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연남생묘지명에서 보는 追贈 지역은 산서성

monocrop 2009. 1. 22. 23:32

 

公姓泉諱男生字元德遼東郡平壤城人 .

연남생은 고구려 요동군 평양성 사람이다.

 

ㅡ그의 묘비명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永逝震悼良深宜增連率之班載穆追崇之典可贈使持節大都督

幷汾箕嵐四州諸軍事幷州刺史餘官竝如故所司備

-------------------------------------------------------

 

연솔(連率)의 반차(班次)를 더하여 추숭(追崇)의 모범을 삼가 기록하노라.

가히 사지절대도독(使持節大都督), 변(幷)·분(汾)·기(箕)·남(嵐)의 4주제군사(四州諸軍事),

병주자사(幷州刺史)를 추증하며, 나머지 관직은 예전과 같이 할 것이다.

 

幷,汾,箕,嵐,四州  병,분,기,남 4주는 그가 생전에 활동하던 지역을 말한다.

당에서 연남생이 미리 내통하여 손을 써 그의 아들 연헌성을 당에 미리 입조시키고

당으로 하여금 이적을 내세워 고구려 평양성을 집어먹도록 만든후 당의 大夫로 있으면서  

식읍 3천호를 받고 호의호식하다 43세에 서거하였다.

 

그에게 서거후 唐王이 추증한 지역은 바로 고구려가 대대로 위치한 산서성 지역이다.

 

추증 지역은 공신이 사는동안 너 잘했으니 죽어서라도 "옛다 먹어라" 가 아니다.
그가 포로였든 볼모였든 공신이든 당으로 봐서 그는 이국인으로 공신이고 천추의 敵
고구려와 그의 할아버지 추모를 스스로 팔아먹은 자이고 나중에 唐王의 곁에 있으며 그를 보필한
사람이기에 그는 그가 통솔햇던 지역을 누구보다 인맥이나 지형적으로 잘 알았을것이며 이로 인한
당왕조에 지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기에 그가 생전에 잘 관리하던 지역을 그에게 추증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고구려인임에 아무리 唐王에 마음에 들었어도 그들의 출신지역 서토지역인 雍지역이나 咸陽을

그에게 추증할 수는 없었을것이다.

 

그렇다면 병(幷)·분(汾)·기(箕)·남(嵐)지역은 어디인가 ?
幷은 바로 지금의 산서성 太原의 分置所로 <楡次>이다.  
汾은 지금의 분하가 시작되어 내려가는 <汾州>을 말한다.
箕는 지금의 箕山 부근으로  遼州 의 <楡社>를 말한다.
嵐은 지금 산서성 좌중단 湫水源 태원 좌측 <嵐州>를 말한다.

 

 

 

원문 해석본은 보니 안타까운것은 1400년전 당시의 궁중 문장가가 찬한 묘비명 문화적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표가 남과

더불어 특이 당시 고구려 지명을 모르는 한학자가 번역했기에 내용상 크게 도움은 안될것 같다.

 

中書侍郎兼檢校相王府司馬王德眞撰

중서시랑겸 검교상왕부사마왕덕진 찬술  

朝議大夫行司勲郎中上騎都尉渤海縣開國男歐陽通書

조의대부행사훈랑중상기도위발해현개국남 구양통이 글을 썼다.

 

이러한 당의 구양통이 비석글을 쓰고   내용은 왕덕진이 찬술햇다 되어 있다.   

 

운영자 심제 씀.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