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신참 관리 '신고식' 고문서 발굴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12.10 09:32 | 최종수정 2008.12.10 10:15
토지박물관 免新禮 문서 2건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새로온 귀신 양정(暘鄭)은 듣거라! 생각건대 넌 별 볼일 없는 재주로써 외람되게도 귀한 벼슬길에 올랐겠다. (중략) 전해 내려오는 고풍(古風)을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으니, 거위, 담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즉각 내어와 우리에게 바치도록 하라. 선배(先進)들이 쓴다"
18세기 조선시대 정양(鄭暘)이란 사람이 신참 관리로 배속받은 곳에서 선배들이 작성한 문서다. 이렇게 쓰고는 문서 마지막에다가 '선배' 3명은 각자 수결(手決) 즉, 사인을 했다.
신참이 마련한 술과 안주에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선배들이 쓴 글씨는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문장에서는 호연한 기개가 묻어난다.
공신력을 갖는 문서라고는 볼 수 없지만, 선배 관리들은 한껏 신참 양정을 조롱한다. 그 성명이 정양(鄭暘)이지만 선배들은 짓궂게도 일부러 그것을 뒤바꾸어 양정(暘鄭)이라 부른다. 이들 선배의 '탄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양정은 거위며 담배, 돼지고기, 닭고기 등으로 대접해야 했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신참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이 최근 입수한 이 고문서는 엄밀히는 신고식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식을 치른 뒤에 신참에서 벗어났으니 동료로 대접해 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서 이런 의식을 신참에서 벗어나는 의식이라 해서 '면신례'(免新禮)라고 한다.
토지박물관은 이 고문서 외에도 건륭(乾隆) 23년 즉, 조선 영조 34(1758년) 11월에 작성된 '영방입안'(營房立案)이라는 또 다른 면신례 문건도 공개했다.
영방이란 각 군영(軍營)이나 도(道) 단위 감영(監營)에서 관리가 집무를 보던 관청을 말하며, 입안이란 요즘으로 보자면 판결문이나 공증서 기능을 하던 법률문서 일종이다.
작성 연대가 명확한 이 고문서에는 "이 입안은 면신(免新)에 관한 일을 담았다. 풀벌레(草蟲) 같은 정국량(鄭國良)은 면신례를 관례대로 한 차례 시행하니 이에 의거해 입안을 발급해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로 보아 정국량이라는 신참은 호된 신고식을 치렀음이 분명하다. 선배들은 그를 '벌레'에 비유한다.
한국 고문서 전공인 토지박물관 김성갑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면신례 문서 실물은 경기 화성시에서 지난 2004년 11월 공개된 정조시대 '김종철 면신첩'이 지금까지는 유일했다"면서 "이번에 토지박물관이 입수한 문서 2건 중 '정량 면신첩'은 김종철 면신첩과 유사하지만, '정국량 면신입안'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면신례가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았는지는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문집에서 더러 전하며, 실제 이를 활용한 연구가 국사편찬위원회 박홍갑 씨에 의해 이뤄지기도 했으나 그 생생한 면모를 증언하는 문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토지박물관은 몇 년 전 입수해 공개한 숙종시대 충청도 지역 병적(兵籍) 기록부인 속오군적(束伍軍籍) 관련 자료를 최근 추가로 수집해 그 원형 복구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새로 입수한 추가 문서에는 1천여 명에 이르는 충청도 속오군 신상정보를 담고 있어 기존 문서에 포함된 인원까지 합해 총 5천200명에 이르는 군적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새로온 귀신 양정(暘鄭)은 듣거라! 생각건대 넌 별 볼일 없는 재주로써 외람되게도 귀한 벼슬길에 올랐겠다. (중략) 전해 내려오는 고풍(古風)을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으니, 거위, 담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즉각 내어와 우리에게 바치도록 하라. 선배(先進)들이 쓴다"
18세기 조선시대 정양(鄭暘)이란 사람이 신참 관리로 배속받은 곳에서 선배들이 작성한 문서다. 이렇게 쓰고는 문서 마지막에다가 '선배' 3명은 각자 수결(手決) 즉, 사인을 했다.
공신력을 갖는 문서라고는 볼 수 없지만, 선배 관리들은 한껏 신참 양정을 조롱한다. 그 성명이 정양(鄭暘)이지만 선배들은 짓궂게도 일부러 그것을 뒤바꾸어 양정(暘鄭)이라 부른다. 이들 선배의 '탄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양정은 거위며 담배, 돼지고기, 닭고기 등으로 대접해야 했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신참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이 최근 입수한 이 고문서는 엄밀히는 신고식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식을 치른 뒤에 신참에서 벗어났으니 동료로 대접해 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서 이런 의식을 신참에서 벗어나는 의식이라 해서 '면신례'(免新禮)라고 한다.
토지박물관은 이 고문서 외에도 건륭(乾隆) 23년 즉, 조선 영조 34(1758년) 11월에 작성된 '영방입안'(營房立案)이라는 또 다른 면신례 문건도 공개했다.
영방이란 각 군영(軍營)이나 도(道) 단위 감영(監營)에서 관리가 집무를 보던 관청을 말하며, 입안이란 요즘으로 보자면 판결문이나 공증서 기능을 하던 법률문서 일종이다.
작성 연대가 명확한 이 고문서에는 "이 입안은 면신(免新)에 관한 일을 담았다. 풀벌레(草蟲) 같은 정국량(鄭國良)은 면신례를 관례대로 한 차례 시행하니 이에 의거해 입안을 발급해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로 보아 정국량이라는 신참은 호된 신고식을 치렀음이 분명하다. 선배들은 그를 '벌레'에 비유한다.
한국 고문서 전공인 토지박물관 김성갑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면신례 문서 실물은 경기 화성시에서 지난 2004년 11월 공개된 정조시대 '김종철 면신첩'이 지금까지는 유일했다"면서 "이번에 토지박물관이 입수한 문서 2건 중 '정량 면신첩'은 김종철 면신첩과 유사하지만, '정국량 면신입안'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면신례가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았는지는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문집에서 더러 전하며, 실제 이를 활용한 연구가 국사편찬위원회 박홍갑 씨에 의해 이뤄지기도 했으나 그 생생한 면모를 증언하는 문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토지박물관은 몇 년 전 입수해 공개한 숙종시대 충청도 지역 병적(兵籍) 기록부인 속오군적(束伍軍籍) 관련 자료를 최근 추가로 수집해 그 원형 복구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새로 입수한 추가 문서에는 1천여 명에 이르는 충청도 속오군 신상정보를 담고 있어 기존 문서에 포함된 인원까지 합해 총 5천200명에 이르는 군적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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