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문화

드러나는 안원구 파일과 도곡동 땅주인

monocrop 2009. 12. 16. 00:30

[뉴시스아이즈]검찰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의혹’ 수사 미적 왜?

뉴시스 | 윤시내 | 입력 2009.12.15 08:58 | 수정 2009.12.15 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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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지연진 기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올해 초 정국을 뜨겁게 달군 그림로비 의혹에 이어 청장유임 로비, 신성해운 뇌물수수 의혹 등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현 정권의 첫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검찰은 미국에 체류 중인 한 전 청장에게 귀국을 종용하는 한편, 한 전 청장 재직 시절 국세청에서 불거진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한 전 청장에 대한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고(故)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선물했다는 이른바 '그림로비' 의혹과

청장 유임을 위해 현정권 실세에게 로비했다는 '유임로비' 의혹,

2005년 신성해운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대가로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다.

그림로비 의혹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전 청장의 부인 이미경씨가 처음 제기했다. 이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청장이던 시절 한상률 당시 차장 내외로부터 그림을 직접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07년 인사를 앞둔 어느 날 한 전 청장 내외와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만나 문제의 그림 학동마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동마을은 38㎝×45.5㎝(8호) 크기의 추상화이다.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대가인 고(故) 최욱경 화백이 1984년에 그렸다. 한국의 전통 색채에 주목했던 화가의 강렬한 색채 감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으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 전 청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그림을 받았다는 아내의 말을 전면 부인했고, 한 전 청장 역시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사건은 민주당의 고발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됐지만,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줬다는 사람은 없어 그림로비 사건은 의혹만 무성히 남긴 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후 한 전 청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등과 부산에서 주말골프를 즐겼다는 의혹에 시달리다 낙마했고,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동안 잊혔던 그림로비 의혹은 안원구 국세청 국장이 체포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국세청 간부의 그림강매 의혹을 내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2일 세무조사를 빌미로 기업들에게 미술품을 강매한 혐의로 안 국장을 긴급 체포한 것.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안 국장이 부인 홍혜경씨가 운영하는 가인갤러리를 통해 기업들에게 미술품을 사도록 한 사실이 밝혀졌다. 가인갤러리는 한 전 청장이 전 전 청장에게 선물한 문제의 그림 학동마을이 매물로 나왔던 곳이다.

여기에 홍씨는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며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한 전 청장이 정권교체 후 청장유임을 위해 현정권 실세에게 10억 원을 만들어 주려했고, 안 국장에게도 3억 원을 요구했다는 이른바 유임로비 의혹이다.

홍씨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정권교체 이후 유임을 위해 정권 실세들에게 각종 로비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북 출신인 안 국장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참여정부 시절 청장에 오른 한 전 청장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청장직을 유지하다 올해 초 퇴진했다.

홍씨는 또 한 전 청장이 3억 원을 상납하지 않은 안 국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또 안 국장이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라는 전표를 봤고, 한 전 청장이 이를 이용해 유임됐다는 주장도 펼쳤다. 국세청의 사퇴 압력이 담긴 녹취록도 공개했다.

현정권과 깊숙이 관련된 초특급 의혹 제기에 민주당이 가세하면서 한상률 의혹은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안 국장의 녹취록 등 자료를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문건'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등의 이슈를 쟁점화하며 검찰수사를 압박했다.

특히 최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한 전 청장이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면서 '한상률 의혹'은 정점에 달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검찰은 그림로비 의혹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그림로비 수사를 배당받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가 맡았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의혹을 폭로한 안 국장과 학동마을이 매물로 나온 가인갤러리 대표 홍씨를 여러 차례 불러 학동마을이 가인갤러리에 위탁된 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한 전 청장의 최측근인 국세청 직원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전 청장의 심부름으로 500만 원을 주고 학동마을을 구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진술대로라면 "그림을 본 적 도 없다"는 해명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 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미루고 있어 '부실수사'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전 청장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는 진실 규명이 불가능한데 검찰이 강제체포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은 수사 범위를 그림로비 사건에 한정, 나머지는 명확한 범죄 혐의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정치적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소환을 유도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친박연대까지 나서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한나라당 4선 남경필 의원은 지난 1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전 청장은 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데 유유히 외국으로 나가 정부가 도피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며 "검찰이 명백히 사건을 가리겠다는 각오로 소환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기소된 안 국장이 재판 과정에서 한 국장에 대한 의혹을 얼마만큼 공개할지 주목된다. 안 국장은 앞서 제기한 의혹들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고, 향후 재판에서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른바 '안원구 X파일'인 자료에는 한 전 청장이 유임로비를 벌인 현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의 신빙성이나 존재 여부도 현재까지 알 수 없지만 재판 과정에서 공개될 경우 '매머드급 태풍'이 될지 '찻잔 속 태풍'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gyj@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57호(12월2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