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대학 도서관 자료로 살펴본 '조선의 배'......
글 : 향고도 / www.coo2.net / 2009-01-10
장보고나 왕건같이 해양을 주름잡았던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단을 이루는 배(船)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고려,신라등의 고대선박들을 보노라면 도저히 황해와 남해, 멀리는 인도지나까지 항해를 했을 것
이라고 여겨질만한 고선박을 딱히 찾을 수가 없다.
향고도가 고대선박에 대해 무지하기는 하나, 우리의 고선박 대부분이 연안용의 소규모 선박이고 거친 바다를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으로는 판단되어 지지 않는데,
도대체 장보고나 왕건은 어떤 선박으로 동북아 해상을 앞마당처럼 드나들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우리의 고대선박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던 차에 배그림 한 편을
발견했는데,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국선"이라는 이름의 배로 정확한 작자나 제작시기는 불명으로 18c를 전후하여 일본에서 유행했던 무슨 화풍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에 일본을 오가던 조선의 배를 그린것으로 추측되고
원소장자는 勝俣銓吉郞(1872―1959)가쓰마타 센키치로 라는 일본의 선구적 영어학자(와세다대 교수)였으며 근대 일본과
관련된 서양자료들을 많이 수집,소장했던 사람이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배 그림만을 잘라 앞서 게시했던 것인데, 이 그림을 보고서 그것이 조선의 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좌계님께서 전문용어를 곁드려 상세한 설명으로 답해 주셨지만 결국 지나의 사선(沙船)으로 보실 정도이니 , 판옥선, 평저선
정도를 떠올리는 향고도에게도 조선배라고 하기엔 상당히 이질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위쪽에 "영국대군선(英國大軍船)" 아래쪽에 "조선국선(朝鮮國船)"이라는 도명으로 두 척의 배를 한 화면에 그린 것
으로 전체 모습은 아래와 같다.
(게시용량 제한으로 둘로 나누었음).
송준희님께서 올려 주신 답글과 기타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니 배의 형태는 오랜세월을 거치며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해왔음을 느끼는데
특히,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 본다.
대서양을 오갔던 서양범선인 17C 메이풀라워호, 그 이전인 콜롬버스의 산타마리아호 까지도 위의 영국대군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규모와 형태이다.
100년전의 자동차와 현대의 자동차를 비교해 보면 그 형태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것과 같다.
이를 우리의 고선박에 적용하면 위의 조선국선은 고려의 왕건선단,그 이전의 신라 장보고선단 까지도 저러한 형태의 선박이였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림의 영국대군선과 조선국선은 특징지어지는 돛을 제외하면 전체 규모가 대등하고(두 배의 갑판에 그려진 사람을 참고로),
전문가가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데 속력이나 적합성등에 있어서 어느 선박이 우월한지는 모르겠으나, 위의 서양범선이 대서양을
넘나들었다면
조선국선은 태평양 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남아나 중동 일대 까지는 충분히 오갈수 있었을 것이다.
복원된 mayflower호.
수일 전, '신라사 정역에 대한 고찰[新羅史 正譯에 對한 考察]이라는 주제로 이중재 선생의 강연회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참석은 못했지만, 뜨거운 열기에 만석을 이루었다하고, 주 내용은 신라의 위치가 황하중류에 있었으며
신라의 혈통은 소호금천씨가 시조이고,
한반도 남단의 신라는 고려 왕건이 자신의 딸인 낙랑을 시집보내면서 신라 경순왕에게 준 봉지이다.... 라는 것이 대략이다.
이중재 선생의 설에만 의한다 하더라도 해상왕 장보고 선단의 본거지는 한반도에 있었던것이 아니라, 대륙동해안에 있었을
것이고,
장보고 못지 않은 해상세력을 바탕으로 고려건국 까지를 이룬 왕건역시 발해만이든 대륙동해안이든 어딘가를 근거지로 하였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이 마주치는 것이 바로 정화(鄭和·1371~1433)함대와의 연관성이다.
