역의 앙소문화 도병陶甁의 표현과 동일한 것을 발견했다.(주)48(아래그림 참조)

 

   

 

 

   
   
仰韶문화 陶甁                                          흑피 옥조

 

 

 

 

 

 

 

위와 같은 눈에 대한 음양의 표현 방식은 신석기 시대 인류가 바위는 물론 앙소문화의 도자기와 흑피옥문화 옥조에서도 공통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눈을 뜨고 감는 것을 함께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혹시 전자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후자는 눈을 감았다고 하는 생과 사를 동시에 나타낸 것은 아닐까.

결국 신석기 시대의 중원 앙소문화-내몽고 흑피옥문화-내몽고 홍산문화-산동 대문구문화-절강 양저문화가 일련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송 교수가 주장하는 인면 암각화의 중국 내 문화 전파 경로와 중국의 대표적 역사학자 소병기蘇秉琦 교수가[중국문명기원]에서 밝힌 북방-중원문화 연접 그림의 Y형 문화대(화산華山 앙소仰韶문화-연산燕山 홍산문화)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화상의 일치가 아니라, 연대적으로도 약 5000년 전이라는 비슷한 시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蘇 교수는 중원에 있는 국가의 기원은 중원문화와 홍산문화 접촉한 결과 파생한 것으로, 그것은 신화․전설의 요․순․우의 홍수와 치수 시기에 해당하고, 사방의 문화가 결합「중국」의 관념이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고, 이 지역은 중국 문화사상 최대 용광로라고 주장한다.(주)49(아래 오른 쪽 그림)

   

북방-중원문화연접 시의도

 

 

 

  

당연히 이 문화 경로에 흑피옥문화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2>옥기-갑골문

* 갑골문 龍 :

옥결은 홍산문화와 흑피옥 문화의 옥룡과 더불어 후일 문자발전에도 영향 을 미쳐 갑골문 용(龍)자의 경우 그 원형으로 밝혀졌다.

입체 조각 → 평면 부조→ 刻文字 '龍'(은 갑골문자)

   

 

 

 

 

   

 

옥결과 더불어 거의 유사한 외형을 띤 옥룡(C자용)은 둥근 몸체가 영어의 C자 모양을 하고 있어 흔히 C자용으로 불린다. 중국북경고궁박물원은 "옥룡은 조기 씨족예술의 대표작으로 홍산문화 유물이다. 조형이 과장, 기이한 사실적 표현과 추상적 표현 수법을 함께 갖추었고, 구조는 비록 간결하지만, 오히려 질박 조야하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어느 부족의 토템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51

이와 같이 옥기의 형태와 닮은 상형의 은 갑골문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我 : 아 (주)52

손에 날카로운 이빨달린 구운형 옥기(도끼)를 든 부락 수령 신분 상징부호.

   

 

 

 

 

   

   

 

   

 

 

 

 

   

 

  북경박물관 소장 요녕성 문물고고연구소 소장 곽대순(郭大顺)은 “말굽형 옥기는‘祖-且’자의 원시부호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祖-且’자는 틀림없이 홍산문화 가운데 유일한 말굽형 옥기 정면의 형상 부호가 변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주)55

[3] 결론

위에서 일부 설명했지만 <홍산명문옥도>의 구조적 변화로부터도 상당한 문화의 전통적 연속성과 일관된 하나의 큰 흐름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연대적으로도 상당기간 동일한 문화 영역권에서 시공을 떠나 똑같은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당시 흑피옥 문화와 홍산 문화 시대가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었던, 이미 성숙한 문명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큰 줄기를 연대적으로 정리하자면, 고조선 갑골문<천부경>, 은 갑골문, 신석기 시대 홍산문화, 흑피옥문화까지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연결 고리 즉 문자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는 선사 시대와 문명사회의 규정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지만, 동시에 문자는 절대적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갑골문 등장이전 단계 즉 맹아기와 발전과정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위 그림10과 같이 도편에 새겨진 문자부호 두 개를 발견한 사실만으로도 하가점 하층문화시기(4000-3400년전)에 성숙한 문자부호가 존재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문자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곽은 삼좌점(三座店)유적에 대한 평가에서 "이 산성 유적의 발굴은 하가점 하층문화의 사회발전 단계에 대한 심층 연구의 진행에 따라, 요서지구의 조기 왕조출현 및 중국 문명 기원 등 연구에 비교적 실질적인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56

