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문화경제

[스크랩]일본을 덮고 있는 세 가지 격차, 다음은 한국?

monocrop 2008. 10. 2. 10:36

일본을 덮고 있는 세 가지 격차, 다음은 한국?

 

심야잡상록  2008/10/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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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숨 돌릴듯 하면 터져 나오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여러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홈지기도 밥벌이 업무상 이 문제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기로 하자. 그 보다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사태들이 한국을 계속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사회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밟아왔던 나쁜 시나리오에 이미 빠져들었고, 여기서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짙어진다.

 

그 가운데에서 일본의 존재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여럿 눈길을 끈다. 사실 일본이야 산업화시대 이래로 우리의 역할모델이자 추격의 대상이었으니, 변화의 양상도 어느 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막상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여럿 있다. 날로 소외되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대한 증오가 그런 것일거다. 그런데 요즘 직장에서 맡는 연구들을 하다보면, 한국이 섬뜩하리만큼 일본을 닮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일본에서 일상화된 말인 '격차사회(格差社会)'가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대전 후 일본은 원래 중류(中流)의식이 강한 나라였다.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라는 말이 있듯이, 고도성장 속에서 빡빡한 각계 조직 속에 배치된 사람들은 나름의 역할과 비교적 균등한 소득을 보장받았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집단적인 문화 속에서 서로가 튀는걸 억제하며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갔고, 또 그렇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버블 붕괴의 후유증과, 글로벌화의 파도 속에서 일본에도 사회를 나누는 '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도 처음에는 외연적인 경제소득의 격차부터 시작되었다. 종신고용체제의 붕괴와 함께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동시장이 분리되면서 가속화된 현상이다. 작금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말이다. 중류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는 일본 사회의 커다란 충격이었고, '격차사회'란 말은 최근 몇 년간 일본 내 담론의 주요 타이틀을 장식해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들어서도 역시 이 논의는 식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여기에 고약한 일본의 세습문화가 결합되어

'격차의 세습'이 고착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 달여 전에 나온 주간 다이아몬드(週刊ダイヤモンド) 誌에는 이 문제에 대해 사카이야 타이치(堺屋太一)의 글이 실려 있었다. 국회의원이 아님에도 오부치 내각에서 경제기획청장관으로 발탁되어 이름을 떨치기도 했던 그는, 이에 대해 일본에는 세 가지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1

 

첫 번째 격차는, 일본의 정치인, 배우 및 예능인 직군에서 많이 보이는 이른바 부모의 끗발 격차이다.

부모 잘 만났다는 것이 뭐 특별한 이슈일까?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아이들이 뭔가 좀 더 있어 보이고, 재산을 더 많이 물려 받았으니 살기 좋겠다는 푸념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나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단순한 '부의 세습'이 이슈가 아니다. 전통의 재력가 가문이나 고도성장기 신흥 부유층들이 여전히 경영권과 거액의 유산을 물려주고 있다지만,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그에 못지 않게 몰락한 경우도 많다. 특히 지방 자산가들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며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맥과 같은 무형자산을 물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새로 총리에 취임한 아소 타로(麻生太郎)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듯이 정치인들의 지역구 세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2 이들은 부모가 구축한 공고한 인맥의 후광을 그대로 받으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중앙정계로 진출한다. 예능인들도 기획사, 방송사, PD 등에 걸친 인맥을 고스란히 전수해주고 있다.

 

두 번째 격차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는 노동시장에서 생겨나는 이른바 '직연인(職緣人)'과 '무연인(無緣人)'의 격차이다. 이것은 일본의 기성 질서의 핵심을 구축해온 관료집단 및 대기업군에 정규직으로 편입되어 그 네트워크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직연인')과, 비정규직에서 뱅뱅 도는 사람들('무연인')의 격차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10년 여의 일이기 때문에 최근에야 가시화되는 격차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에서는 산업에 필요한 임시직 노동력을 겸업농가의 고령 유휴인력과, 여성인력이 담당했다. 여성인력은 적당히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물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자연스레 전업주부로 빠져 버렸기 때문에, 도시 남성이 정규고용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 증가로 인해 여성의 근속기간이 길어졌다. 거기에 겸업농가의 급격한 감소가 겹치면서, 남녀할 것 없이 비정규직 수요가 청년층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한 소득격차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노는 물이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더군다나 한 번 무연인의 길을 밟기 시작하고 30대 초반까지 여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아예 탈출구가 막혀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에 비해 해당 분야 경력이 없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이다. 결국 무연인 층은 프리터족, 니트족을 전전하며 경기변동에 가장 민감한 구석에서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동시장이 개방화되면서 해외에서 유입되는 저임금 노동력과도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한국은 아직 해외인력이 농촌의 다문화가정이나 공단의 3D 업종에 국한되어 그 영향을 크게 못 느끼지만, 일본의 위기감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세 번째 격차는, 도쿄 일대 수도권과 다른 지방과의 지역격차이다. 일본도 '유기형 지역구조의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도쿄 일대가 국가의 두뇌 역할을 하고, 다른 지방이 손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다 보니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과 문화시설, 막대한 인구가 도쿄에 집중되는 불균형 국가가 되었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 구조 하에서 지방에 6종류의 부유층이나마 있었다.

