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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조선국선(朝鮮國船)을 통해 본 고대해상세력

monocrop 2009. 1. 10. 22:23

와세다 대학 도서관 자료로 살펴본 '조선의 배'......

 

글 : 향고도 / www.coo2.net / 2009-01-10

 

장보고나 왕건같이 해양을 주름잡았던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단을 이루는 배(船)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고려,신라등의 고대선박들을 보노라면 도저히 황해와 남해, 멀리는 인도지나까지 항해를 했을 것

이라고 여겨질만한 고선박을 딱히 찾을 수가 없다.
향고도가 고대선박에 대해 무지하기는 하나, 우리의 고선박 대부분이 연안용의 소규모 선박이고 거친 바다를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으로는 판단되어 지지 않는데,
도대체 장보고나 왕건은 어떤 선박으로 동북아 해상을 앞마당처럼 드나들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우리의 고대선박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던 차에 배그림 한 편을

발견했는데,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국선"이라는 이름의 배로  정확한 작자나 제작시기는 불명으로 18c를 전후하여 일본에서 유행했던 무슨 화풍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에 일본을 오가던 조선의 배를 그린것으로 추측되고  

원소장자는 勝俣銓吉郞(1872―1959)가쓰마타 센키치로 라는 일본의 선구적 영어학자(와세다대 교수)였으며 근대 일본과

관련된 서양자료들을 많이 수집,소장했던 사람이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배 그림만을 잘라 앞서 게시했던 것인데, 이 그림을 보고서 그것이 조선의 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좌계님께서 전문용어를 곁드려 상세한 설명으로 답해 주셨지만 결국 지나의 사선(沙船)으로 보실 정도이니 , 판옥선, 평저선

정도를 떠올리는 향고도에게도 조선배라고 하기엔 상당히 이질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위쪽에 "영국대군선(英國大軍船)" 아래쪽에 "조선국선(朝鮮國船)"이라는 도명으로 두 척의 배를 한 화면에 그린 것

으로 전체 모습은 아래와 같다.
(게시용량 제한으로  둘로 나누었음).




송준희님께서 올려 주신 답글과 기타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니 배의 형태는  오랜세월을 거치며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해왔음을 느끼는데
특히,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 본다.
대서양을 오갔던 서양범선인 17C 메이풀라워호, 그 이전인 콜롬버스의 산타마리아호 까지도 위의 영국대군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규모와 형태이다.
100년전의 자동차와 현대의 자동차를 비교해 보면 그 형태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것과 같다.
이를 우리의 고선박에 적용하면 위의 조선국선은 고려의 왕건선단,그 이전의 신라 장보고선단 까지도 저러한 형태의 선박이였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림의 영국대군선과 조선국선은 특징지어지는 돛을 제외하면 전체 규모가 대등하고(두 배의 갑판에 그려진 사람을 참고로),

전문가가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데 속력이나 적합성등에 있어서 어느 선박이 우월한지는 모르겠으나, 위의 서양범선이 대서양을

넘나들었다면
조선국선은 태평양 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남아나 중동 일대 까지는 충분히 오갈수 있었을 것이다.

복원된  mayflower호.

수일 전, '신라사 정역에 대한 고찰[新羅史 正譯에 對한 考察]이라는 주제로 이중재 선생의 강연회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참석은 못했지만, 뜨거운 열기에 만석을 이루었다하고, 주 내용은 신라의 위치가 황하중류에 있었으며

신라의 혈통은 소호금천씨가 시조이고,
한반도 남단의 신라는 고려 왕건이 자신의 딸인 낙랑을 시집보내면서 신라 경순왕에게  준 봉지이다.... 라는 것이 대략이다.

이중재 선생의 설에만 의한다 하더라도 해상왕 장보고 선단의 본거지는 한반도에 있었던것이 아니라, 대륙동해안에 있었을

것이고,
장보고 못지 않은 해상세력을 바탕으로 고려건국 까지를 이룬 왕건역시 발해만이든 대륙동해안이든 어딘가를 근거지로 하였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이 마주치는 것이 바로 정화(鄭和·1371~1433)함대와의 연관성이다.

복원된  정화보선(鄭和寶船).

