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 ... Writing/향가·만엽가·일본서기 해석

[스크랩] 日, 詩聖이라 불리는 "카키모토"의 한국말 노래-短歌

monocrop 2008. 10. 6. 22:05

만엽가(1309번/고단샤 정리번호)譬喩歌(비유가)

 

枾本朝臣人麻呂(카키모토히토마로)之歌集出

 

카키모토는 만엽집에서 詩聖으로 불려지는 유명인이다.

이 노래는 카키모토 노래집에서 나온 비유가이다.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비유법이다.

카키모토 님은 나중에 형장의 이슬로 죽음을 맞이하는 시인이다.

 

약 4600여수의 노래 중에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된 만엽집의 노래...

 하지만 일본의 향찰 문학이다. 이 한자를 현재 일본어로 해석하니 의미불명 내지 해독불능에 빠졌다.

 

 

 

난제의 이유로 일본 고대어의 소멸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만엽가를 쓴 주체가 한국어를 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큰 오류를 범했다.

 

필자가 이미 91년, 95년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와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집]에서 그 주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해독을 통해서 알린 바 있다.

 이 노래는 다른 책에서 소개한 노래이다. 물론 순수 한국어로 해독되어야 해독이 가능하다

 

이 노래는 정말 짧은 노래이다. 일본방식인 일자일음의 방식으론 11자의 單歌이다. 노래가 되지않을 정도이다.

 

주제는 정치적 풍랑에 참여하여 전리품을 얻자는 내용이다.

 

본문:風吹海荒明日言應久公隨(11자)

 

   바람 불                           :風(바람)吹(불) 

  바다 거친 낮에                  :海(바다)荒(그츤)明(낮)日(해)
   말(藻)따려 오라               :言(말)應(따르)久(오라)   
   그대 따라서...                  :公(그듸)隨(따라서)          

  

해설:바람 불 때 바다 그친 낮에/바닷말 따로 오라/(바다말이 해안에 밀려온다)/그대 따라서

 

은유법:바람불고 바다거친날 낮:-정치적 풍랑.-정치적인 변혁이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말따려오라(노획물이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대따라서(그대(公))-획득물의 주인공을 앞세워.

 

문자해설

               風(바ㄹ.ㅁ/바람)吹(불다/海(바다)荒(그츤/그칠다/고어)明(낮)日(ㅎ.ㅣ/해)

 

               言(ㅁ.ㄹ/말)應(따르다)久(오라/오래/고어)公(그듸/그대/고어)隨(따라서)

 

이노래는 2002.7.15일 월 밤  서라벌 글돋재에서 시작하여 9월9일 최종 해석되었다. 이 짧은 노래지만 해독하는데 한 달이상 시간을 소요하였다.

노래를 쓰는 것 보다 복원한다는 것이 더욱 더 어렵다. 노래 1수를 해독 하면서 벽에 부딪치는 경우에 느끼는 심정 고백이다.

 

中臣鎌足 와 中大兄皇子가 蘇我씨를 제거할 때 유행한 일본서기노래와 비슷한 비유법 노래이다.

 

황극여제 3년 6월조의 [와자우타]3수-국정을 농단하고 무례한 행동이 많았던 蘇我大臣蝦夷와

그 아들 入鹿臣에 대한 사람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황극2년 (AD643년) 11월에 入鹿(이루까)의 모반으로 쇼도쿠태자(聖德太子/호류사를 지은 태자)의 아들 야미시로노 오오에노미꼬(山背大兄王)가 자결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의 원한이 더욱 깊어져, 드디어 나까도미노 가마다리( 中臣鎌足)  와

나까노 오오에(中大兄皇子 )황자가 소가씨(蘇我氏)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때가 일년 뒤인 황극 3년 (AD644년)이었다. 황극여제는 이 사건으로 소가씨를  참살하여 정권을 잡은 중대형황자(나까노오오에)황자에게 양위하기 원했지만 참살의 주역인 경황자에게 강제로 양위를 하게된다.

사실상 황위 찬탈인 셈이었다. 경황자는 일본 제 36대 효덕천황이 된다.

황극여제는 서명천황의 처이면서 제명천황으로 천황이 되었고 훗날 황극천황으로 천황을 두번 역임한다. 제명여제는 백제 부흥 운동시 백강전투시절 하카타에서 구원군을 배에 태워 보낸 천황이기도 하다.

 

중대형은 서명과 황극여제로 부터 태어난 아들이었다. 하지만 왕위는 경황자가 천황으로 옹립되게 된다.  효덕천황(경황자)은 황극천황의 同母弟이기도 하다.

직계 황통을 젖혀두고 외척인 효덕이 계승케 되었다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은 기사이다.

이른바 피와 피로써 씻는 권력투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필자의 임나신론 부분에서 자세한 언급을 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의 천황가가 [구다라/백제]계통에서 마침내 효덕의 [시라기/신라]계통로 넘어갔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등을 고찰해 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노래들이 비유법으로 만엽집이나 일본서기 와자우타 형식으로 노래 불러지고 있었다.(정광산인)

 

 <사진자료:한민족 공동체 다물넷,<소아입록(백제계)이 태극전에서 佐伯連子麻呂등에의해 주살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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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글쓴이 : 庭光散人글돋先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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