이들은 ①산림업자, ②양조업자, ③지역중소제조업(이른바 '지장산업地場産業') 경영자, ④지역중심상인,

⑤지역건설업자, ⑥의사가 그들이다.

일본도 90년대 이후 선심성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각종 지역산업이 몰락하면서 ①~⑤의 기반이 심각히 망가진 상태라고 한다. 한국은 지역 산림업, 양조업의 비중이 원래 그다지 높지 않았다지만, 다른 중소제조업, 상업, 건설업의 붕괴는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그래도 지역에서 현상을 유지하는 직군이 의사라는 점이다. 다만 의사, 간호사들도 지방에 있기를 기피하다보니 소득은 높아도 점점 구인난이 심해진다고 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 참으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지역격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회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래의 글로벌화된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부와의 소통과 자극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일본은 매우 발전된 산업국가이지만, 이런 면에서 여전히 고립된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 이외의 세상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도쿄 일대와, 항구에 연한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일본이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를 통해서만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지만, 일상 속에서 외국인과 해외 문물을 접해가는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다. 빠르게 해외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하고 창의성을 키워갈 환경을 결여한 지방은 또 다른 하류(下流)의 은거지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세 가지 격차의 심화, 이 모두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접 체감하는 바,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에서 전해듣는 바, 각종 통계를 분석하여 드러나는 바가 모두 그러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세습구조까지도 수렴해가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만큼의 세습에 대한 강한 문화적 뿌리는 없다고 하지만, 작금의 인적자원 육성 시스템 변화는 이에 대한 의식구조마저 바꿔갈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가장 공고한 학벌 내 동류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으로 부상하는게 이른바 에스컬레이터 식 일관교육 수혜집단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소학교)는 게이오의숙유치사(慶應義塾幼稚舎), 중학교는 게이오의숙중등부(慶應義塾中等部), 고등학교는 게이오의숙고등학교(慶應義塾高等学校), 대학교는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学)으로 줄줄이 가는 것이다.3 이들은 일본 내 상류층과 중류층들의 사회적 지위 세습 열망을 한껏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도 아직 초-중-고등교육의 일관체제가 구축되지 않았다 뿐이지, 서울 시내 국제중 및 국제고 인가와 이어지는 수순은 언젠가 일본과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지난 번 글에서 설명했듯이 명문 사립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에 올라타서 일관교육체제와 함께 쭉쭉 올라가려는 극심한 열풍과,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한 무심함이 공존하는 사회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차라리 오늘날처럼 대학입시만을 위해 목을 매던 시대가 그리워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변화의 관성이 현재는 생각보다 꽤나 크다. 아무리 책상머리에서 상황을 호전시킬 정책 대안을 고민해도, 시행하기에는 재원 부담이 너무 크거나 이를 관철할 만한 정치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단순히 정권 바뀐다고 반전의 기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존의 가치를 학습할 수 있을 때까지의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堺屋太一 (2008). "「健全な格差」とは何か." 『週刊ダイヤモンド』, 96(33), 59-62.
  2. 며칠 전 MBC 뉴스에서도 이에 대해 한 꼭지를 할애한 바 있다: 「일본은 세습정치 전성시대
  3. 이와 같은 명문사립학교들에서는 초-중-고의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일부 정원(대략 반 정도)을 자기 재단 소속 학교들에서 무시험으로 뽑아 올린다(내부진학). 따라서 먼저 유치원/소학교에 올라타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계속 무시험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끈끈한 연을 맺게 된다. 최근의 또다른 현상은 외국인학교나 영어 수업을 실시하는 국제학교의 인기이다. 명문사학들은 이에 맞춰 우리의 국제고에 해당하는 학교들도 재단 내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든 게이오의숙 재단도 게이오의숙 쇼난후지사와 중고등부(慶應義塾湘南藤沢中・高等部)라는 중고통합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