공교롭게도 위의 조선국선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고선박을 찾아 보니 정화보선(鄭和寶船)이다.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를 한 것이 1498년이니 정화가 활동하던 시기는 남경에 도읍하고 있던 때 이기도 하다.
좌계님께서 사선(沙船)과 함께 보선(寶船)을 언급해 주셨는데 향고도가 가장 원하고 있었던 답이었다.
그리고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선은 자료에 따라, 차수에 따라 여러형태로 보여지는데 우리측 자료들을 보면

평저선(平底船) 형태의 소규모 연안용으로 보여지는 반면 일본측 자료에는 위의 조선국선과 유사한 형태

( 선수와 선미가 높이 치켜 올라간 모습)와 규모를 가진 자료들도 보인다.

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역사민속자료관 소장의 조선통신사선(병풍도 일부분).

앞의 조선국선과 같은 선박이 실제 조선에 있었다면 기존의 인식으로는, 명나라의 사선이나 보선제작의 기술과 디자인이
약소국 조선에 전래되었다라고 할 열변들이 많겠지만, 송준희님이 붙혀주신 자료만 하더라도 고대에 선박제조술이 일천했던  

지나(支那)였음을 상기하면 매우 단순한 열변들이다.
명나라 이전의 말달리기 왕조인 원(몽고)나라는 더 열악했을 것임도 물론이다.

추론은 이렇다.
고대 동북아 해상을 평정했던 신라 장보고선단의 배는 고려 왕건의 해상세력에게 전래되었을 것이고, 이는 다시  
원(元)제국시에 일본에 침입한  원나라 병선으로 전래되었고, 명의 남경시절에  이르러 정화함대를 탄생케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장보고 선단의 기항지, 왕건선단의 기항지, 원나라 병선의 기항지, 정화함대의 기항지는 모두 황하하구에서 장강하구에

이르는 한정된 지역의 해안에 위치 했었음은 몇몇 사료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사서료의 기록들이 아니더라도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다량의 목재는 강을 통해 공급되었을 것이고 특히, 옛 황하하구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주목된다.

근세조선 중후기에 사용되었을 위의 조선국선은 동북아 주 해상세력들에 의해 전래되어 온, 알려지지 않은
우리 고선박의 존재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고, 더 많은 유사 관련자료가 발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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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과 송준희님께서 보충해 주신것을 감사드리고, 일어 번역에 능하신 분이 계시면
도명 "조선국선"과 함께 기술된 일어를 번역하셔서 답글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글은 도명(圖名)을 밝히지 않은 채 게시한 배의 그림만을 보신 구이넷 좌계님의 견해>.


일단 소개하신 배는 한반도(韓半島)에서 항해용(航海用) 선박으로써 건조한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는 아닙니다.

이 난함선(欄檻船)은 판옥선(板屋船), ‘거북선’의 기본(基本)틀이 되는 배인데,
외관상(外觀上) 2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1) ‘높은 노(櫓)’를 쓰기 때문에, ‘노(櫓)의 처마’가 <칼 도(刀)>자로 길게 나가는 특징이 들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타축(舵軸)을 회전식(回轉式)으로 오르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미(船尾)가 높히 올라가지 않습니다.

올리신 배는 좌계가 볼 때에는 사선(沙船)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들 사선(沙船)의 특징으로써 다음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1) 사선(沙船)은 방두방소(方頭方艄) 즉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이 네모 지는 특징이 있고,
2) 평저선(平底船)이면서
3) 돛대가 세대박이 이상으로써 다장(多檣)입니다.
( 항해용(航海用) 선박을 최소한 돛대가 3대 이상이어야 합니다.)

4) 유출소(有出艄) : 타축(舵軸)을 현수식(懸垂式)으로 - 이는 수직(垂直)으로 길게 내리는 것을 뜻합니다. -

내려야하기 때문에, 고물(船尾)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유형입니다.

중국 배 가운데, 항해용(航海用) 선박은 이런

1) 사선(沙船)이란 종류 이외에도,
2)취보선(取寶船) 혹은 보선(寶船)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정화(鄭和) 원정대 때 사용한 배로써 사선(沙船)이 갑판(甲板)위에

집(=옥(屋))을 올리지 않는 것이 비해서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돛 대가 집(=옥(屋)) 위에 있는 특징을 하고 있습니다.

