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홈런 공장’ 도쿄돔의 비밀
[JES 김식]
2006년 3월 5일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일본전. 한국 대표팀 이승엽(33·요미우리)이 1-2이던 8회 이시이 히로토시(36·야쿠르트)로부터 역전 우월 2점홈런을 터뜨렸다. 홈런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승엽의 타격감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장소가 도쿄돔이어서 더욱 그랬다.
전력 차이가 크지 않다면 국제대회는 대개 투수전이다. 그러나 '홈런공장'으로 불리는 도쿄돔에서는 홈런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또 도쿄돔엔 홈런 외에도 한국 대표팀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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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런'을 조심하라
돔구장에서 나오는 홈런을 돔런(Dome-ru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장을 덮은 지붕 때문에 홈런이 자주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유일하게 공기 부양식으로 천장을 떠받드는 도쿄돔은 다른 돔구장보다도 타구의 비거리가 더 길다.
돔구장은 외부 공기를 끌어들여 구장 지하의 써멀터널(thermal tunnel)을 통과시킨다. 지열을 통한 공기는 여름엔 냉풍, 겨울엔 온풍이 되어 그라운드로 들어온다. 이 바람은 천장으로 올라간다.
여기에 선수들과 관중의 열기가 내부 공기를 데워 대류(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 그래픽 참조 > 타자가 때린 공은 상승기류를 타고 일반구장보다 더 멀리 날아가게 되는 셈이다.
도쿄돔만의 특색도 더해진다. 도쿄돔은 천장이 무거운 구조물이 아닌 직물로 돼있다. 관중석 상당부에 설치된 36개의 송풍기가 뿜는 바람의 힘으로 천장을 떠받든다. '상승기류 + 상승기류'가 더해지는 것이다. 구장내에서 상승기류가 발생하면 위에서 공을 눌러주는 하향풍압이 감소하면서 공이 날개를 단 듯 비행할 수 있다.
돔구장 내 기압은 외부보다 0.3% 높다. 이는 비거리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도쿄돔에는 비거리를 늘리는 요소가 떨어뜨리는 요소보다 훨씬 많다. 도쿄돔에서 높이 뜬 플라이를 때리면 다른 구장보다 10m 쯤은 더 날아간다는 게 정설이다.
때문에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지 않는 타자들은 요미우리 타자들의 홈런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요미우리가 2002년과 2007년 30홈런 타자를 4명씩 배출했을 때도 이런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승엽은 한 시즌 도쿄돔 최다 홈런 타이기록(22개·2002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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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의 비밀
도쿄돔 홈플레이트에서 외야 펜스를 보면 홈런 치기에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선 상승기류를 체감할 수 없을 뿐더러, 홈플레이트에서 외야 펜스까지의 거리(좌·우 100m, 중앙 122m)도 제법 길다. 이는 일본 구장들의 평균에 해당하고, 잠실구장(좌·우 100m, 중앙 125m) 다음 가는 규모다.
그러나 도쿄돔은 독특할 만큼 좌중간과 우중간 펜스 거리가 짧다. 양쪽 폴에서 전광판까지 거의 직선 형태로 담장을 만들었다. 좌·우중간 담장까지의 거리는 약 110m로 상당히 짧은 편이다. 대부분의 홈런타구가 좌·우중간으로 많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도쿄돔에는 홈런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또 존재하는 셈이다. 도쿄돔에서 좌·우중간을 살짝 넘어가는 타구는 다른 구장에선 외야수에 쉽게 잡히는 것들이다.
▶낯설다…조심하라
도쿄돔의 특성은 양 팀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도쿄돔에서 뛰어보지 않은 선수들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심적으로 흔들린다. 김광현(SK)은 2007년 아시아시리즈 주니치와의 예선전에서 6⅓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결승전에서 6회 주니치 이병규로부터 투런홈런을 맞았다. 김광현은 " 맞는 순간에도 홈런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쿄돔은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 회고했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흰색 천장, 인조잔디, 관중의 함성 등도 한국 대표팀에는 상당히 낯선 요소들이다. 흰색 천으로 만들어진 도쿄돔 천장은 흰 공이 숨어들기에 딱 좋다. 한·일 슈퍼게임 등에서 정수근(전 롯데) 등 특급 외야수들도 종종 쉬운 플라이를 놓치곤 했다. 또 국내구장에 깔린 것과는 약간 다른 도쿄돔 인조잔디도 낯설다. 도쿄돔의 내야 바운드는 상당히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5만 5000명이 들어차는 도쿄돔 관중석도 큰 변수다. 잠실구장 수용인원(3만 500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사람이 내지르는 함성은 돔 안에서 더욱 증폭된다. 얼이 빠질 만큼 시끄러운 도쿄돔에서 처음 뛰는 선수는 혈압과 심박수가 높아져 과도한 긴장, 심리적 위축을 경험하는 게 보통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