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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에서 장성을 쌓기 시작한 수성현(遂城縣) 관련 《통전(通典)》

monocrop 2009. 2. 28. 17:10

진(秦)나라에서 장성을 쌓기 시작한 수성현(遂城縣) 관련 《통전(通典)》 기록 발견

 

글 : 장진근  / http://www.coo2.net/네티즌 자유게시판 15633 / 2009-02-28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한사군을 두었다는 기록이다.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정작 《한서 · 지리지》에는 낙랑 · 현도만 있고, 진번 · 임둔은 그 이름조차 없다. 그리고 주석가들의 제설이 백가쟁명이다. 우리는 그들의 붓끝에 우리 강토가 줄었다 늘었다 가관이다.



  우리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사람들이 가르쳐 준대로 한사군을 우리 한반도를 끌여들여 친절하게 지도까지 그려서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선각자들이나 재야 사학자들은 한반도에 한사군이 없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벌써 북한에서는 한사군이 우리나라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 《통전(通典)》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내 눈을 의심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통전》 주군(州群) 8에 역주(易州)와 관련된 내용에 역주에는 8개의 현 이름이 써 있는데 그 가운데 "수성(遂城)"이 있지 않은가. 수성이란 수성현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대한 주석으로 "옛날의 무수(武遂)이다. 진(秦)나라에서 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한 곳이다.(遂城. 古武遂也. 秦築長城之所起)"라고 되어 있다.(두우 찬 《통전(通典)》제5책, 중화서국, 4708쪽 참조)



  그뿐이 아니라 통전을 교감한 사람들은 수성의 옛 이름은 무수에 관한 주석에서 옛 무수(武遂)이다.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 권18에 의하면 무수가 거꾸로 되어 있다. 생각건대 《사기(史記) · 조세가(趙世家)》에 이르기를, "이목(李牧)이란 장수가 연나라를 공격하여 무수(武遂) · 방성(方城)을 함락시켰다"고 한 기록에 대해 당나라의 장수절(張守節)이 찬한《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는 《괄지지(括地志)》를 이용하여 이르기를, "역주(易州)의 수성(遂城)은 전국시대의 무수성(武遂城)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같은책, 4720쪽 참조)



  이와 같은 기록은 본란을 통해 필자가 쓴 갈석과 관련된 글에서 지금은 없어진 《진태강지지(晉太康地志)》란 출처불명의 기록에 낙랑군 수성현에서 진나라에서 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였고, 우리 식민사학자들은 오늘날의 황해도 수안(遂安)을 낙랑군 수성현으로 비정하였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제《통전》이라는 권위 있는 중국 사서에 수성현(遂城縣)이란 지명이 확인되었고, 바로 그곳에서 진나라의 장성을 쌓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정식으로 확인된 만큼 낙랑군 수성현은 오늘날 수안으로 비정하는 학설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2009.  2.  27.



                                                                                   봉오선생



玄濟 (2009-02-28 15:01:31)  
注[一六]正義武遂,宜陽,本韓邑也,秦伐取之。
▲ 사기(史記)의 주석..

▷ 무수(武遂)는 저양(宜陽)과 관련되어 있는데, 본디 하남(河南)의 한읍(韓邑)이라고 했습니다..
즉, 장성(長城)이 시작되는 곳은 하남(河南)의 한읍(韓邑)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