3)단양선(丹陽船)이 있는데, 이 역시 사선(沙船)과 비슷하나, 이물(船首) 돛이 앞방향으로 기울여져 바람을 받아서 배(船)가

무게중심을 ‘바다쪽으로’ 파고들듯이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총괄해서 볼 때, 전형적인 사선(沙船)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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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구이넷 송준희님이 보충해 주신 자료>.

노를 발명한 백제인/중국전래의 군선(도형강선)

- 출처 : 중국진출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 (도)밝은수리 /1996년
- 저자 : 김성호 ('34년생, 철원생, 서울대)


1

2

3

4

5



----끝.


좌계 (2009-01-10 16:00:53)  

/향고도 님.

‘그 사선(沙船)이 조선국선(朝鮮國船)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머리숙여 훌륭한 자료(資料)를 찾아낸 점에 대해서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사선(沙船)은 ‘중국대륙’에 있는 삼한(三韓) 사람들이 운영하던 선박(船舶)입니다.
감히 말하지만, ‘지나(支那)’인 들은 선박(船舶)을 몰아본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명(明)나라 주원장(朱元璋)이 일어날 때, ‘중국대륙에 있는 해민(海民)’의 힘을 빌려서 기반(基盤)을 잡고, 오히려 이들에

대해서 해금(海禁)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 쫓겨난 사람들이 우리 사서(史書)에서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왜구(倭寇)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타고 온 배가 바로 사선(沙船)이었던 것입니다.

즉 사선(沙船)은 삼한인(三韓人)들이 사용하던 민선(民船)의 대표적인 배였던 것입니다.

주원장(朱元璋)이 해금(海禁) 정책을 쓰고서, 이 사선(沙船)형(形)의 보선(寶船)으로써
정화(鄭和) 원정대들을 끌고 아프리카(Africa)까지 갔었던 것이지요.

좌계가 늘 가슴앓이 하던 문제 - 정화원정대의 배가 “우리 조상들 가운데, 민간인들이 타는 배였다.” “여말선초(麗末鮮初)에

민선(民船)인 사선(沙船)이 대량으로 한반도에 들어와있다면, 반드시 사선(沙船)이 조선(朝鮮) 사람이 타는 배였다는 증거가

있을 것이다.”라는 기다림에 대해서 - 시원스럽게 설명해주는 ‘놀라운 증거물’을 올려주셨습니다.

각설(却說)하옵고,

그런데, 판옥선(板屋船), 거북선 등의 배는 관선(官船)으로 우리 조상(祖上)들은 관선(官船)으로 분류하는데, 주로 군선(軍船),

배달화백(倍達和白)을 할 때 쓰던 선박(船舶)이 ‘근해용(近海用)’으로 특화(特化)시킨 배입니다.

문제는 이 판옥선(板屋船) 거북선에 대한 자료가 각선도본(各船圖本)과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주 원천인데 좌계가

살펴본 바로는 고증(考證)이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이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은 명(明)의 해금(海禁) 정책에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원래 항해용(航海用) 선박이던

난함선(欄檻船)을 근해용(近海用)으로 개편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조선수군(朝鮮水軍)의 군사기밀’을 감추기 위해서 여기 저기에 그 실상(實像)의 ‘조각’을 숨겨놓은 도본(圖本)입니다.

예를 들면,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은 ‘높은 노(櫓)’ - 이는 노(櫓)가 (丿-- --乀) 형태로 되어서 배가 접영(蝶泳)하면서

움직이는 시설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서 루로(樓櫓) 즉 ‘노축주(櫓軸柱)’를 배의 늑골(肋骨) 옆에 따로 세우고, 층층(層層)

마다 노병(櫓柄)을 연결시키고, 윗 층에서 내려 누르는 힘이 ‘평행사변형’처럼 아래 층(그 반대도 가능함)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해서 배 한 복판이 비어있는 형태 - 즉 선심(船心)이 비어있는 매우 놀라운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판옥선(板屋船)과 ‘거북선’은 참으로 경탄(驚歎)할 만한 군선(軍船)이라는 것이 좌계의 결론인데, 이 역시 명(明) 나라의

해금(海禁)정책 앞에 ‘군사기밀’을 숨기기 위한 안배(按配)가 있었기 때문에 세심하게 뜯어보지 않으면 잘못 고증(考證)하는

쪽으로 나갈 수 밖에 없게하는 매영(梅營)의- 조선수군(朝鮮水軍)의 통제영(統制營)에 대한 미칭(美稱)입니다.