중국 측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홍산문화를 삼황오제 전설이나 ‘하’왕조와 연결시켜,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삼으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좌점 산성에서는 치(雉)가 5m 간격으로 13개나 발견되었고, 이것은 고구려의 특징이며, 국내성 집안시 고구려성에서도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홍산문화는 당시 중원문화와는 다른 성격의 독자적인 문화일 뿐 아니라, 삼좌점 유적지는 홍산문화 이후 동이의 근거지로 이 지역에서 발원한 단군조선(고조선)의 건국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홍산문화를 계승한 후속문화로 청동기시대 하가점 하층문화는 단군신화의 건국연대와 거의 유사하며, 문화의 특성 가운데도 유사한 점들이 발견되고 있어 우리로서는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사학계는 요령성 우하량(牛河梁) 지역에서 발굴된 ‘여왕국’에 주목한다.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 유물들은 고조선 등 우리 유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적석총 고분군이 수십 개 산재해 있는데다, 여신묘에서는 곰의 턱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적석총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우리 민족의 장묘 형식이라는 점에서 우하량의 여신은 혹시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아닐까. 기이하게도 발굴된 유물들의 연대가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과 비슷한 시기다. 홍산문화는 정미(精美)로운 옥기 및 대형 종교건축으로 이름을 드러냈는데, 요령(遼寧)서부 대능하(大凌河) 유적지에서 발굴된 5천 년 전의 종교 유적지-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적석총 등 이들 건축 유적지는 일정한 신분질서를 보여주는 홍산문화 최고 등급의 정치중심지였다는 것이다.(주)57

결과적으로 홍산문화 적봉시 암각화에 등장하는 부호문자는 이미 하나의 문자 체계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동일한 문자가 다른 유적과 다른 시기에서 출현하고 있는 사실로 부터, 이것은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 시기에 이미 문자가 상당히 넓은 일정 범위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모종의 고정된 의미(뜻)로 인정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달자와 피전달자 사이의 전달 과정에는 반드시 언어(말)를 통한 설명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문자 등장의 대전제인 의미와 소리의 결합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 문화 주체에 의한 동일한 문자 ‘ 동冬(=고어 종終)’자가 홍산문화 암각화와 명문 옥도, 흑피옥문화 명문 옥도, 은 갑골문, 고조선 갑골문<천부경>에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문화 유형인 빗살무늬토기 문화가 만주지방과 한반도에서 오랫동안(기원전 6000년쯤부터 2000년쯤까지) 유행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두 지역이 동일한 문화영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의 동질성은 민족의 동질성과도 통한다.

이와 같이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옥기는 단순하게 옥기 문화의 역사적 연속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고대 국가기원은 물론, 한국 고조선 문자의 발견과 중국 한자의 기원으로 알려진 갑골 문자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성격을 띤 동아시아 공통의 국제적 문화인 것이다.

위 두 문화시기에 야만과 문명사회를 가르는 기준인 문자발견을 근거로, 중국의 문자 기원을 몇 천 년 앞당길 수 있다고 하거나, 고조선 문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중요하겠지만, 우리들은 두 문화가 한국 민족의 근원, 중국 문자의 기원, 일본 승문문화의 기원 등과 관련이 있는 현재기준의 민족이나 국가의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동방문명의 기원으로서의 국제적 성격에 연구의 효과 및 의의를 두고 싶다.

지금까지 최고의 문자로 알려진 은 갑골문보다 연대적으로나 문화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흑피옥문화와 홍산문화의 명문 옥기가 발견된 것은, 당시 중국 대륙 북방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일련의 신석기 시대 문화가 황하유역의 중원문화와는 다른 독자적 문화로 판단하는 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문명의 기원을 밝혀주는 결정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지도>

 

   

 

   

 

 

 섬서성陝西省 하란산賀蘭山 대맥지大麥地 인면암각화.

적봉시 삼좌점三座店 인면암각화. 석성(고구려 축성기법)1000여 곳.

적봉시 오한기敖漢旗 사가자四家子 5000년전 피라미드 발견(미자 도편).

적봉시 옹우특기翁牛特旗 大黑山 5500-4200년전 부호문자 암각화 발견.

요녕성 조양시 건평현 우하량. 소조 여신상. 비파형 옥검. 소조 곰발. 곰이빨.

요녕성 부신시阜新市 호두구胡頭溝. 홍산문화층 바로 위층.비파형 청동단검.

요녕성 금주錦州 수수영자水手營子.청동꺽창(銅戈).고조선 터전(이형구)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大城子 孤山 고조선 기후,고죽명 청동기(3500년전)

하북성河北省 탁록현涿鹿县 5000년전 석월石鉞(왕권상징물) 수집

하북성 양원현阳原县 홍산문화 옥저룡(3.3x2.6cm)출토. 하북성박물관소장.

흑피옥문화 내몽고 오란찰포시烏蘭察布市 화덕현化德縣 대정구大井溝

홍산문화

큰 원(홍산문화권):적봉시(三座店, 夏家店, 小河沿).부신시阜新市.조양朝陽市 등.

작은 원: 적봉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