복원된 정화보선(鄭和寶船).
공교롭게도 위의 조선국선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고선박을 찾아 보니 정화보선(鄭和寶船)이다.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를 한 것이 1498년이니 정화가 활동하던 시기는 남경에 도읍하고 있던 때 이기도 하다.
좌계님께서 사선(沙船)과 함께 보선(寶船)을 언급해 주셨는데 향고도가 가장 원하고 있었던 답이었다.
그리고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선은 자료에 따라, 차수에 따라 여러형태로 보여지는데 우리측 자료들을 보면
평저선(平底船) 형태의 소규모 연안용으로 보여지는 반면 일본측 자료에는 위의 조선국선과 유사한 형태
( 선수와 선미가 높이 치켜 올라간 모습)와 규모를 가진 자료들도 보인다.
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역사민속자료관 소장의 조선통신사선(병풍도 일부분).
앞의 조선국선과 같은 선박이 실제 조선에 있었다면 기존의 인식으로는, 명나라의 사선이나 보선제작의 기술과 디자인이
약소국 조선에 전래되었다라고 할 열변들이 많겠지만, 송준희님이 붙혀주신 자료만 하더라도 고대에 선박제조술이 일천했던
지나(支那)였음을 상기하면 매우 단순한 열변들이다.
명나라 이전의 말달리기 왕조인 원(몽고)나라는 더 열악했을 것임도 물론이다.
추론은 이렇다.
고대 동북아 해상을 평정했던 신라 장보고선단의 배는 고려 왕건의 해상세력에게 전래되었을 것이고, 이는 다시
원(元)제국시에 일본에 침입한 원나라 병선으로 전래되었고, 명의 남경시절에 이르러 정화함대를 탄생케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장보고 선단의 기항지, 왕건선단의 기항지, 원나라 병선의 기항지, 정화함대의 기항지는 모두 황하하구에서 장강하구에
이르는 한정된 지역의 해안에 위치 했었음은 몇몇 사료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사서료의 기록들이 아니더라도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다량의 목재는 강을 통해 공급되었을 것이고 특히, 옛 황하하구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주목된다.
근세조선 중후기에 사용되었을 위의 조선국선은 동북아 주 해상세력들에 의해 전래되어 온, 알려지지 않은
우리 고선박의 존재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고, 더 많은 유사 관련자료가 발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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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과 송준희님께서 보충해 주신것을 감사드리고, 일어 번역에 능하신 분이 계시면
도명 "조선국선"과 함께 기술된 일어를 번역하셔서 답글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글은 도명(圖名)을 밝히지 않은 채 게시한 배의 그림만을 보신 구이넷 좌계님의 견해>.
일단 소개하신 배는 한반도(韓半島)에서 항해용(航海用) 선박으로써 건조한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는 아닙니다.
이 난함선(欄檻船)은 판옥선(板屋船), ‘거북선’의 기본(基本)틀이 되는 배인데,
외관상(外觀上) 2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1) ‘높은 노(櫓)’를 쓰기 때문에, ‘노(櫓)의 처마’가 <칼 도(刀)>자로 길게 나가는 특징이 들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타축(舵軸)을 회전식(回轉式)으로 오르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미(船尾)가 높히 올라가지 않습니다.
올리신 배는 좌계가 볼 때에는 사선(沙船)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들 사선(沙船)의 특징으로써 다음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1) 사선(沙船)은 방두방소(方頭方艄) 즉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이 네모 지는 특징이 있고,
2) 평저선(平底船)이면서
3) 돛대가 세대박이 이상으로써 다장(多檣)입니다.
( 항해용(航海用) 선박을 최소한 돛대가 3대 이상이어야 합니다.)
4) 유출소(有出艄) : 타축(舵軸)을 현수식(懸垂式)으로 - 이는 수직(垂直)으로 길게 내리는 것을 뜻합니다. -
내려야하기 때문에, 고물(船尾)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유형입니다.