-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민선(民船)의 대표적인 배였던 사선(沙船)도 ‘놀라운 배’였지만, 관선(官船)인 난함선(欄檻船)은 더욱 ‘놀라운 배’ 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난함선(欄檻船)은 조선에 와서 원래의 항해용 선박에서 근해용(近海用)으로 명(明)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변조(變造)되었지만, 원래는 사선(沙船)과 더불어 대표적인 아시아(Asia)의 항해용 선박이었으니다.

고리(高麗) 때까지 만 하더라도, 이 난함선(欄檻船) 종류에서 발전한 과포선(戈砲船)이 있었는데, 일본의 역사기록 가운데

소우기(小右記)를 보면 ‘투석기(投石機)’를 장착하고, ‘도자기 로드’에서 민선(民船)들을 지키는 일종의 ‘해상경찰’을

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무튼, 좌계가 지금까지 선박(船舶)에 대한 연구를 해본 경험으로는 ‘서양(西洋)에서 범선(帆船)시대를 연 15세기

이전(以前)’에 범선(帆船)을 타고, 항해(航海)를 해본 민족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선박(船舶)] 씨리즈(series)를 통해서 ‘고대의 해양 역사’에 대한 견해를 올려볼까 하는 구상이 있습니다.

거듭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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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가능)
고대 선박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나, 모르시더라도  이 선박이 주는 느낌이
있으신 분은 의견 주시지요.

알려진 기존의 우리 고선박과의 차이,  어느 나라 어느 왕조의 선박으로 보이는 지 등......

그림 오른쪽 하단의 물에 반쯤 잠긴 키(방향타)가 있는데 그  위쪽 구멍에 두 사람이 키를 잡고 있고,
갑판에도 너댓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는것으로 전체 규모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좌계 (2009-01-09 17:53:04)  

/향고도 님.

일단 소개하신 배는 한반도(韓半島)에서 항해용(航海用) 선박으로써 건조한 난함선(欄檻船) 종류의 배는 아닙니다.

이 난함선(欄檻船)은 판옥선(板屋船), ‘거북선’의 기본(基本)틀이 되는 배인데,
외관상(外觀上) 2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1) ‘높은 노(櫓)’를 쓰기 때문에, ‘노(櫓)의 처마’가 <칼 도(刀)>자로 길게 나가는 특징이 들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타축(舵軸)을 회전식(回轉式)으로 오르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미(船尾)가 높히 올라가지 않습니다.

올리신 배는 좌계가 볼 때에는 사선(沙船)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흔히들 사선(沙船)의 특징으로써 다음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1) 사선(沙船)은 방두방소(方頭方艄) 즉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이 네모 지는 특징이 있고,
2) 평저선(平底船)이면서
3) 돛대가 세대박이 이상으로써 다장(多檣)입니다.
( 항해용(航海用) 선박을 최소한 돛대가 3대 이상이어야 합니다.)

4) 유출소(有出艄) : 타축(舵軸)을 현수식(懸垂式)으로 - 이는 수직(垂直)으로 길게 내리는 것을 뜻합니다.

- 내려야하기 때문에, 고물(船尾)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유형입니다.

중국 배 가운데, 항해용(航海用) 선박은 이런

1) 사선(沙船)이란 종류 이외에도,
2)취보선(取寶船) 혹은 보선(寶船)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정화(鄭和) 원정대 때 사용한 배로써 사선(沙船)이

갑판(甲板)위에 집(=옥(屋))을 올리지 않는 것이 비해서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돛 대가 집(=옥(屋)) 위에 있는 특징을 하고 있습니다.

3)단양선(丹陽船)이 있는데, 이 역시 사선(沙船)과 비슷하나, 이물(船首) 돛이 앞방향으로 기울여져 바람을 받아서

배(船)가 무게중심을 ‘바다쪽으로’ 파고들듯이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총괄해서 볼 때, 전형적인 사선(沙船)의 모양입니다.

