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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은 정말 우리의 문화였을까?

monocrop 2010. 9. 22. 08:08

고려장은 일본문화?

日 주간지 '유령 고령자' 문제 부모 버리는 풍습에 비유

 

[조선일보 2010.09.03]

정성진 기자 sjchung@chosun.com

 

 

일본의 한 주간지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유령 고령자'문제를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에 비유해 기사화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나이 많은 노인을 산에 버린다는 전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접근이다.

국내 학자들은 "일본인들이 강점기에 '한국에는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이라는 관습이 있다'며

없는 문화를 있는 것처럼 날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월26일자 슈칸신쵸(週刊新潮)는 '100세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증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부제는 '행방불명이 드러낸 세계 최고 장수 국가 일본의 실태'였다.

잡지는 일본 도쿄에서 살고 있는 111세의 최고령 남성이 알고 보니 30년 전에 죽은 것으로 밝혀진 사건 등을 전하면서,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죽는 나이가 70세지만 현재 없어진 노인들의 나이는 100세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7월 28일 111세이며 도쿄에 살고 있던 것으로 기록돼 있던 노인이 실제로는 30여년 전에 사망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 유령 고령자 사건의 시초다.

이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수십년 된 시체가 발견된 경우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50년간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말하자면, 행방불명인데 행정 서류상으로만 살아 있던 것.

슈칸신쵸는 이런 행방불명자가 8월 14일 현재 242명에 달한다고 했다.

기사에 거론된 나라야마 부시코는 1983년 만들어진 영화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버리는 '우바스테야마(�n捨山)'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해 70세가 되면 나라야마라는 산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있는 산골마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를 듣고 "우리 고려장 풍습과 비슷하네"라는 생각을 했다면, 국내 사학계의 얘기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고려장 풍습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많이 사실(史實)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

부경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는 "한국에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내용은 문헌 근거가 희박하다"며

"현재 학계 다수설은 고려장은 실재하지 않았던 풍습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19세기 말 이후에 일본인이 쓰거나 다른 외국인이 쓴 글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성행하던 일본인에 의한 도굴을 쉽게 하기 위한 여론전(戰)이었다는 설도 있다.

 

( 펀주 : 저 무덤은 고려시대에 부모를 버린 불효자의 무덤이니 도굴해도 된다는 식으로

도굴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날조였다는 뜻.) 

 

반면, 일본에서 유령 고령자의 문제를 나라야마 부시코에 비유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이 실제로는 일본인에게 내려오는 문화임"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3/20100903013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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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은 없었다.

 

'고려장' 이란 말은 일제의 조작

 

 

[펌]

 

고려 시대에는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어서 부모가 늘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습인가?

과연 고려 시대에 이 고려장이 있었던가?
해답부터 얘기하자면 철저히 꾸며진 이야기 이다.

그것도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사실 이라는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옛날 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고려시대까지 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병자란 전염병 환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엄하게 처벌 하였다.

이런 사회에서 고려장이란 풍속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려장이란 말은 일제시대부터 쓰이기 시작 했는데

그 이유조차도 사악하기 그지없다.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든 이유란 즉 우리나라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이다.

전국을 뒤져 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 (시신과 함께 묻은 물건들) 까지 노리게 되었다.

일본인이 조선인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 인부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정서상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남의 무덤을 파헤친단 말인가?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인은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용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냈는데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말로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일제의 얄팍한 상술에 이용되어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게되고

이런 용어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우를 우리는 범하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목이다.

 

 

'고려장'은 한국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풍습

 

[펌]

 

고려시기 전공자라면 한번쯤 '고려장'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고려'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당연히 고려의 풍습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내다버리던 악습'이다.

또한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고 알려진 무덤들도 여러군데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고려시기에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풍속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과연 고려의 장례풍속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는 고려장의 실체는 무엇일까?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로 구전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낸 문제를 숨겨놓은 늙은 아버지의 힘을 빌어 해결하고 고려장을 폐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늙은 아비를 산 채로 져다버린 아버지가 내버린 지게를 아들이 후일 다시 쓰기 위해 가져옴으로써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불효를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 전래된 이야기 이다.

 

앞의 이야기는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연(棄老國緣)조의 설화와 유사하고,

뒤의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원곡(原穀)이야기와 유사하다.

원곡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원곡이란 사람에게는 늙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원곡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싫어하여 갖다 버리려고 생각하였다.

15살 된 원곡은 울면서 말렸으나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드디어 수레를 만들어 갖다버렸다.

원곡이 따라가 수레를 다시 가져오니,

아버지가 "이처럼 흉한 것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하였다.

원곡이 말하기를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다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깨달아,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왔다.

이후 잘 봉양하여 마침내 효자가 되었다.

 

또한 '기로국이야기'는 우리 나라에 수용·확산되면서

불경에 있는 천신(天神)이 중국으로,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기로의 풍습이 고려장(高麗葬)으로 변용되어

고려시기에 실재로 존재한 풍속처럼 믿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로국이야기는 몽고의 민담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방 곳곳에 고려장터로 알려진 무덤들은 무엇일까.

고고학계의 발굴결과로는 고려장과는 무관한 석관묘(石棺墓)나 석실분(石室墳)으로 판명됐다.
이와 같이 고려장은 고려의 장례풍속이 아니었다.

고려시기는 불효죄를 엄격하게 처벌 하였다.

『고려사』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호적과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징역 2년에 처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왕이 효행이 있는 사람과 80살 이상 된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선물을 주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반대로 노인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기 위해 효자전의 원곡이야기와 기로국이야기를

마치 우리 나라, 특히 고려의 실제 풍습인 양 바꾸어 전승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이우석(부천대 강사, 중세1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