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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C 숙종초 '조선지도'의 삼분하三岔河: 조선전기 만주강역은 재조정되어야
monocrop
2009. 3. 17. 02:31
18C 숙종초 '조선지도'의 삼분하三岔河: 조선전기 만주강역은 재조정되어야 하나?
글 : 솟대 / http://www.coo2.net/ 네티즌 자유게시판 15687 / 2009-03-16


그림 1. 규장각 소장 "조선지도(古 4709-77)" 출처 " http://e-kyujanggak.snu.ac.kr/GZD/GZD_JIMYUNGS.jsp?ptype=class&subtype=js5&lclass=01 " 그림 2. 지형지세도에 표시한 고려장성과 고지도의 지명들
삼분하三岔河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그동안 찾아왔던 청의 목극등에 의한 일방적인 국계확정이 있기 직전의 숙종초엽의 고지도를 규장각 사이트에서 찾았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원본이 아니라 해당지도의 모사본이 아닌가 추정하므로 후대의 변조여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도첩에 동봉된 다른 지방도의 지명검증을 통해 이 지도첩들은 숙종재위초엽의 지도라고 규장각측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조선여진분계도보다 제작시기가 거의 40~50년 앞선 것입니다.
문제는 당 조선지도(古 4709-77) 의 <중국도>에 만주와 몽골의 지리도 나와 있는데 기존의 18세기 중엽의 조선여진분계도와 달리 삼차하가 아닌 삼분하三岔河가 남만주수계의 주요한 기점으로 나와 있습니다.
즉, 동요하와 서요하의 합류점인 삼분하三岔河를 기준으로 개원,심양,광녕,의주,요양을 표시하였는데 그 위치는 모두 조선여진분계도의 위치나 현대의 위치와도 다르며 모든 지명이 전체적으로 북쪽으로 상당히 올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양瀋陽도 현재의 혼하가 아닌 동요하 상류의 산기슭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당지도의 심양瀋陽 서쪽에 성곽이 있는 점을 고려하여 향고도님의 1933년 제작 만주국 정치구획도를 참조하여 해당되는 고려장성을 요녕성 지형지세도에 보라색으로 표시해보았습니다. 참조로, 1933년 지도에서 장성長城이 요하를 횡단하는 지점의 명칭은 통강구通江口로 나옵니다.
1933년 만주국 정치구획도 : 고려장성이 표시되어 있음 " https://t1.daumcdn.net/blogfile/fs10/9_blog_2007_08_14_20_42_46c19502aa805?original"
지형지세도에서 현 철령시일대이북으로는 지형도 표시색에 따라 최소 해발이 50~200m인 지역이고 당 조선지도(古 4709-77)의 산악으로 표시되는 고도로 볼 수 있는 해발 200~500m인 색표시지역과 접점을 찾아 보면 고지도상의 심양瀋陽의 위치는 바로 현재의 공주령시公主岭市 인근이 됩니다. (상단의 지형지세도 참조)
전체적으로 모든 지명이 북상하므로 요양의 위치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혼하와 태자하수계는 생략되어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이 지도상의 요양의 위도는 현재의 심양정도로 보아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의주義州나 광녕廣寧이 요하의 동쪽에 있어 의문을 자아내지만 영원이나 금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무려산이 서쪽에 그려져 있어 이 강이 요하라는 것을 분명히 표시하고 있습니다. 의주義州 또한 위치가 -조선의 의주이든 청의 의주이든- 통강구通江口를 지나 현 공주령시公主岭市인근사이에 놓인 고려장성 아래에 바로 붙어있어 대략 개원開元일대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주建州-후금의 발흥지인 건주려진의 땅-의 위치가 서요하와 채룡강寨龍江(현 송화강 길림수계)사이로 서요하와 동요하의 북쪽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후금이 발흥한후 강역이 후퇴하는 시기의 옛 지명이 반영이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청말기에 과거 명대와 청초기의 만주일대의 지명이 의도적으로 대대적으로 변모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당지도를 모사지도로 추정하는데 용정龍庭이란 명칭으로 보아 18C 숙종초엽의 원지도를 모사한 시기가 용정龍庭이 세워진 1850년 이후가 아닌가 추정합니다.
이외에도, 기존의 인식과 다른 지명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지도를 따르면 조선의 만주서북부 경계에 대한 저의 견해도 북쪽으로 옮겨가야하므로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고지도에 대한 여러분들의 휼룡한 분석과 확인을 기대하여 마지 않습니다.
// 조선지도(古 4709-77)
총설 평안도-경상도-평해(강원도)-세계지도-황해도 등 5장의 지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특이한 지도첩이다. 군현지도인 평해의 지도를 제외하면 모두 가로 세로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방안 위에 그려져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방안은 지도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기존 지도를 필사하면서 필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황해도 지도의 경우 현대지도에 버금갈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져 있지만 경상도와 평안도는 정확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도의 제작 연대가 적혀 있지 않아 수록된 지명의 입장에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경상도 지도에는 대형산성의 정보가 자세히 수록되었음에도 1703년(숙종 29)에 신축되는 동래의 金井山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황해도 지도에는 1719년(숙종 45)에 水營을 설치한 所江鎭이 이전의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登山鎭이 巡威島로 옮겨가기 이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평안도 지도에는 곽산의 읍치가 1746년(영조 22) 이전의 위치에, 철산의 읍치가 1751년(영조 27) 이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첩의 도별 지도나 그 원본은 1700년을 전후해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에 수록된 강원도의 평해 지도에는 面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고, 田畓을 파악하는 천자문의 글자가 여러 개의 단위로 적혀 있는 등 고을 운영의 기본적인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
네 번째에 수록된 세계지도는 1402년(태종 2)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가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괄하고 있던 반면 1500년대를 지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가 생략되는 세계지도의 일반적인 경향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기봉) //
* 고지도 수록지명 일부 발췌 東樓(동루) 龍庭(룡정) 肅愼(숙신) 黑水靺鞨(흑수말갈) 會寧府(회녕부) 女眞地(녀진지) 奴兒干(노아간) 水達達(수달달) 五國城(오국성) 胡里政路(호리정로) 曲江(곡강) 混同江(혼동강) 排溫路(배온로) 黃龍府(황룡부) 松花江(송화강) 卽降州(즉강주) 寨龍江(채룡강) 肇州(조주) 宜春路(의춘로) 北樓(북루) 靺鞨舊居(말갈구거) 北山(북산) 鴨了河(압료하) 金蒲興路(금포흥로) 泰寧(태녕) 長白山(장백산) 韓州(한주) 淸(청) 柳河(류하) 同州(동주) 榮安(영안) 歸仁(귀인) 盛(성) 三分河(삼분하) 遼濱(료빈) 蒙古(몽고) 行營(행영) 建州(건주) 開元(개원) 瀋陽(심양) 義州(의주) 廣寧(광녕) 朱家庄(주가장) 遼陽(료양) 盖州(개주) 海州(해주) 鳳凰城(봉황성) 鴨江(압강) 豆滿江(두만강) 狼山(랑산) 武平(무평) 金北京(금북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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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화와 삼차하 위치 추적