정성일 (2009-01-09 19:41:05)  

좌계님의 말씀 중에는 선박을 이용하여 우리 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말씀을 자주하시는데요.
예전의 발해 원정대가 연해주를 출발하여 일본열도로 가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고대에도

우리의 선박들이 대마도를 통과하지 않고 직접 일본열도로 건너갔을 거라는 의심이 자꾸만 들기 때문에, 실제로 연해주에서

열도로 건너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하여 알고 계신대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자는 발해에서 열도로 가려면, 울릉도를 반드시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발해에서 열도로 가다보면 한류와 난류가 섞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무동력선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만약에 발해에서 무동력선(바람과 해류와 사람의 힘만을 이용)을 이용하여 열도로 건너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혹시 한반도 또는 연해주에서 열도로 가기위한 해로는 어떤 경로가 있었는지,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더라도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좌계 (2009-01-10 15:11:52)  

/정성일 님.

1. 범선(帆船)에 대해.
일단 ‘엔진(engine)의 힘’으로 가지 않는 모든 선박(船舶)은 돛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돛’이 달린 배를 흔히 범선(帆船)이라고 칭하는데, 이 범선(帆船)은 ‘바람의 힘’으로 가기 때문에, 순풍(順風)을

제대로 받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범선(帆船)의 속도를 나타낼 때에는 주로 3가지 측면에서 말합니다.

가. 범선(帆船)의 속도를 말하는 기준

①최대속도 ②최상의 평균속도 ③정상속도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③정상속도라 함은 역풍(逆風)등이 간간이 석여있어서 돛을 사각으로 세우고 갈 때를 감안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긴 항해(航海)를 할 때에는 순풍(順風)이 지속되는 절기(節氣)를 골라서 출항(出航)하기 때문에

②최상의 평균속도를 가지고 계산하는 것입니다.

나. 서양 범선(帆船)의 속도.(프로이센 호의 경우)

서양(西洋)의 범선(帆船)가운데, 1902년에 건조(建造)되어 그 당시 유럽에서 ‘바다의 여왕’이라고 불리운

최대의 거선(巨船) ‘프로이센’ 호의 경우를- 이 배는 선장(船長)이 132미터, 선폭이 16.4미터, 마스트(mast(돛대))

높이 68미터가 되는 배입니다.- 살펴보면, ①의 최대속도는 17노트(=1해리(1.852미터)/1시간)였고,

② 최상의 평균속도가 15.3미터 ③정상속도가 8노트로 잡습니다.

이는 범선(帆船)으로써 ‘빠른 편’에 속합니다.

다. 서양(西洋) 범선(帆船)
(1) 돛
그런데, 서양의 범선(帆船)은 동양의 범선과는 달리 돛에 대나무를 끼우지 않는 배인데, 돛이 ‘사각 돛’과 ‘삼각 돛’을

섞어서 쓰는데, ‘사각 돛’은 순풍(順風) 즉 배 뒤에서 부는 바람을 받는 돛으로 쓰고, ‘삼각 돛’은 그 모양이 (◣)으로

생겼기 때문에 역풍(逆風)을 받아서 ‘베르누이 정리’에 의해 밑으로 빠져나가는 힘을 활용해서 사각(斜角)으로 달아서

앞으로 가도록 하는 돛인 것입니다.
(2) 첨저선(尖底船)
서양의 범선(帆船)은 그 주류(主流)가 첨저선(尖底船)입니다. 따라서 ‘빨리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라. 동양(東洋)의 범선(帆船)
(1) 돛
동양의 범선(帆船)은 서양과는 달리 ‘돛’에 대나무를 끼워서 이를 마치 ‘사다리 꼴’처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모든 돛이 서양의 ‘사각 돛’과 ‘삼각 돛’의 중간(中間)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는 서양의 돛의 경우 ‘프로이센 호’를 기준으로 할 때에 ② 최상의 평균속도가 15.3미터 ③정상속도가 8노트로써

--- ③정상속도의 거의 2배가 되어야 비로소 ② 최상의 평균속도가 됨에 비해서, 동양의 범선은 이 폭(幅)이 상대적으로

좁은 특징을 띄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동양의 범선이 역풍(逆風)이 불어도 더 ‘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 평저선(平底船)
동양의 배는 그 주류(主流)가 평저선(平底船)입니다. 따라서 물의 저항(抵抗)을 많이 받아서 결과적으로 같은 돛을 달아도

평저선(平底船)은 속도가 ‘늦어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역풍(逆風)이 불 때에, 서양의 범선이나 동양의 범선이 모두 배가 밀려나므로, 밀려나지 않도록

측판(側板= leeboard)을 배 위에서 물 속으로 ‘밀리는 쪽’에 내리고 운항(運航)을 합니다.
그런데, 첨저선(尖底船)의 경우 왼쪽으로 역풍(逆風)에 의해 배가 밀린다고 할 때에, 이를 기호(記號)로 표시하면

(丨V )로 표시할 수 있고, 평저선(平底船)의 경우 (丨凵 )으로 표시할수 있는데, 평저선의 경우가 더 효율이 좋습니다.