중국 배 가운데, 항해용(航海用) 선박은 이런
1) 사선(沙船)이란 종류 이외에도,
2)취보선(取寶船) 혹은 보선(寶船)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정화(鄭和) 원정대 때 사용한 배로써 사선(沙船)이 갑판(甲板)위에
집(=옥(屋))을 올리지 않는 것이 비해서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돛 대가 집(=옥(屋)) 위에 있는 특징을 하고 있습니다.
3)단양선(丹陽船)이 있는데, 이 역시 사선(沙船)과 비슷하나, 이물(船首) 돛이 앞방향으로 기울여져 바람을 받아서 배(船)가
무게중심을 ‘바다쪽으로’ 파고들듯이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총괄해서 볼 때, 전형적인 사선(沙船)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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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구이넷 송준희님이 보충해 주신 자료>.
노를 발명한 백제인/중국전래의 군선(도형강선)
- 출처 : 중국진출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 (도)밝은수리 /1996년
- 저자 : 김성호 ('34년생, 철원생,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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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고도 님. 대해서 해금(海禁) 정책을 쓴 것입니다. 민선(民船)인 사선(沙船)이 대량으로 한반도에 들어와있다면, 반드시 사선(沙船)이 조선(朝鮮) 사람이 타는 배였다는 증거가 있을 것이다.”라는 기다림에 대해서 - 시원스럽게 설명해주는 ‘놀라운 증거물’을 올려주셨습니다.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할 때 쓰던 선박(船舶)이 ‘근해용(近海用)’으로 특화(特化)시킨 배입니다. 살펴본 바로는 고증(考證)이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난함선(欄檻船)을 근해용(近海用)으로 개편한 것에 불과합니다. 움직이는 시설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서 루로(樓櫓) 즉 ‘노축주(櫓軸柱)’를 배의 늑골(肋骨) 옆에 따로 세우고, 층층(層層) 마다 노병(櫓柄)을 연결시키고, 윗 층에서 내려 누르는 힘이 ‘평행사변형’처럼 아래 층(그 반대도 가능함)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해서 배 한 복판이 비어있는 형태 - 즉 선심(船心)이 비어있는 매우 놀라운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해금(海禁)정책 앞에 ‘군사기밀’을 숨기기 위한 안배(按配)가 있었기 때문에 세심하게 뜯어보지 않으면 잘못 고증(考證)하는 쪽으로 나갈 수 밖에 없게하는 매영(梅營)의- 조선수군(朝鮮水軍)의 통제영(統制營)에 대한 미칭(美稱)입니다. -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던 것입니다. 것입니다. 변조(變造)되었지만, 원래는 사선(沙船)과 더불어 대표적인 아시아(Asia)의 항해용 선박이었으니다. 소우기(小右記)를 보면 ‘투석기(投石機)’를 장착하고, ‘도자기 로드’에서 민선(民船)들을 지키는 일종의 ‘해상경찰’을 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전(以前)’에 범선(帆船)을 타고, 항해(航海)를 해본 민족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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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 이전 댓글 설명 더보기
(확대가능) 고대 선박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나, 모르시더라도 이 선박이 주는 느낌이 있으신 분은 의견 주시지요. 알려진 기존의 우리 고선박과의 차이, 어느 나라 어느 왕조의 선박으로 보이는 지 등...... 그림 오른쪽 하단의 물에 반쯤 잠긴 키(방향타)가 있는데 그 위쪽 구멍에 두 사람이 키를 잡고 있고, 갑판에도 너댓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는것으로 전체 규모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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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고도 님. - 내려야하기 때문에, 고물(船尾)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유형입니다. 