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문화경제

[스크랩] 일본이 버린 일본섬 오키나와 “한국과 닮았다고?”

monocrop 2008. 9. 17. 06:39

일본이 버린 일본섬 오키나와 “한국과 닮았다고?”
ㆍ동아시아 냉전체제 중심에…미군기지에 얽힌 정치사회학 조망

▲오키나와 현대사…아라사키 모리테루 | 논형

▲기지의 섬, 오키나와·경계의 섬, 오키나와…정근식 외 | 논형

미군기지 건설을 위한 토지 수용에 항거하는 오키나와 원주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긴조 미노루의 부조상(사진 위)과 2005년 7월 오키나와 주민 1만여명이 미국의 실탄 사용 훈련에 항의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초당적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아래).
‘일본이되 일본이 아닌 곳.’

일본 남서단에 위치한 오키나와를 일컫는 말이다. 오키나와는 14~17세기 중개무역으로 번성했던 류큐왕국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닌 곳이다. 일본 현대사에서의 위치도 특수하다. 일본에서 오키나와만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상전과 미군정을 체험했다.

오키나와는 특히 일본 전후사(戰後史)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본의 안보를 미국에 의탁하는 미·일동맹의 ‘군사적 근간’으로 자리매김해왔기 때문이다. 주일미군 시설의 75%를 일본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한 작은 섬에 봉쇄해 둔다는 미·일 간의 공모는 ‘전후 일본’을 가능케 했던 핵심적인 전략이자 구조였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단지 일본의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서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을 살필 수 있다.

이번 주 논형출판사에서 한꺼번에 선보인 세 권의 책은 오키나와의 현대사와 미군기지에 얽힌 정치사회학을 펼쳐보이고 있는 저작들이다. ‘오키나와 현대사’는 오키나와대 명예교수이자 오키나와평화시민연락회 대표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전후 27년 동안의 미군지배 시대와 1972년 일본 반환 이후로 구분되는 오키나와 현대사를 기술한 책이다. 특히 “오키나와의 현대사는 구조적인 오키나와 차별 위에 성립되어 있는 미·일동맹과 오키나와 민중의 투쟁 역사”라는 관점에서 평화를 향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고투를 세밀하게 엮어냈다.

‘기지의 섬, 오키나와’와 ‘경계의 섬,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중심에 두고 오키나와의 역사, 문화, 지역사회, 사회운동 등 다방면에 걸친 영역을 살핀 책이다. 사회학, 문화인류학, 국제정치학, 행정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전공자들이 쓴 29편의 글을 나눠담았다. 특히 오키나와 문제를 통해 “미국을 정점으로 한 군사적 차원의 동아시아 연결망”을 짚어내고 이를 “동아시아 체제의 평화적인 연대관계로 변화시키려는 문제의식”으로까지 발전시키고자 했다.

오키나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철의 폭풍’이라 불리는 1945년 오키나와 전투를 살펴봐야 한다. 오키나와 전투는 “오키나와 역사에서 가장 외상(外傷)적인 사건이며 가장 논쟁적인 기억의 자리”다. 1875년 류큐왕국이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사라진 후 오키나와에선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화 노력이 상당한 정도로 이뤄졌다. 또 전쟁기에는 어느 곳보다 충실한 황민화 교육이 실시되었으며 전 주민이 체계적으로 전쟁에 동원됐다. 그런데 바로 그 황민화 교육과 전쟁동원의 결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특히 일본군에 의해 이뤄진 학살과 ‘집단자결’ 등으로 미군에 의한 것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하지만 일본 군부와 천황에게 오키나와는 본토 방위와 국체 보존을 위한 ‘사석’(捨石)에 불과했다. 게다가 천황은 연합군에게 항복한 뒤 맥아더에게 오키나와를 군사 점령해 일본을 방위해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다시 한번 오키나와를 버렸다.

일본은 오키나와에 대한 미군의 계속적인 점령을 용인한 대가로 경제적 번영의 길을 걸었다. 반면 오키나와인들은 표현과 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권이 제약되고 토지를 강제수용당하는 등 재산권 행사를 빼앗겼다. 또 항공기 소음과 추락사고에 따른 피해와 미군의 성폭행을 필두로 한 인권문제 등을 감내해야 했다. 1972년 5월15일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반환됐지만 오키나와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었다.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6년 3월말 현재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본섬 면적의 18.7%를 차지한다. 오키나와를 ‘기지의 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오키나와는 또한 ‘경계의 섬’이다. 지리적·자연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키나와의 고단한 역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오키나와를 자신의 내부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제국주의 역사와 오키나와를 미국과 일본의 이중식민지로 위치시켰던 전후 미·일동맹의 역사는 류큐와 일본과 미국이라는 상이한 문화가 만나 새로운 혼성 문화를 창출하게 했다.

사실 오키나와는 우리나라와 닮은 측면이 많다.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해 3월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군의 직접적 관여를 부인할 때 문부과학성은 오키나와 전쟁 중의 ‘집단자결’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관여를 교과서 기술에서 삭제토록 했다. 아라사키 모리테루 교수는 이를 “표리일체의 문제이며, 그들의 역사인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한국과 오키나와는 또한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은 나란히 세계적인 미군 재편에 직면해 있다. 미군 기지의 정리·통합·축소를 명분으로 한 오키나와 헤노코의 신기지 건설과 주민들의 반대 투쟁은 곧바로 평택 대추리를 연상시킨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선·효순 두 여학생의 죽음으로 촉발되었던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95년 오키나와 소녀 폭행사건을 떠올렸다고 한다.

결국 오키나와를 읽는 것은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는 길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대안적이고 능동적인 구상을 위해

서는 반드시 오키나와 문제를 경유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키나와 현대사’(정연신·미야우치 아야코 옮김) 1만5000원, ‘기지의 섬, 오키나와’ 3만5000원, ‘경계의 섬, 오키나와’ 3만3000원

<김진우기자 jwkim입력: 2008년 08월 29일>

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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