문제는 이 리보드(leeboard)란 선박기술 자체를 네달란드 인과 포르투갈 인이 1570년에 중국과 교역을 하면서 처음으로

배워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로버트 템플 지음. 과학세대 옮김, 까치사, p322 참조)

즉 동양의 범선(帆船)은 역풍(逆風)에 휠씬 서양(西洋)의 범선(帆船)보다 빠름을 뜻합니다.

2. 우리의 범선(帆船)에 대해

가. 사선(沙船)=민선(民船), 난함선(欄檻船)=관선(官船)

정화(鄭和) 원정대가 ‘아프리카(Africa)’까지 간 사선(沙船)을 바탕으로 한 옥선(屋船)인 취보선(取寶船)은

사실 삼한인(三韓人)들이 타던 민선(民船)이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정화원정대가 탄 배는 선장(船長)이 150미터 선폭(船幅)이 62미터로써 그 크기가

‘바다의 여왕’이라고 일컫는 ‘프레이션’ 호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선(沙船) 형태의 배들은 우리의 경우, 주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민선(民船)으로 취급하였고,

군선(軍船)이나 ‘화백회의’와 사신선(使臣船), 포경선(捕鯨船)으로 쓴 선박을 관선(官船)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런 종류의

배를 난함선(欄檻船)이라고 합니다.

이 난함선(欄檻船)에서 ‘판옥선(板屋船)’과 여기에 구장(龜粧)을 씌운 것이 ‘거북선’입니다.

문제는 우리 고대선박에 대한 자료가 각선도본(各船圖本),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나타난 것이 대부분이고,

자료(資料) 자체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각선도본(各船圖本)과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좌계가 읽고 연구해본 경험으로는

고증(考證)이 전혀 잘못되어서, 난함선(欄檻船) 특유의 장점(長點)과 구조(構造)가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되어서

민선(民船)보다 못한 배로 고증(考證)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현재 남아있는 것이 조선수군(朝鮮水軍)과 관련된 자료(資料)이고, 명(明)나라의 해금(海禁)정책에 대해서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해 크로스-첵크(closs-check)를 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게 도본(圖本)을 쓴 것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나. ‘거북선’의 속도.

그런데, 이 난함선(欄檻船)에서 나온 배들 가운데, 이충무공(李忠武公)의 ‘거북선’이 있는데, 이 ‘거북선’은 돛 대가 2개인

‘두대박이 범선(帆船)’입니다.
이 ‘두대 박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이 배가 ‘근해용(近海用) 함선(艦船)’임을 뜻합니다.

항해용(航海用)이 되려면, ‘돛 대’가 ‘세대박이’ 이상이 되어야 긴 항해(航海)를 할수 있는 풍력(風力)을 받기 때문입니다.

항해용(航海用) 군선(軍船)이든 근해용(近海用) 군선(軍船)이든 실제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돛을 내리고’ 노(櫓)의 힘만으로 싸우게 됩니다.

(이는 실전(實戰)에서 급(急)한 방향전환과 ‘재빠른 추적’ 등이 필요하고, 또 적(敵)의 화공(火攻)에 돛이 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투거리’ 밖에까지는 어디까지나 돛의 힘으로 거북선 뿐만 아니라, 모든 군선(軍船)이 움직입니다.