그림 1. 만주-몽골 접경지인 현 요녕성일대의 요하수계 상류의 삼분하三分河와 하류의 삼차하三叉河
명-청때에 요하와 혼하,태자하지류가 합수하는 삼차하三叉河는 여기서 여러번 글을 보신 분들은 어디를 말하는지 익히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와 다른 삼분하三分河가 있었음을 금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삼분하三分河는 여러 문헌들에서 三盆河, 三岔河, 三坌河으로도 기록되어 나옵니다.
삼분하三分河의 구체적인 지리적 위치는 바로 동요하東遼河와 서요하西遼河가 합류하는 두물머리로 두 수계가 합류한 이후 부터는 삼분하三分河 혹은 요하遼河라 부릅니다.
우리 문헌에 나온 삼분하三分河의 기록중 하나를 사례로 들여다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연행기(燕行紀) 제1권 서호수(徐浩修)
진강성에서 열하까지[起鎭江城至熱河] ○ 경술년(1790, 정조 14) 7월[1일-15일]
노합하(老哈河)는 화하(華夏)의 이름으로는 노하(老河)라 부른다. 우익(右翼)의 남쪽 190리에 있는데, 근원이 명안산(明安山)에서 나와 동북으로 흘러 오한(敖漢)의 북쪽과 옹우특좌익(翁牛特左翼)을 거치고, 남쪽으로 다시 내만(奈曼), 객이객(喀爾喀) 2부(部)의 북쪽을 경유한다. 황하(潢河)-西拉木倫河-와 합류한 뒤에는 대녕성(大寧城)을 감아돌아 남으로 요동의 삼분하(三坌河)로 들어간다.
老哈河。華名老河。在右翼南一百九十里。源出明安山。東北流。經敖漢北翁牛特左翼。南又經奈曼喀爾喀二部之北。與潢河合。繞大寧城。南入遼東三坌河。
위에 향고도님이 올려주셨던 20세기초의 만주지도를 보면 노합하老哈河는 서요하西遼河의 상류의 두 지류중 하나로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황하潢河-와 합류하여 서요하西遼河가 되어 동으로 흘러가며 대녕성(大寧城), 즉 지도상의 정가둔鄭家屯, 일명 요원遼源일대를 감아돌면서 남류하며 역시 동북에서 남류해 내려오는 서요하西遼河와 합류하여서 삼분하(三坌河)가 됩니다.
또한, 동東·서西 요하遼河가 합류한 이후부터 현 철령시일대에 이르기까지 삼분하三分河는 수많은 지류를 합하고 현 신민시新民市일대에서도 신민하新民河-현 류하柳河-를 받아들여 대요하大遼河가 되며 서남류하여 다시 삼차하구三分河口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태자하太子河를 합수해 내려온 혼하渾河수계와 하나로 합쳐져서 해변평원을 지나 해구海口를 통해 발해바다로 들어갑니다.
아래, 요녕성 지형지세도에서 보듯이 삼분하三分河는 서쪽의 몽골의 준령과 동쪽의 만주의 준령을 갈라 나누며 남으로 횡단하고 있습니다. 삼분하구三分河구에서 남으로 철령시일대까지는 삼분하三分河인접지역의 가장 낮은 해발도 50~200m의 산지이며 삼분하三分河에서 양쪽으로 멀어질 수록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지형입니다.


따라서, 삼분하三分河에 대한 여러 단어중 몽골의 서부준령과 만주의 동부준령을 나누는 그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낸 어휘는 삼분하三岔河로 여기서 <분岔>은 옥편을 찾아보면 {산과 산이 가닥져 나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삼차하三叉河와 비슷한 명칭을 가진 다른 지명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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