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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하구암리 400여 기 집단 밀집 고분군 발굴 - 신라?

monocrop 2009. 7. 29. 04:27

 

 

충주 하구암리 신라 고분군 발굴

연합뉴스 | 입력 2009.07.28 14:01 | 수정 2009.07.28 16:36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연 웅)는 중원 지역의 신라 최대 밀집 고분군인 충주 하구암리고분군을 최근 발굴조사하고 28일 발굴 현장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그 성과를 공개했다.
하구암리 고분군은 6세기 무렵 중원 지역에 진출해 신라 시대 오소경(五小京)의 하나인 국원소경(國原小京)을 경영한 지배계층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졌다.
연구소는 올해 초 하구암리에 분포한 8개 구역 고분 400여기 가운데 3개 구역의 돌방무덤 160여기에 대한 실태조사 및 GPS 측량을 했다.

< 사진 설명 : 25호분 석실 내부 모습 >
이 중 중대형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는 '병마지골'의 대표 고분 3기에 대한 학술발굴을 진행중이다.

고분 3기는 모두 남쪽 경사면 방향으로 널길(羨道)을 낸 지상식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봉토의 유실을 막기 위한 1단의 둘레석(護石)이 있고 경사면에 자리한 27ㆍ28호분은 봉토 주변에 도랑을 만들었다.

능선의 봉우리에 위치한 25호분은 관을 안치한 널방의 외곽에 깬돌을 사용해 1m 이상 두께로 보강했으며 봉토를 수평으로 켜켜이 다져올려 널방을 밀봉한 판축 양상이 확인됐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출토 유물은 짧은굽다리접시(短脚高杯),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등의 토기류가 주를 이루며 25호분의 주검받침에서는 금동제 허리띠장식과 귀걸이 1쌍이 나왔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하구암리고분군 전역에 걸쳐 실태조사와 표본발굴을 할 예정이다.

kimyg@yna.co.kr

  

충주서 신라고분 400기 또발굴, ’막강 신라’확인

헤럴드경제 | 입력 2009.07.28 10:16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충청

충구 하구암리에서 400기에 이르는 신라시대 최대 고분군이 발굴됐다. 6세기 중후반 것으로 보이는 이 고분군은 지난해 11월 발굴된 충주 누암리 고분군(260기)보다 더 큰 집단무덤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즉 600기에 이르는 이들 충주일대 신라 고분군은 6세기, 7세기초 중원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던 신라의 막강한 국력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연웅)는 28일 충주 가금면 하구암리에서 '하구암리 신라고분군'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연구소측은 하구암리 고분군이 6세기무렵 중원지역에 진출해 '국원소경'(國原小京)을 경영했던 신라계 지배계층의 집단무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초 하구암리에 분포한 400여기 고분 중 3개 구역 석실분 160여기에 대한 조사및 GPS측량을 실시한 연구팀은 특히 중대형 고분이 밀집분포된 '병마지골'의 대표고분(3기)을 집중발굴한 결과 신라의 상위층 귀족의 무덤인 것으로 파악했다.

모두 남쪽 경사면 방향으로 통로를 낸 지상식 굴식돌방무덤인 하구암리 고분은 봉토의 유실을 막기 위해 둘레석을 돌렸고, 경사면의 고분들은 도랑(溝)을 설치하기도 했다. 능선의 봉우리에 위치한 대형분(25호분)은 방형의 널방(관을 안치한 석실)에 중앙으로 연결되는 널길을 갖췄으며, 외곽을 깬돌로 두께 1m이상으로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 고분에서는 토기류가 주로 출토됐다. 또 25호분에서는 금동제 허리띠장식과 귀걸이 1쌍이 출토돼 눈길을 끌었다. 이 유물들은 6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지난해 조사된 충주 누암리 고분군의 출토품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중원문화재연구소 황인호실장은 "충주 하구암리 고분군은 4km 떨어진 누암리 고분군과 함께 660기에 달하는 무덤이 조성돼 6세기-7세기초 강성했던 신라의 국력을 보여주는 지배계층의 집단무덤인 만큼 집중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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