현재 ‘거북선’이 범선(帆船)으로써의 속도가 기록된 것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다음과 같은 기록입니다.
1952년 6월2일 (경인(庚寅)/7월10일) 당포해전을 기록한 가운데 등장하는 다음 글 -
"적선이 당포 선창에 정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오전 8시 출항하여 10시에 당포에 도착했다

(辰時聞賊船__泊唐浦船滄巳時直到)." 뿐입니다.
즉 사량과 당포간 거리가 12km이고, 2시간 걸렸으므로, 이 때의 거북선 속도는 6km/h 임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노트 수(數)로 바꾸면 (6/1.852=약 3.239 노트)가 됩니다.
따라서 범선(帆船)속도로는 대단히 늦은 속도임을 알수가 있는데, 주의해야할 것은 이는 적(敵)의 매복(埋伏),

조우전(遭遇戰)에 대비해서 진법(陳法)을 유지하면서 가는 속도라는 것입니다.
좌계가 볼 때에는 “적(敵)이 없을 때의 속도는 ‘거북선’의 경우 초계(哨戒)의 염려가 없기 때문에, 좀더 빨라져서

4노트 정도가 되지 않을까 ?”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근해용(近海用) 난함선(欄檻船)’으로서도 대마도(對馬島)를 거치지 않고도 대번에 일본열도

어느 곳에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근해용(近海用) 난함선(欄檻船)으로써도 충분히 연해주에서 일본열도 어느 곳에든지 항해(航海)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난함선(欄檻船)은 사선(沙船) 종류의 배보다도 더 역풍(逆風), 바닷물의 역류(逆流), 높은 파도에 이겨내는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근해용(近海用)-난함선(欄檻船)으로서도- 이는 판옥선(板屋船)을 뜻함 - 충분히 연해주에서 일본열도

어느 지역까지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 항해용(航海用) 선박(船舶)이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항해용(航海用) 선박이 도대체 근해용(近海用) 선박과 어찌 다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듯 합니다

바다는 날씨가 급변(急變)합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거센 폭풍(暴風)이 올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항해용(航海用)선박은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條件)을 구비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항해용(航海用) 선박(船舶)은 근해용 선박보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1) 모르는 해역(海域)에 폭풍(暴風)에 밀려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암초(暗礁)이 부닥쳤을 때, 일부분만 잠기게

하는 격벽(隔璧)시설이 ‘배-밑창’에 설치되어 있다.

2) 무게중심이 낮아서 많은 화물(貨物)을 싣고, 배의 전복(顚覆)을 막기 위해서 ‘배의 구조’ 자체가 흘수(吃水)가-

이는 배 밑에서 물이 차는 곳까지의 높이를 뜻함 - 깊다.

(과포선(戈砲船)의-이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투석기(投石機)가 설치된 고리국(高麗國)의 군선(軍船)으로써 일본사서

소우기(小右記)에 의하면, ‘도자기 로드’를 지키는 해상경찰 역할을 한 배를 뜻함 - 경우, 배 밑에 투석기를 쏘는

돌(石)이 있어서 흘수(吃水)가 깊을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포선(戈砲船)은 ‘투석기’ 대신에 ‘고래 작살’을 던지는 배와 동일한 배로 여겨지는데, 남당유고(南堂遺稿)에서

고구리(高句麗)의 고주리(高朱利)는 ‘오츠크츠’ 바다에서 포경선(捕鯨船)을 운영할때 사용한 배가 바로

과포선(戈砲船)이라 보여집니다.

‘오츠크츠 바다’는 파도가 험하기로 유명한데,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정화원정대의 배와 같은 거선(巨船)에다

난함선(欄檻船)의 장점을 살린 배로 추측할 수 있고, 자연히 흘수(吃水)가 깊어야합니다.

3) 돛대가 3대박이 이상이어야 합니다.
즉 풍력(風力)에 의해서 만이 움직이기 때문에, 돛대가 많아야한다는 것입니다.

3. 여쭈신 질문에 대한 답변

항해용(航海用) 선박(船舶)인 경우, 연해주에서 일본열도를 한바퀴 빙 돌아서 목적지에 도달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근해용(近海用) 선박(船舶) 일 경우라도, 날씨가 좋을 때에는 일본열도 어느 곳에나 직접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선박을 모는 사람은 없습니다. 날씨가 변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 것이지요. 따라서 중간거점을

거쳐서 운항하게 됩니다.

발해에서 일본열도로 가는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럴 경우는 울릉도를 거치는 것이

보다 안전하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발해시대에 ‘뗏목’을 타고 다녔다.”고 실험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황당해보입니다.)

나중에 [선박] 씨리즈(series)글을 올려서 보다 상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