갑판(甲板)위에 집(=옥(屋))을 올리지 않는 것이 비해서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배(船)가 무게중심을 ‘바다쪽으로’ 파고들듯이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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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의 말씀 중에는 선박을 이용하여 우리 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말씀을 자주하시는데요. 우리의 선박들이 대마도를 통과하지 않고 직접 일본열도로 건너갔을 거라는 의심이 자꾸만 들기 때문에, 실제로 연해주에서 열도로 건너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하여 알고 계신대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합니다. 걸렸을까요.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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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님. 제대로 받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범선(帆船)의 속도를 나타낼 때에는 주로 3가지 측면에서 말합니다. ②최상의 평균속도를 가지고 계산하는 것입니다. 최대의 거선(巨船) ‘프로이센’ 호의 경우를- 이 배는 선장(船長)이 132미터, 선폭이 16.4미터, 마스트(mast(돛대)) 높이 68미터가 되는 배입니다.- 살펴보면, ①의 최대속도는 17노트(=1해리(1.852미터)/1시간)였고, ② 최상의 평균속도가 15.3미터 ③정상속도가 8노트로 잡습니다. 섞어서 쓰는데, ‘사각 돛’은 순풍(順風) 즉 배 뒤에서 부는 바람을 받는 돛으로 쓰고, ‘삼각 돛’은 그 모양이 (◣)으로 생겼기 때문에 역풍(逆風)을 받아서 ‘베르누이 정리’에 의해 밑으로 빠져나가는 힘을 활용해서 사각(斜角)으로 달아서 앞으로 가도록 하는 돛인 것입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 ③정상속도의 거의 2배가 되어야 비로소 ② 최상의 평균속도가 됨에 비해서, 동양의 범선은 이 폭(幅)이 상대적으로 좁은 특징을 띄게 됩니다. 평저선(平底船)은 속도가 ‘늦어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측판(側板= leeboard)을 배 위에서 물 속으로 ‘밀리는 쪽’에 내리고 운항(運航)을 합니다. (丨V )로 표시할 수 있고, 평저선(平底船)의 경우 (丨凵 )으로 표시할수 있는데, 평저선의 경우가 더 효율이 좋습니다. 배워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삼한인(三韓人)들이 타던 민선(民船)이었습니다. ‘바다의 여왕’이라고 일컫는 ‘프레이션’ 호보다 더 큽니다. 군선(軍船)이나 ‘화백회의’와 사신선(使臣船), 포경선(捕鯨船)으로 쓴 선박을 관선(官船)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런 종류의 배를 난함선(欄檻船)이라고 합니다. 자료(資料) 자체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고증(考證)이 전혀 잘못되어서, 난함선(欄檻船) 특유의 장점(長點)과 구조(構造)가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되어서 민선(民船)보다 못한 배로 고증(考證)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해 크로스-첵크(closs-check)를 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게 도본(圖本)을 쓴 것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대박이 범선(帆船)’입니다. ‘돛을 내리고’ 노(櫓)의 힘만으로 싸우게 됩니다. (辰時聞賊船__泊唐浦船滄巳時直到)." 뿐입니다. 조우전(遭遇戰)에 대비해서 진법(陳法)을 유지하면서 가는 속도라는 것입니다. 4노트 정도가 되지 않을까 ?” 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곳에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역까지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족한 듯 합니다 하는 격벽(隔璧)시설이 ‘배-밑창’에 설치되어 있다. 이는 배 밑에서 물이 차는 곳까지의 높이를 뜻함 - 깊다. 소우기(小右記)에 의하면, ‘도자기 로드’를 지키는 해상경찰 역할을 한 배를 뜻함 - 경우, 배 밑에 투석기를 쏘는 돌(石)이 있어서 흘수(吃水)가 깊을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리(高句麗)의 고주리(高朱利)는 ‘오츠크츠’ 바다에서 포경선(捕鯨船)을 운영할때 사용한 배가 바로 과포선(戈砲船)이라 보여집니다. 난함선(欄檻船)의 장점을 살린 배로 추측할 수 있고, 자연히 흘수(吃水)가 깊어야합니다. 거쳐서 운항하게 됩니다. 보다 안전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