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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할러웨이라는 이 여성 사진작가는 과거 스킨스쿠바 때의 경험을 살린
수중촬영의 기술로서 사진작가들에겐 특별한 영역인 패션분야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레인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재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특이하고 화려한 색채의
그의 작품들을 각 종 잡지와 광고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녀는 2007년과 2008년 약 2년간
Charles Kingsley의 1863년 소설 'The Water babies' 의 일러스트 작업에 몰두하여
완성했는데, 이 작업들로 인해 그녀는 동물촬영과 수중아기 촬영이라는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유명한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Ref.찰스 킹즐리라는 신부는 '워터 비이비'라는 진화를 암시하는 소설을 냄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이 자리잡는데 큰 역활을 한 인물.)
Water Babies
Water Babies
Water Babies
다윈의 키슬링 (Darwin’s quisling : Charles Kingsley) 이었던 킹즐리 : 다윈을 도왔던 믿음의 변절자, 찰스 킹즐리 |
Russell Gr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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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슬링(Quisling) : 적을 도와준 사람. 배신자, 매국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의 나치당에 협조했던 노르웨이 육군 장교인 Vidkun Quisling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
(교회의)믿음을 배반한 성직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아마도 다윈의 길을 확장하였던 유명한 저자처럼 파괴적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쓴 책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의 1,250부 제1판은 1859년 11월 24일에 출판되었다. 책은 공공연한 소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제1판 전체는 당시 출판물에 열심이었던 한 사람에 의해서 모두 사들여졌다는 항간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1] 영국을 가로질러 종교계로부터 신속히 비난받았다.
다윈은 킹즐리에게 ‘종의 기원’ 제1판의 복사본을 보냈다. 킹즐리는 그에 대한 감사 편지에서 과도하리만큼 다윈을 칭찬했다. 킹즐리는 “당신의 명망과 직관력, 그리고 내가 알게되어진 많은 사실들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내가 믿어왔고 저술해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라고 썼다 [2]. 확실히 이것은 그에게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각 종류의 생물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미신(superstition)’으로부터 이제는 자유롭게 되어졌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영국 국교회의 고위 성직자로부터 이러한 지지를 받는 것에 너무도 기뻐서 그는 ‘종의 기원’ 제2판의 마지막 장에 킹즐리의 편지를 서둘러서 첨부시켰다. 그 책은 단지 2달 후에 출판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다윈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조화되어지려고 하였다.[4, 5]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킹즐리의 편지를 익명으로 인용하자, 그 글을 읽은 한 비판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부름 받은 성직자가 믿음에 치명적인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6] 다윈에게 그의 이름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직자의 시인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익명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863년에, 킹즐리는 ‘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진화를 암시하는 괴기스런 어린이 책이었다. 예를 들면, 톰(Tom, 아가미를 가지고 물 속에서 살아가는 양서류가 된 어린이)은 어머니 캐리(Mother Carey, Mother Nature와 비슷함)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오래된 짐승에서 새로운 짐승을 만들어내느라고 항상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한다. “새로운 짐승들을 만드는 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단다... 여기 앉아 있으면, 그것들은 스스로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이지.”[7] 또 다른 장에서,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차로 원숭이로 변해가는 인간 종족에 대한 놀림조의 이야기가 있다. 킹즐리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제 사람들은 환경, 선택, 경쟁 등등에 의해서 짐승(beasts)이 사람으로 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짐승이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환경, 선택, 경쟁의 똑같은 법칙에 의해서 사람도 짐승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8]
킹즐리는 진화론 편을 드는 데에 매우 열심이었다. 그는 다윈과 라이엘(Lyell)과 관계를 갖고 있었고, 반기독교적 영국 생물학자로서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알려진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헉슬리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킹즐리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었다 :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다윈 신봉자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설에 그가 찬성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했던 에일즈버리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와 내가 같은 두꺼비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무엇이겠는가! 경박한 나이 많은 부인이 그러한 표현에 자기가 놀림을 당했는지, 아니면 킹즐리를 숭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9] 1867년에 킹즐리는 왕립연구소에서 주최한 ‘과학과 성경(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제목의 두 번의 강연에서 공개적으로 사람은 원숭이의 후손이며, 이 세계는 수백만 년이 되었다는 그의 믿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867년 프레이져 매거진(Frasers Magazine) 6월, 7월호에 실리게 되었다.[10]
킹즐리가 그의 위치에서 창세기의 창조 설명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인 것이 그를 인종차별주의적 견해(racist views)를 신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인간들 그룹이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되어 다양한 특성들로 진화되어져 왔었다면, 덜 진화된 종족이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종족들 보다 덜 사람이 되었을 것이었다. 킹즐리는 그의 설교집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정확히 같은 종족인 호주의 검은 원주민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에게는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짐승들처럼 이 땅에서 멸망되어져야만 한다.”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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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22(1):50–51, December 1999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1/quisling.asp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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